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동사무소 직원의 오후

- 함께 사는 세상을 꿈꾼다 -

by 노이 장승진

나는 동사무소에 근무하는 34년 차의 공무원이다. 사람들에게 친숙한 동사무소, 지금은 동 주민센터라고 명칭이 바뀌었다! 아무튼 동사무소 생활은 나에게 기쁨을 준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각계각층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30년여 전에 첫 발령지로써 5년여를 근무하다가 구청으로 발령받아서 근무하였으며, 그 후 서울시청과 구청으로 근무하다가 나는 다시 이 동네로 발령을 받았다. 어느새 나도 허리도 약간 굽어지고 흰머리가 성성해졌지만 초임지였기 때문에 나는 알 수 없는 감동을 느끼며 근무를 시작했었다.


오랜만에 근무하는 동사무소에 출근하면서 과거에 있었던 분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동네에서 30년이나 쌀 배달을 하는 아저씨, 주민들을 위하여 30년 이상 봉사하는 부녀회장님, 30년이 된 이발소, 그리고 30년 이상 새벽 4시에 일어나 길거리를 청소하시는 통장님, 모든 것이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구청에 비해 부담이 없는 작은 조직 속의 근무를 하면서 나는 작은 일상 속의 안식을 찾고 생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어느새 동사무소 생활은 과거와는 너무나 다른 것이었다. 일단 1인 가구의 급증이었다. 특히 내가 근무하는 지역은 어르신이 20%가 훨씬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고 있었다. 독거 어르신과 장애인 분들이 많은 지역으로 그 어느 지역보다 지원이 필요한 동네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에 대한 관심이 필요한 지역이라는 점이었다. 오직 사람이 그리운 주민들분들은 아침부터 동사무소에 나오셔서 이야기를 건네신다. "왜 다른 동사무소는 지원도 많고 방문간호사도 자주 오는데 이 동사무소는 왜 그러냐?" 고 따지신다. 그러면 상담실로 모시고 가서 복지에 관한 욕구를 사정하고 상황에 맞는 복지지원 플랜을 통하여 주민분에게 우리 구의 복지제도를 자세하게 설명해 드린다. 그러면 다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만족스러운 표정을 하시는 것을 보면, 어떤 물질적 지원보다도 사실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셨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동사무소에는 세 가지 중점사업을 하고 있다. 특별히 사업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거창하지만 내가 중점을 두고 생각되고 실천하려는 것이 있다. 첫째, 그것은 말씀하세요, 들어드릴게요 운동 와 둘째, 문두 드리기 운동, 셋째, 1인 자서전 쓰기 운동 등 3가지이다.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말씀하세요. 들어드릴게요 운동이다. 얼마 전 직무 관련 교육을 받다가 가슴에 와닿는 말이었다. 우리 동사무소 직원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있을까? 하지만 주민들이 하는 말씀에 귀 기울이는 것만으로 그분들은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다.

둘째, 문두드리기 운동이다. 무슨 소리인가 의아해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1인 가구가 급증하였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1인 가구에 대한 사회적 지원을 위해 노력해야 하고, 그분들이 연락이 안 될 때는 찾아가서 문을 두드려야 한다. 혹시 발생할 수도 있는 고독사에도 대비해야 한다. 처음에는 어색하지만 이제는 매우 익숙해졌다. 연락이 안 되는 분을 찾아가 문을 두드릴 때의 조바심은 정말 피를 말리는 듯한 고통도 때로 뒤따른다. 그러다가 집주인이나 지방에 가 있는 당사자와 통화가 될 때는 안심하게 된다. 그만큼 고독사 문제가 우리 가까이 와 있다.

셋째, 1인 어르신 가구의 자서전 쓰기 운동이다. 어르신은 하나의 도서관이라는 말도 있다. 그분들을 만날 때 우리는 그분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만나게 된다. 그분들이 처해있는 상황을 글을 써주시거나 구술로 받아 적고 정리함으로 그분들이 생활하시는 데 있어서 다시 한번 상황에 대한 적응력이 높이고 행복에 대한 만족도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세 가지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지만 얼마 전 정말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고독사는 아니지만 혼자 계시는 주민이 돌아가신 사건이었다. 이웃이신 주민분이 경찰에 신고하셔서 알게 되었다. 수급대상자와 같이 우리 동사무소와 동사무소가 직접적으로 관리하시는 분들이 아닌 일반 주민이셨기 때문에 직접 관련은 없지만 우리가 더 주민들에게 관심을 갖고 노력해야 했다는 자책감이 들었다. 동사무소에서 소식을 듣고 당사자 고인이 계시는 곳으로 한걸음에 동료와 같이 달려갔다.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지만 당사자인 고인은 형과 같이 둘이 거주하다가 지방에 일하러 간 형이 사정으로 장기 출타 중이 되어 버린 상황에서 서울에서 혼자 생활하다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신 것으로 추정되었다. 나는 감식 중인 경찰관분에게 고독사 업무 담당자라고 이야기하고 허가를 받은 다음 고인에게 인사를 하기로 결심했다. 우리 동에서 관리하는 기초생활수급자분이 아니어서 굳이 그럴 필요는 없지만 용기를 내어 고인에게 인사를 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그동안 복지업무와 고독사 업무와 관련된 전문교육과 공부를 많이 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당황하지는 않았지만, 고인의 마지막 모습을 보면서 예고되지 않은 이별을 한다는 것은 일종의 트라우마가 될 수 있다고 생각이 들었..


그렇게 여러 가지 감정을 느끼며 우리 동네에 사셨던 분에 대하여 마지막 인사를 드렸다. 다시 한 번 더 업무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고 복지업무를 더욱 더 열심히 하기로 결심했다. 퇴직하고 집으로 갈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오늘은 나의 인생의 가장 젊은 날이다. 동사무소에 근무하면서 오늘도 크고 작은 일을 겪게 되면서 보람과 안타까움을 함께 느끼지만 나는 나의 일을 사랑하고, 오늘도 세 가지 운동을 열심히 실천하려고 한다. 오늘 오후 바람은 다른 때보다 더 유난히 차가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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