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공감표현에는 공감의, 공감적, 공감제로의 표현 세 가지 종류가 있다
공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공감은 바로 사회성과 관련되며, 사회성 지능은 그 사람의 과업수행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성공여부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감을 통하여 사회성을 익힌다면 그 사람의 미래는 보장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안타깝게 우리 같은 베이비 붐시대의 사람들은 공감을 전혀 할 줄 모르거나 매우 약한 경우가 많다. 아무리 사람이 좋고 경우가 바른 행동을 한다고 해도 공감측면에서는 2% 부족한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육 남매의 막내로 베이비붐시대에 태어난 나는 무조건 경쟁에서 살아남는 법을 먼저 체득하고 생활해 왔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나는 사회성이 매우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고 사회성을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 남에게 무조건 잘해 주기로 했다.
주는 것이 곧 얻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인생은 내가 베푼 만큼 얻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확실했기 때문에 남에게 베풀려고 노력했다. 나의 노력은 성공했을 까?
나의 노력은 성공했을까? 결론적으로 나의 노력은 헛수고만 하고 끝났다. 나는 대인관계의 기본기를 익히지 못하고 헛된 노력으로 끝이 났다. 물론 나의 노력들은 무성한 험담만으로만 연결도 되었고 효과가 없었다. 나는 실패하고 내 인생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서울에서 중고등학교 대학교까지 나오고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그렇게 오랫동안 해 왔는데도 그러한 것 하나 실천하지 못한다는 좌절감에 힘들어하고 좌절했다.
이제는 대인관계가 그전보다는 중요하지 않은 직장에 근무하기 시작한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러면서 "아하! 그렇구나 깨달았다"
남에게 줄 때나 베풀 때나, 주지 못하고 베풀지 못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 보다 중요한 것은 결국 공감이라는 주제였다.
공감의 말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공감의 말, 공감적 말, 공감제로의 말로 나눌 수 있다.
첫째, 공감의 말은 그야말로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진심으로 공감하는 하는 말로써, 우리라는 관점에서 상대방의 기쁨뿐만 아니라, 슬픔까지도 세밀하게 잡아내어 공감된다. 어쩌면 "타인은 또 다른 하나의 나 "라고 할 수 있다. 우리라는 생각을 갖고 진심으로 표현하는 공감의 말이다.
둘째, 공감적 표현이다. 공감의 표현은 아니지만, 공감의 뜻을 갖고 시도하거나 결과적으로 공감의 효과를 주는 말이다. 서로에게 객관성을 부여하고 부담도 줄여주는 매우 효과적인 관계의 말이라고 할 수 있고 부담이나 피로도가 낮기 때문에 매우 바람직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셋째, 공감제로가 말은 상대방의 관심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때로는 기상천외한 창의적 이야기 같기도 하고, 때로는 그야말로 뜬금없는 자다가 봉창 터지는 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말을 하는 화자들은 내가 나의 가식 없는 진심을 표현하는 데 무슨 상관이냐고 말할 수 있다. 어쩌면 일리도 있어 보이고 긍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상대방도 일도 관심도 없고 어떤 감정이나 메아리를 기대할 수 없다.
결국 인간관계를 잘 이끌어 가는 사람은 이 세 가지를 자유자재로 능숙하게 쓸 수 있어야 한다. 이 세 가지의 비율 공감의 말, 공감적인 말, 공감제로의 말의 비율은 3 : 2 : 1 이 적당하다고 생각하다고 판단되지만 이것은 오직 내가 생각하는 비율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공감의 말이 가장 많고, 공감적인 말이 그다음 많고, 공감제로의 말의 비율이 가장 적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의 가치관, 생활태도, 말습관과 관련되는 것이다.
너무 늦었지만 나도 이제는 공감의 말을 가장 많이 하고, 그다음 공감적인 말, 그리고 가장 공감제로의 말을 가장 적게 하는 원칙을 정하고 실천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