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좋은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의 배신은 가슴을 아프게 한다. 형사사건의 피고소인이 사실은 대부분 가장 가깝게 지내왔던 사람이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닌 것 같다.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서로 간에 조심하고 사적인 예의를 갖추면서 서로 지켜야 할 거리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서도 천륜이나 정말 가까운 사이, 뗄레야 뗄 수 없는 사이에 쌓아온 인연이라면, 나를 희생하여 상대방이 살아날 수 있다면, 희생하는 것도 좋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부모와 자식, 부부, 서로 사랑하는 연연, 관중과 포숙의 깊은 우정 속에서는 희생은 얼마든지 가족이 아닌 타인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도 몇 년 전 내가 가장 신뢰할 만하다고 생각한 친구로부터 뒤에서 칼로 찌름을 당하는 것 같은 배신을 당하였다. 그 배신이라는 것이 물론 지극히 주관적이다. 그 친구가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하여 나를 사지에 몰아넣었다고 여겼지만 그 친구가 생각하기에 사실 자신뿐만 아니라 나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여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고 그 친구의 말이 맞을 수도 있다.
당시 그 사건은 나의 잘못으로부터 기인하여 촉발된 일이었지만, 나는 원인을 외부로 돌렸다. 당시에 왜 나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을 까 하면서 매우 억울해했고, 그 일로 인하여 나는 큰 충격과 분노로 잠을 전혀 잘 수 없었다. 자책감을 나를 사로잡아 폭음을 한다든지의 중독적 상태인 자학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면서 인간관계에 대해 큰 실망감과 회의감을 갖게 되었고 사람을 두려워하기도 했다.
그 당시에는 너무나 힘들었다. 분노의 칼을 갈았다. 어렵고 힘든 시기가 오래도록 지속되었지만 내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도록 힘을 준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항상 무엇인가를 배우려는 나 자신의 의지였고 또 하나는 딸의 배려있는 말 한마디 "나는 지금의 아빠도 자랑스러워요!" 하는 말이었다.
세월은 흘러 분노의 칼을 갈면서 언제가 반드시 보복을 꿈꾸며, 세상의 배신에 대하여 가차 없이 응징을 해야 한다는 나의 마음에 조금씩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연민의 정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오죽하면 그랬을까, 어쩌면 자신보다는 나를 위해 그렇게 가혹하게 처신했을 수도 있겠다는 약간 오버하는 생각도 들게 된 것이다.
아무튼 나의 희생으로 네가 산다면 그것도 가치 있는 삶이라고 생각된다.
얼마 전 배우자에게 물어보았다. 생활비의 1/3의 정도를 종신보험, 실손보험 등을 포함하여 보험료를 내고 있는 배우자에게 '실손보험은 필요하지만 내가 사망을 해야만 나오는 종신보험에 굳이 이렇게 많은 보험료를 내냐'라고 항의조로 말하자 배우자는 담담하게 하게 말했다.
"당신이 죽어도, 우리도 살아야지!"라고. 처음에는 어이가 없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일리가 있는 맞는 말이었다.
이 세상에는 나의 노력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일도 많지만 사실은 누군가의 희생이 있어야 더 확실히 이루어지는 일이 더 많다. 곤충인 사마귀와 가시고기 소설, 오래전에 보았던 마당을 나온 암탉이라는 소설을 생각하면 나의 희생의 가치관이 더 확실해진다.
첫 번째, 흔히 볼 수 있는 사마귀의 경우이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사마귀는 짝짓기 전후에 암컷이 수컷을 잡아먹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암컷은 짝짓기가 끝나면 원기를 회복하고 알을 낳는데 필요한 단백질을 얻기 위해 주위에 있는 먹이를 닥치는 대로 삼킨다. 수컷은 이를 막기 위해 도망가거나 몸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거미의 경우는 수컷이 살아남기 위해 암컷을 물거나 독을 주입하고 거미줄로 묶어 두고 짝짓기 하는 등 강압적인 방식으로 잡아먹힐 위험을 줄이기도 한다.
과거에는 어렸을 때는 사마귀를 아주 나쁘고 무서운 해충으로만 생각했었는데, 희생의 가치관에서 보면 암컷도, 수컷도 모두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출처 : 블로그 구스구스구스(2014. 4)
둘째, 가시고기라는 소설에서 나오는 아버지의 희생도 반추해 보기 시작했다. 실제로 가시고기란 부성애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물고기라고 한다. 암컷이 버리고 간 새끼 가시고기를 끝까지 키우고 그 새끼 가시고기가 어느덧 커서 떠나게 되면 돌에 머리를 박아 생을 마감하는 것이 수컷 가시고기라고 한다.
셋째, 마당으로 나온 암탉이라는 소설을 보고 희생의 가치관을 확실히 나의 가치관으로 삼기로 했다.
소설 속의 주인공인 암탉 잎싹은 양계장에서 알만 낳는 삶에 싫증을 느끼게 된다. 어느 날 계속 굶고 있던 잎싹은 갑자기 쓰러지고 주인은 죽은 닭들과 함께 그녀를 구덩이에 버린다. 정신을 차린 잎싹이 눈을 떠보니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면서 족제비가 그녀를 덮쳐온다. 그녀를 구해준 것은 수컷 청둥오리. 잎싹은 그를 나그네라 부른다. 그렇게 마당으로 돌아간 잎싹은 얼마 지나지 않아 쫓겨난다.
슬픔에 잠긴 잎싹은 마당을 떠나기로 한다. 잎싹은 그곳에서 나그네와 만나지만 나그네는 이미 뽀얀 오리와 짝을 이룬 뒤였다. 뽀얀 오리는 알을 낳고 알을 지키지만 족제비에게 잡아먹힌다. 알을 발견한 잎싹은 자신이 그 알을 지키기로 한다.
잎싹은 애지중지 새끼를 키워 '초록머리'라고 부른다. 초록머리도 성장하여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하였고, 어느날 족제비가 다시 나타나 자신보다 더 아끼는 초록머리의 생명에 위협을 가하려고 한다.
항상 공공의 적이 되어 위협을 가했던 족제비, 하지만 알고 보니 족제비도 사실은 생존을 위하여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족제비에게도 사실상 더 이상 먹이가 없었다. 게다가 새끼까지 낳았다. 족제비로부터 경계를 하던 초록머리가 방심한 틈을 따 족제비는 초록머리를 잡았다. 절체절명의 위험의 순간에 잎싹이 나서서 족제비의 새끼를 죽여 버리겠다고 하자 족제비는 그제서야 할 수 없이 초록머리를 풀어주었고.
초록머리는 잎싹을 떠나 종속들과 함께 영원한 이별의 먼 길을 떠나게 된다. 마지막으로 잎싹은 결심을 하고 잎싹은 스스로 족제비에 먹이가 됨으로써 족제비와 그 새끼를 살리고자 한다. 그렇게 잎싹은 죽임을 당하게 된다.
나도 모르게 잎싹이 죽는 그 장면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난다. 어떻게 이렇게 황선미라는 나와 비슷한 연배의 작가님은 훌륭한 글을 쓸 수가 있었을까 궁금해진다.
결국 인생은 돌고 돈다. 많은 정치인과 연예인, 일반인들이 서로 잡아먹고 잡아 먹히는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나를 죽이려는 인간에 대해 너무 슬퍼할 필요도 없다. 그 사람도 자기와 자기 가족이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인간지사 새옹지마이고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 결국 돌고 돌아 모두 다 제 자리로 돌아 올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