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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으로 Mar 22. 2022

3월 22일의 꽃, 당아욱

'은혜'라는 꽃말

'은혜'라는 말을 들으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옛 친구들의 얼굴입니다. 매 학년 같은 반에 꼭 한명 이상씩은 있었던 이름, 그만큼 고귀하고 따듯한 단어라 사람 이름에까지 그것도 무수히 많이 쓰인 것이겠지요. 은혜. 곱씹어 발음해보는 이 단어는 꼭 고마운 마음과 그리했던 사람들을 떠오르게 합니다. 마치 '내 마음은 호수요.' 은유의 대표적인 문장처럼 '은혜는 감사함이다.'라고 대치하여 쓸 수 있을 것 같네요. 세상이 왜 이렇게 각박하지, 세상 사람들은 왜 다들 그렇게 각자가 이기적이지? 라는 생각이 드는 와중에도 분명 은혜를 입어 그 모든 세상에 대한 편견과 악감정을 사르르 녹여버릴 수 있는 사람들과 상황들이 존재합니다. 정신적 지지를 주는 사람, 그냥 나니까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 뜨겁게(?) 사랑하는 눈빛으로 바라봐주는 고양이, 비록 은행의 것이라도 나에게 안온한 휴식을 주는 집이라는 공간, 그리고 아무도 없는 카페안에서 마스크를 벗고 편안히 들숨 날숨을 만끽하는 이 순간까지. 사실 '은혜'라는 것은 하나 하나씩 감사하다보면 끝도 없이, 무한히 끄집어 내게 되는 과거와 현재의 나노 단위 기억인 것 같습니다. 살아서 숨쉬는 매 초마다 누군가의 은혜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지요. 그게 사람이든, 또 누군가에 따라서는 신이든, 바로 자기 자신이든. 나는 누구에게도 감사할 일이 없다 하는 아주 절망적인 생각이 들더라도, 나를 지탱해나가는 살아가게 하는 나 자신에게 입은 은혜만큼은 절대 잊지 말아야할 것입니다. 스스로 버티며 그래도 나를 지켜주는 내가 베푸는 나 자신에 대한 은혜. 온전히 평온하게 살아가기 힘든 세상에 자신을 바로 세우며 살아내는 당신은 아주 큰 일을 해나가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는 것만큼 힘든일은 없지만 그 힘든일을 지금 당신이 하고 있어요. 그럴 수 있도록 나에게 베풀어준 당신과 당신 주변의 은혜를 상기하고, '그래. 그래도 덕분이야.'라고 따스하게 웃어볼 수 있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빛깔고운 '당아욱'의 꽃말은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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