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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으로 Mar 27. 2022

3월 27일의 꽃, 칼세올라리아

'도움'이라는 꽃말

 세상은 도우며 살라고 말합니다. 자신보다 어렵고 힘든 타인을 도우며 사는 것이 미덕이라고 합니다. '도움'의 가치는 제가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공손하고 아름다운 보석이라는 것을 모두 압니다.

 오늘의 꽃은 일명 주머니꽃이라고도 불리는 '칼세올라리아'입니다. 얼굴이 매우 독특하지요? 하지만 언젠가 꼭 한 번은 본 적이 있는 아이일 것 같습니다. 노랑과 주황 빛깔의 조화가 참으로 곱습니다. 동그란 주머니 안에는 노랑노랑하고 주황주황한 도움의 미덕들이 담겨져 있을 것 같습니다. 누구에게든 도움을 줄 수 있게 담아두려고 주머니를 만든 걸까요? 유치하지만 꿈보다 해몽이라고 좋은 쪽으로 상상해봅니다.

 남을 도우며 살라 하기에 남을 돕지 않고 살아가는 삶에 대해 무의식 중에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남을 돕지 않아서 좋은 사람이 아닌 것 같이 느껴집니다. 질병과 기아로 허덕이는 지구촌 아이들에게 매달 후원을 하지 않으면, 정기적으로 봉사활동을 다니지 않으면,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조언과 해결책을 제시해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내가 그닥 좋은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어야만 내가 가치로운 사람처럼 느꼈습니다.

 저는 그랬습니다. 남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순간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상대방이 나를 필요로 하면, 내 도움의 손길을 원하면 그 순간 나는 가치로운 사람이 됩니다. 하지만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는데 나의 도움을 구하지 않으면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의 가치가 타인의 필요에 의해 결정되곤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더 완벽해져야만 했지요. 모든 걸 잘해야 하고, 모든 사람의 부름에 응해야 하고, 그 부름에 항상 도움이 되게끔 말 그대로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당분간은 행복하고 충만했습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느낌, 그것은 참 매번 새롭고 짜릿하거든요. 내가 꽤 괜찮은 사람으로 느껴지는 그 시간들도 참으로 벅차고 만족스러웠습니다. 하지만 당분간은 당분간이었지요. 힘에 부치기 시작합니다. 그렇지만 이제와 멈출 수는 없습니다. 해결사의 역할을 포기해버리면 그때부터의 나는 한 없이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버릴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버텼습니다. 홍반장처럼.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달려가려고요. 문제는, 저도 사람이라 모르는 것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미성숙한 인간이라 해결해줄 수 없는 난제도 많았다는 것입니다. 더 문제는 그런 상황이 왔을 때 그 비난과 힐난의 화살을 제 자신에게 돌렸다는 것이지요. 자책하고 죄책감을 가졌습니다. 남을 돕고 살려다가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는 삶을 살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어리석었네요. 하지만 그때의 저는 어쩔 수 없었을 거예요. 스스로 채울 수 없어 텅 빈 제 마음 주머니를 남의 평판과 칭찬으로 채워야만 했으니까요. 타인의 삶에 중심을 두고 살 수밖에 없었지요.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 중에도 아마 저 같은 분이 계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물론 없으시다면 더 좋겠지만요. '도움'이라는 미덕이 나 스스로를 온전히 세워 그때부터 여유롭게 전파하는 가치가 되도록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저처럼 나 자신도 없는데 남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전전긍긍해하며 살지 않길 바라요. 나부끼는 동서남북 타인의 바람에 언젠가 나의 나뭇가지가 꺾여버리는 날이 꼭 오거든요. 제 글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삶에는 '도움'의 부담으로 인해 걷다가 크게 넘어지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우선 나 스스로를 도우세요. 더 이상 나 스스로를 가열차게 돕지 않아도 되겠다 느껴지면 그때, 그때부터 타인을 도와도 늦지 않습니다. 누가 뭐라 해도 가장 먼저 지켜야 하는 것은 나 자신이니까요. '도움'이라는 단어는 그 소리와 낱말의 모양부터 너무나 따듯하고 예쁜 말이지만 그 도움에는 순서가 있어야 합니다. 내 마음 주머니가 비어있다면 나를 먼저 도와주세요. 나 스스로를 돌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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