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속에 남는 생일날

가족과 함께 한 생일파티

by 노이 장승진

우리들이 살면서 경험하게 되는 사건들의 기억은 서서히 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우리 가슴에 남아있는 기억은 추억이 되어 언제나 우리 마음을 두근거리게 한다.


어렸을 때는 어머니가 생일날 미역국을 꼭 끓어 주셨다. 집이 가난했지만 어머니는 항상 미역국을 끓어주셨다. 따스한 김이 나는 미역국을 생각하면 이상하게 지금도 눈물이 난다. 집안이 가난해서 그 외에는 생일잔치준비나 선물등 의 이벤트를 별도로 한 것 같지 않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우리 집에서는 선물을 자주 주고받지는 않는 것 같다.


누구에게나 돌아오는 생일날이었지만 막 결혼을 해서는 맞벌이를 하니까 몇 년 동안 그냥 넘어간 적이 많았다. 하지만 서로 상극의 성격의 와이프와 만났던 나는 고부갈등등으로 부부싸움을 자주 했기 때문에 힘들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와이프의 생일잔치 이벤트를 하면 사이가 좋아질 수도 있으므로 생일상을 차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와이프의 생일을 기억해서 잊어버리지 않고 매년 축하해 주시기 시작했고, 그다음에 아이들이 태어나서 아이들의 생일잔치를 소박하지만 빠짐없이 차려주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나는 사회생활로 바쁘기도 하여 와이프와 아이들의 생일잔치를 꼭 차렸지만, 나는 안 차려도 된다고 이야기를 하여 나의 생일은 그냥 넘어간 적이 많았다.


그렇게 하기를 반복해 왔는 데, 아이들이 아빠의 생일을 반하고 챙겨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여 나도 지금은 꼬박꼬박 생일상을 받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도 생일날의 좋은 추억을 간직하기 시작했다.

우리 집에서는 생일날 4가지 정도가 이루어지는 데, 그것은 아침 미역국 먹기, 명소에 바람 쐬러 가기, 저녁외식, 케이크 커팅하기의 네 가지를 해오고 있다.


내가 가장 기억에 남는 생일날은 몇 년 전인가 한강유럼선을 탔던 기억이다. 오랜만에 강바람을 맞으면서 가족 4명이 유람선을 타는 것은 그래도 특이한 추억이었다. 처음으로 탔던 유람선에 대해 우리 모두 신기해했다. 게다가 배위에서 바라보는 서울의 야경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유람선의 선상에서는 사회자가 이벤트를 하면서 공연을 이끌었는 데 매우 이색적이었다. 사회자는 유머가 있고 센스가 있게 진행을 하였는 프로그램의 대부분은 댄스와 음악공연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출처 동아일보(2011. 12. 7)


유람선이 왕복하면서 진행되는 프로그램을 끝내고 배에선 내려온 후 우리는 저녁식사를 외식을 했다. 그때 무엇을 먹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정말 온 가족이 감동에 빠져서 '난생처음 한강유람선'을 탔다는 경험만으로 매우 흥분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식사를 했다. 정말 식사는 무엇을 먹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누구랑 먹느냐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외식을 하고 돌아와서는 아이들이 준비한 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생일축하노래를 함께 불렀다. 생일축하노래는 정말 언제 불러도 질리지 않는 신기한 노래였다.


며칠 전에도 시간이 났을 때 딸아이랑 한가한 시간이면 그때 생일날을 생각하며 물어본다!


"그때 아빠 생일날 유람선 탔던 거 정말 좋았지?"라고 물어본다. 그러면 딸은 "진짜 최고였어 아빠! 분위기 최고이었어요!"라고 대꾸를 해 준다. 이렇게 치키타카(서로 대꾸함을 의미)를 즐기며 우리 가족은 평화로움을 느낀다.


다시 한번 소중한 추억은 기억 속에서 없어지지 않고 항상 가슴속에서 좋은 추억으로 남는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소중한 생일날의 추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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