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눈, 실명될 수도 있어요"

Ep01. 온전히 스스로를 위해 살아야겠다는 첫 번째 다짐

by THE RAFT

순식간에 일어난 일


펑!


순간이었습니다. 소리만 기억날 뿐 뭐가 어떻게 된건지는 자세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습니다. 글로 쓰려니 참 창피한데, 수란을 조금 데워 삶은 계란처럼 먹어보려 전자레인지게 돌렸던게 화근이었어요. 처음 전자레인지에서 꺼냈을 때는 별 탈이 없길래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돌리면 되겠지?' 라는 생각으로 전자레인지에 다시 넣었는데.. 그게 그만...


전자레인지에서 계란을 빼 테이블에 올려두고 보글보글 거리는 잠시 계란을 관찰하던 중 일이 터져버렸습니다. 미세하게 올라오던 보글거림이 이렇게 큰 일이 될 줄 알았다면.. 쳐다보고 있지 않았을텐데 말이죠...





얼굴로 온도를 가늠할 수도 없는 무언가가 덮쳤고, 순간적으로 정신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한 3초 정도 지났을까, '아 엿 됐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더랬죠. 얼굴을 부여잡고 본능적으로 차가운 물에 정신없이 얼굴을 가져다 댔습니다. 얼굴 상태를 보러 화장실로 직행했는데 눈에도 뭐가 들어갔는지 제대로 보이질 않았습니다. 뿌옇게 보이는 거울의 반대편에 내 얼굴은 무언가가 벗겨지고 있는 것 같아보였습니다.


'망했다.'


그렇게 얼음물에 얼굴을 넣었다 뺐다를 반복하기를 몇 분쯤 지났을까. 구급차가 도착했습니다. 제 인생의 두 번째 구급차. 태연한 척 해보려 했지만 머리 속에서는 별의별 생각이 다 들더군요.


'아 얼굴 흉지겠네..'

'결혼 다했네! (그 와중에 결혼까지 생각했어욬ㅋㅋㅋ)'

' 아 진짜 바보같은 짓을 왜 했지..'

' 그나저나 왜 구급차가 사이렌을 안 켜고 달리는거지..?'


머릿속에 수 많은 생각들을 뒤로하고 퇴근시간이라는 전쟁터와 코로나19로 여러 병원을 돌다가 겨우 순천향대학병원에 도착했습니다. 체감상 꽤 길었던 대기시간을 거쳐 응급실 병상으로 옮겨졌는데요. 의사가 곧장 달려와서 응급처치를 해 줄거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죠. 일단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함께 응급실까지 와 준 회사동료이자 임시 보호자에게 응급처치 방법을 알려주고는 의사는 다시 응급실의 긴박한 소리들 속으로 사라져버렸습니다.


응급실에서 의사의 처치를 받기까지는 꽤나 오랜시간이 걸렸습니다. 성형외과 담당의가 보러와야 한다는 소리가 들렸고, 안과 진료 역시 따로 받아야 한다고 했죠. 1시간이 지나고 제 옆을 지켜주며 안심시켜주던 팀 동료가 떠나고 부모님이 도착하셨습니다. 그와 거의 동시에 성형외과 담당의가 응급실로 내려와 저의 화상부위를 진찰하기 시작했습니다.


'2도 화상이구요. 이건 얼굴에 흉질 것 같네요.'


무신경하고 무덤덤했던 의사는 상처를 이리저리 훑어보는 듯하더니 응급처치를 시작했습니다. 화상부위에 대한 진료는 기다림의 시간이 무색할 만큼 빨리 끝나더군요. 대충 뭔가 스윽스윽 바르는 것 같더니 이내 얼굴에 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여졌습니다. 성형외과 진료가 끝나고 저는 휠체어에 의지해 안과가 있는 건물로 옮겨졌습니다.


잘 떠지지도 않는 눈으로 시력 검사를 하고 이런저런 검사를 진행하려 하는데 갑자기 머리가 핑 돌아 주저앉았습니다. 성형외과 의사가 그랬듯, 안과에서도 역시나 무덤덤하게 눈에 이런저런 약물을 넣고는 눈의 상태를 확인했습니다.


'각막 손상이 심하네요. 왼쪽눈은 실명 될 수도 있습니다.'


의사는 각막 손상이 심해 실명될 수 있다는 말을 했습니다. 눈이 안 보일 수 있다니 전혀 상상되지 않더라구요. 응급실 병상에 누워 있으면서 눈이 좋지 않은 상태임을 어느 정도 각오는 했었지만 갈수록 더 뿌옇게 보이는 세상에 의사의 말이 더해지니 다시 머리가 핑 돌면서 그대로 의자에 주저 앉아버렸습니다.


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걸 부정하고 싶었는지 계속되는 안과 검사에서 어떻게든 보려고 애를 썼죠. 그런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는 계속해서 눈은 더 아파왔고, 세상은 계속 뿌옇게만 보였습니다. 그나마 괜찮은 오른쪽 눈 마저도 왼쪽 눈의 통증으로 제대로 뜨지 못했었죠. 더 이상의 검사가 불가능하다고 느꼈는지 일단 각막을 보호할 수 있는 렌즈와 안약 처방을 해줄테니 하루 이틀 정도 지켜본 후 다시 검진을 받아보라고 했습니다.


image.png 아직 보지 못한게 많은데 이건 아니지 않냐고요!!



큰 대가를 치루고 나서야 깨달은 것


집으로 돌아와 이틀을 앓아 누웠습니다.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해 하루 종일 눈을 감고 기억에 의지해 집을 돌아다녔고, 아둥바둥하며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렇게 이틀 정도를 보내고 나니 통증으로 인한 고통의 시기가 지나고 회복의 주기가 시작됐습니다. 꽤나 시간이 흐른 지금. 다행히 제 눈은 양쪽 모두 잘 보입니다. 걱정했던 실명은 되지 않았고, 얼굴도 다행히 화상 전문병원에서의 치료 덕분인지 별 탈없이 잘 아물었습니다.


참 어이없게도 우연히 불어닥친 이 사건으로 저는 삶에 대한 생각이 크게 바뀌었습니다. 사고가 있기 전에 저는 매일 아침 어딘가에 끌려가듯 가던 회사 그리고 그 속에서 늘 제 스스로의 시간을 지옥으로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저 도망치고만 싶었죠.



image.png


그렇게 살아서 뭐하나 싶더라구요. 이렇게 언제고 갑자기 멀쩡하던 몸의 한쪽을 잃을 수도 혹은 당장 내일 살아있지 않을 수도 있는데, 삶의 시간을 스스로 지옥으로 만들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몇 가지를 노트에 적어뒀습니다.




온전히 나만의 속도와 나만의 방향을 가지고 살아갈 것


첫 번째,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시간, 이 날을 감사하게 생각할 것. 제가 지금 보고 있는 이 세상과 이 풍경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지 느꼈던 사고였습니다. 매번 보는 풍경일지라도 자세히 보면 매일의 하늘은 다르고 매일의 햇볕이 조금씩 다르죠. 자연이 주는 매일의 다른 풍경을 볼 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깨달았습니다.


두 번째, 함께하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이야기 할 수 있음에 감사할 것. 매일 보는 가족들, 매일 보는 동료들과 친구들과 얼굴을 보고 눈을 마주하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음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것들을 미루지 말고 해볼 것. 죽을 고비를 넘긴 건 아니지만 '보통의 일상'에서 조금은 멀어져보니 제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못했던 날들이 후회되더라구요. 제가 하루하루 그저 흘려보냈던 시간들이 예상치 못한 어느 순간에 온전치 않은 날들이 될 수도 있음을 알게되니 더더욱 하고싶은 것들, 해보고 싶었던 것들에 머뭇거리지 말고 도전해야하겠다는 마음이 절로 생겨났습니다.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고, 스스로에게 피어나는 의문과 질문들에 대해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대답을 기다리고 찾을 것. 그리고 그 대답들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남들의 속도와 방향성이 혹여나 나의 그것과 같지 않다고 하더라도, 조급해하지 않고 나만의 리듬으로 살아갈 것.




계란 폭파사건은 어느 덧 5년이라는 시간의 뒷편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인생에서 그리고 제가 THE RAFT 라는 브랜드를 만들어보자! 라고 생각하게 한 가장 첫 번째 계기인데요! 나라는 존재에 대해서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현재에 대해 그저 불만만 가지고 있을 때, 삶을 얼마나 허무하게 흘려보내고 있는지 깨닫게 해 준 경험이어서 인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THE RAFT의 첫 번째 비하인드 스토리 어떠셨나요? 혹시 여러분도 저와 같은 갑작스러운 사고로 인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된 경험이 있으신가요? 있으시다면 댓글로 공유해주세요! 하나씩 꼼꼼히 읽고 THE RAFT에 더 많은 사연을 담을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



"Live on your own and Float together!"

"자신만의 이유와 리듬으로 살아가는 단단한 개인들을 위하여"


다음화 예고 : 브랜드 스토리 Ep2 '예고없이 찾아온 10줄의 구조조정 통보 메일'

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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