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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츄 Aug 18. 2022

ADHD일지라도 작가인 내가 좋아

성인 ADHD 현대 로맨스 웹소설 작가ㅣ메디키넷리타드 복용 기록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뜨거운 여름을 식히듯 차가운 비가 쏟아져 내린다.

창문을 기분 좋게 톡톡 두드리다가도, 때로는 마치 변덕을 부리는 것처럼 세차게 부딪쳐오는 장마 기간이 좋다.


이렇듯 빗소리를 들으며 글을 쓸 땐,

작가만큼 내게 잘 맞는 직업은 없다고 상기하며

우울 속에 깊이 잠겨있는 상태임에도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것에 감사하게 된다.






나는 말라가는 시냇물 같았다.


미약하게 물을 흘려보내긴 하지만 언제 말라 없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그런 시냇물.


끝없이 우울했으며 산만했다.

매 순간이 피곤하고, 졸리고 무기력했다.

그런데 막상 잠을 청하려고 누우면 부정적인 생각이 마구잡이로 밀려오면서 머릿속은 소란해졌다.

그에 따라 이어지는 내 행동은 둘 중 하나였다.

생각에 지쳐 겨우 잠에 들거나.

터덜터덜 일어나 다시 밤을 지새우거나.


푸로작 캡슐을 몇 달째 처방받고 있었음에도 나는 강박적으로 불안과 비관으로 내 미래를 단정 짓는 걸 멈추지 못했다.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이제는 내면 깊숙이 뿌리 박혀있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이걸 어떻게 할 방법은 내게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겪고 있던 핵심적인 증상 몇 가지.

(집필할 때도 영향이 가서 심각하다고 느꼈던 것들)



 해야 하는 일을 시작하려고 앉으면, B 가 생각나서 B를 하고, B를 하고 있다가 C를 떠올려서 C를 하게 되면서 결국 원래 하려던 일을 마치지 못한다.


따라서 작업 진행 속도가 느리고, 효율이 매우 없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계속 미룬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강제성이 있거나 마감이 있으면 어떻게든 하려고 했는데 우울감이 심해지면서 이제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글을 쓰려고 일단 앉는다. 그런데 문장이나 전개를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지면서 (뭘 써야 할지 정해놨었음에도 불구하고) 늘 어려움에 부딪친다.

그래서 회피하듯 유튜브를 본다. 그러다가 집중해야지, 이러면 안 되지 하고 다시 한글 프로그램을 켜지만 다시 딴짓을 하게 된다. 이 루틴을 반복한다.


또, 글 쓸 때 사건의 순서대로 작성하지 않고 생각나는 장면을 쓰다가 또 다른 장면을 쓰고, 그런 식으로 왔다 갔다 하며 글을 쓴다.


(한편에 abcde라는 내용이 있으면 b 썼다가 e 썼다가 c 썼다가 아, 순서대로 써야지 하고 뒤늦게 깨닫고 a를 쓰려고 하지만 결국 c를 쓰고 있다.)


 물건을 챙겼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나오면 챙기지 않은 경우가 다반사.

항상 스마트폰이나 지갑 등을 깜빡해서 엘리베이터까지 갔다가 다시 아파트 복도를 뛰어서 집으로 돌아가 가져온다.






ADHD 진단 후 시작된 약물치료.

3주 차까지는 1주 간격으로 내원해서 약을 조금씩 증량해갔다.

위의 증상들이 개선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있었던 것 같다.




1주 차(22년 7월 26일~) : 푸로작 캡슐 20mg 2정. 메디키넷리타드캡슐 10mg (5mg씩 아침 점심으로 나눠 복용)


별다른 부작용은 없다.

다만 한 가지, 항우울제를 먹은 지 꽤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개선되지 않는 이 우울감을 기약 없이 달고 살아야 하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2주 차 : 프라조든염산염정 25mg. 뉴프람정 20mg. 메디키넷리타드캡슐 20mg (10mg씩 아침 점심으로 나눠 복용)


의사 선생님께 우울감이 몇 달째 사라지지 않고 있고, 여전히 살기가 싫고 무기력하다고 말했다.

잠은 한 번 들면 잘 자긴 하는데, 자기 전까지 생각이 너무 많아서 2시간 이상은 뒤척인다고 털어놨더니 푸로작 대신 다른 약으로 대체해주셨다.


증량한 메디키넷을 복용 한 첫날. 머리가 묵직해진 느낌이 들었지만, 다음 날 증상은 사라졌다.


푸로작 대신 바꾼 약은 확실히 우울감이 덜해졌고, 뒤척이다가 잠에 드는 시간도 체감적으로 줄어든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마치 엉망진창 낙서로 가득했던 것만 같은 머릿속이 생각이 좀 없어지고, 둔감해진 기분이 든다.




3주 차 : 프라조든염산염정 25mg. 뉴프람정 10mg. 메디키넷리타드 캡슐 30mg (15mg씩 아침 점심으로 나눠 복용)


이번에는 머리가 묵직해진 느낌이 다음 주 병원에 내원할 때까지 계속 있었다.

집필 시간을 늘리기 위해 7시 55분 기상에서 6시 55분 기상으로 바꾸었다.

집중이 잘 되는 건 잘 모르겠다. 집필할 때 불필요하게 새는 시간은 여전히 많다.

그렇기에 작업효율은 나지 않는다. 그래도 계속 붙잡고 늘어질 수밖에.




4,5주 차 : 3주 차 복용량 유지


의사 선생님께 머릿속이 무겁다고 말했더니 2주 동안 지켜보자고 했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 더 30mg로 먹어보니 이제 머릿속이 묵직한 느낌은 완전히 사라진 상태이다.


막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지만,

여러모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문제들을 지금은 하나둘씩 인지하고 고쳐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자신감이 굉장히 결여되어 있고, 난 어차피 안 될 거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내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

방금 생각했던걸 한 3초 만에 까먹는 게 상당히 심하다는 것, 등등.


현재 심정으로는 조금 더 증량해보고 싶은 마음.






문득 예전에 썼던 원고를 들여다보았다.

중후반부 회차까지 작성했지만, 현재 작품 마감을 끝낸 후 역량이 오른 상태에서 다시 고쳐보고 싶어서 지금은 폴더 안에서 깊이 잠들어 있는 작품이다.


원고는 어떻게 열심히 써놨는데, 시놉시스나 짜 놨던 에피소드의 영감들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어서, 다소 산만한 느낌이 들었다.


이러면 난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도대체 그동안 출간은 어떻게 한 거지?'


아~~~모르겠다.

이제 와서 고민해서 뭐하겠는가.

그냥 글이나 많이 많이 쓰고 싶다.





윤츄 yoonchu

프리랜서

현대 로맨스 웹소설 작가

우울증

강박증

성인 ADHD

왼손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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