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과 불행은 함께 한다!

행복할 때가 사실은 가장 불행할 때일 수도 있다!

by 노이 장승진


출처 https://www.newsfreezone.co.kr/news/articleView.html?idxno=292651


어렸을 때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 가' 하는 책을 읽은 적이 있었다. 톨스토이 원작의 단편집이었는데 인생의 여러 단면을 잘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어 당시 중학생이었는데도 나는 큰 공감을 갖고 끝까지 읽게 되었다. 그 뒤로 나도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생각하면서 내린 결론은 사람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산다고 결정하고 나도 나름대로 그 행복한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인생의 목표로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니 행복은 고정적인 것은 아닌 것 같다. 행복은 순간적인 것이 아닐까? 순간 순간에 행복이 왔다가 금방 사라지고 불행이라는 손님이 계속 문을 두드리기도 한다. 어떨 때는 행복과 불행이 같이 공존하기도 한다. 우리가 흔히 행복하다는 사람은 행복할 때가 많은 사람, 행복한 순간의 빈도가 매우 높은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지난날 정말 가난한 집의 6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지방에서 무일푼으로 서울로 올라오셔서 아무것도 없던 아버지에게 시집오셨던 어머니는 가난한 집에서 살림하느라 자식들 돌보느라 건강관리를 못하시고 고생만 하셨다. 그러던 어머니가 노환과 당뇨병으로 병석에 눕게 되었고 지금같이 요양서비스가 발달하지 못한 그 때의 상황에서는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10년 이상을 집에서 돌보셔야 했다.


처음에는 입원치료를 하셨지만 병원생활에 익숙하지 않으셨던 어머니는 입원 며칠 만에 집으로 오겠다고 떼를 쓰셨다. 어머니의 병색은 서산에 해가 기울듯이 점차 깊어져도 병원을 거부하셨던 어머니는 집에서 거의 누워만 계셔야 하는데 나중에 욕창이 심해져서 아버지가 아마추어이시지만 직접 드레싱을 하고 그 수발을 다해야 했다. 그 와중에도 아버지는 어머니의 식사를 항상 정성껏 차리셨고, 어머니는 식사를 잘 하시고 소파에 앉아서 TV를 시청하셨다. 시간이 흐르자 원래 가부장적이셨던 아버지는 갈수록 어머니에게 구박을 하기 시작했고 아버지의 욕설이 심해지고 어머니보고 빨리 죽으라고 하셨다.


나는 그러한 장면들을 보고 너무 답답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는 그 상황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나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다고 생각하면서 괴로움에 시달렸다. 그리고 어쩌면 어머니가 빨리 돌아가시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다음 죄책감으로 속이 많이 아프고 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돌이켜 보면 어머니는 막내인 나를 항상 이뻐하셨다. 과자도 가장 많이 주셨다. 어머니가 나에게 잘해 주셨던 생각을 떠올리면서 어머니가 병석에 누워있었지만 막내인 나에게 사랑을 많이 주셨던, 그 어머니가 살아계셨던 그 순간이 어쩌면 나에게는 가장 소중하고 행복한 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세월은 흘러 내가 어머니의 나이가 되었고 이제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오래되어 어머니 얼굴마저 희미해지고 있으면서도 어머니에게는 정말 죄송하고 미안하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우리 인생이 행복하다고, 혹은 불행하다고 자기 자신의 인생을 규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누구나 행복한 순간은 자신감이 넘치고 자애적이 되며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 것 같다가도 불행한 순간이 닥치면 내 인생은 끝났다는 절망감으로 심적 고통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우리 인생은 행복과 불행이 공존하니 인간으로서 무조건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행복하든지, 불행하든지 우리의 소중한 인생인 화살처럼 흘러가고 있다. 이왕이면 지금 나에게 처해진 불행과 행복 모두 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 이 순간을 글을 쓰는 순간이 나에게는 정말 행복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내일 작은 일이라도 닥치면 괴로움에 눈물 콧물 다 흘릴지도 모르겠다.


이제부터라도 어렵겠지만 행복과 불행 모두 감싸 앉고 담담하게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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