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한 걸 달라는 데, 주는 쪽이 너도 잘못은 있잖아라고 할 수 없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약속한 걸 그대로 달라고 요구하는 건데, 그걸 주지 않은 쪽이 ‘너도 잘못했잖아’라고 말을 듣는 황당한 경우가 있다. 이러한 때에 적용할 수 있는 채무내용에 따른 본래 급부이행을 구하는 경우에는 과실상계가 적용 안된다는 이야기이다!
판례를 자세히 살펴보니 “과실상계는 본래 채무불이행 또는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에 대해 인정되는 것이고, 채무 내용에 따른 본래의 급부의 이행을 구하는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대법원 1996. 5. 10. 선고 96다 8468 판결)라고 표현하고 있다.
더욱 쉽게 풀어보면
A가 B에게 1,000만 원을 빌려줬어요. A는 “약속한 돈 돌려줘”라고 요구해요.
→ 이건 본래의 급부 이행 청구예요.
그런데 B가 “너도 나한테 예전에 연락 안 했잖아, 너도 잘못 있어”라고 말하며
→ 돈을 덜 갚으려고 해요.
이럴 때 법원은 이렇게 말해요:
“이건 손해배상 청구가 아니라, 그냥 네가 빌린 돈 돌려달라는 거니까,
A의 잘잘못은 따지지 말고 돈은 다 갚아야 해.”라는 것이다.
얼마 전부터 법을 공부하는 재미를 다시 깨닫는 중이다. 인간사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인과관계이다. 살아가면서 필요한 세심한 규칙을 이해하고 그 법리를 평소에 담아두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그냥 인정하여 휘말려 두리뭉실하다가 낭패를 보는 세상을 살 수도 있다. 우리 사회의 규칙과 법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서 우연히 보게 된 판례가 맘에 들었다.
살다 보면 상대방과 계약을 해 놓고서도 다른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답을 정해 놓고 덤비는 사람들이 매우 두렵기 때문에 모든 것을 비합리적으로 상대방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을 보게 된다. 예를 들어 돈을 빌려가고도 다른 이유를 붙이고 정말 얼토당치도 않은 이야기를 내세우는 사람들이 많다. 돈을 빌려가서 갚을 생각을 하기는커녕 상대방의 약점을 캐내어 너도 잘못한 것이 있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예금 반환청구와 같이 계약상 급부 자체를 청구하는 경우에는 예금주의 과실이 있더라도 과실상계나 책임 제한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면 왜 과실상계가 적용되지 않을까?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과실상계(民法 제396조)는 손해배상 책임을 감경하기 위한 제도이다. 하지만 본래의 급부 이행 청구는 손해배상이 아니라 계약상 의무의 이행을 요구하는 것이므로, 과실상계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예시로 살펴본 대로 A가 B에게 1억 원을 빌려주고, B가 갚지 않자 원금 반환을 청구한 경우, B가 “A도 잘못이 있다”라고 주장해도 과실상계는 적용되지 않는다(이건 손해배상이 아니라 원금 반환 청구이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과실상계 적용대상은 손해배상 청구인 채무불이행, 불법행위 등이고, 적용되지 않는 계약상 본래 급무의 이행청구(예: 대금, 보증금, 예금 반환 등)이다.
엄연한 계약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책임을 제대로 지지 않으려는 사람들에게 마음 흔들리지 않고 확실하게 보여 줄 수 있는 판례다! 알고 보니 민법도 매우 우리 실생활에 필요한 법이리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