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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예 Nov 05. 2021

열배 더 '값진' 수업으로 바꾸는 기적

이대역 뒷쪽, 가파른 언덕을 한참 오르면 13년 전 제가 낮이고 밤이고 무거운 가방을 메고 골목길을 뛰어다니던 정다운 그 동네가 있습니다. OO동 산동네. 제가 지금의 회사에서 인턴 학습지 교사로 근무하던 시절, 처음 아이들을 방문하여 가르치던 '교실'이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그 동네를 눈으로 그릴 수 있습니다. 팔이 짧은 내복을 입은 아이들이 골목길을 달리고, 도둑 고양이들이 훤한 대낮에도 먹을 것을 찾아 어슬렁거리던 곳. 언덕길 양쪽으로 구불구불 끝이 보이지 않는 좁은 골목들을 들어가면 음식 쓰레기 봉지 옆으로 엄지만한 바퀴벌레들이 배를 드러내고 누워 있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은 개의치 않습니다. 낮에 일하러 가신 엄마아빠 대신, 아이들의 높고 청량한 목소리만 거리의 공기를 달게 채우던 그곳에서 저는 저의 처음 제자들을 만났습니다.


현우네는 그 동네에서도 더 어려운 집에 속했습니다. 그런 집이 있다는 곳도 거기서 처음 알았지요. 몸을 숙여야 통과할 수 있는 녹슨 슬레이트 대문을 지나면 바로 방으로 통할 수 있는 작은 문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화장실과 부엌은 한 집을 사는 이웃들과 같이 쓰는 구조였습니다. 그 집의 한 평짜리 집에서 현우는 엄마와 함께 살았습니다. 그렇지만 현우의 방은 항상 정돈되어 있었고 정갈했습니다. 현우는 제가 오기 전에 작은 앉은뱅이 밥상에 미리 공부할 책과 노트,그리고 방석을 준비해 놓았습니다. 어머님이 준비해주신 소박한 간식도요. 시원한 박카스일 때도 있었고, 빨대가 꽂아진 야쿠르트 일 때도 있었습니다. 인사를 하고 자리를 잡는 내게 현우는, "어머님이 선생님 드리라고 하셨어요."하며 수줍내 쪽으로 음료수를 밀어 주었습니다. 어머님을 한 번도 뵙지는 못했지만, 그 어머님의 모습이 눈에 떠오르는 것 같았습니다. 낡은 옷이지만 깨끗하고 정갈하게 입으셨을 것이고, 항상 말과 행동이 조심스럽고 바를 것 같았습니다. 현우의 모습이 그랬고, 그 한 평짜리 방이 그랬으니까요.


내가 가장 감동을 받는 날은 회비를 받는 날이었습니다. 학습지는 매 월 마지막 주에 차 월의 회비를 받습니다. 그 교실은 내가 후에 3-4년 교사와 팀장으로 근무했던 곳 중, 가장 회비 회수율이 좋았던 곳이었습니다. 현우의 집도 그랬습니다. 회비를 주는 날이 되면 앉은뱅이 밥상에 책과 노트, 음료수 외에 하얀 봉투가 놓여져 있습니다. 하얀 봉투에는 '선생님, 감사합니다.'라는 너무나 정성스런 글씨가 쓰여 있습니다. 그리고 봉투에는 꼬깃꼬깃한 만원짜리 세 장과 천원짜리 세 장, 33,000원이 들어 있습니다. 현우가 공부하는 영어 과목의 회비 였습니다.

현우네는 가 그 곳을 떠날 때까지 단 한번도 회비를 미루거나 거른 적이 없었습니다.


회비를 처음 받던 날, 저는 그 봉투를 받아들며 무언가 울컥 올라오는 것을 억지로 욱여넣었던 느낌을 기억합니다. 저는 짐작했습니다. 어머님께서 많지 않은 월급을 받자마자, 가장 먼저 그 돈을 떼어 아이의 교육비로 소중히 넣어주신다는 것을. 벌써 6학년이 된, 중학생을 준비하는 큰 아이를 여느 아이처럼 어학원도 공부방도 보내주지 못하지만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사랑과 헌신으로 현우를 키우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 고작 10분의 수업시간이지만 그 수업을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하게 여기고 계시는지를요.


현우는 그 어머님의 헌신과 믿음대로 정말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였습니다. 한 주 학습지에 있던 모든 문장과 단어를 모조리 다 외워 왔습니다. 학원을 다니면서 학습지를 그저 보조 수단으로 공부하는 아이들은 그렇게 공부하지 않습니다. 빈 칸만 채워 놓기도 하고, 눈치껏 풀기도 하고 그저 교사의 검사가 끝나면 쓰레기통으로 직행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현우는 책을 차곡차곡 모아두었었고, 또 보고 또 풀고 하였습니다. 저는 당연히 그 집에 가면 최고의 교사가 되었습니다. 그저 자연스럽게요. 현우가, 엄마가 저를 대하는 믿음처럼. 그 33,000원에 담긴 회비의 의미를 알았기에, 그 흰 봉투의 가치를 알았기에, 저는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모든 것을 가르쳐 주었고 쏟아 부어주었습니다. 현우는 감사하고 기특하게도 다 받아들여주었습니다. 배운대로 영작해보라 하면 최선을 다해 해왔고, 제가 사서 선물해 주었던 중학 단어집도 빠짐없이 외워왔습니다. 현우의 집을 나올 때면 더 가르쳐주지 못해, 더 알려주지 못해 항상 아쉬웠었습니다.


지금 현우는 청년이 되었겠지요?


현우가 누구보다 멋지고 의젓하고 바른 청년으로 자랐을 것이라는 걸, 저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어떤 서비스도 어떤 물건도 어떻게 받느냐에 따라 그것이 훨씬 값진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 때 배웠습니다. 33,000원짜리 학습지도 부모가 어떤 학습으로 대하느냐에 따라, 우리 아이에게 330,000원짜리 수업이 될 수 있다는 것을요. 가난하고 어려운 처지에라도, 부모의 삶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우리 아이는 정말 ' 바르고 큰 아이'로 자랄 수 있다는 것을, 삶의 자세 대부분을 나의 첫 동네, OO동 산동네에서 배웠습니다.


워킹맘으로 회사에서 13년을 일하는 동안, 결코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따뜻했던, OO동에서의 그 기억은 나를 계속 이 회사로 붙드는 힘이 되었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우스울 수 있는 학습지 한 권이 또 어떤 이에게는 학교 외의 유일한 학습의 도구도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어떤 부서에 있건 어떤 직위에 있건 정말 진심을 다해 일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후에 교육 부서와 마케팅 부서로 연달아 스카우트도 되고, 중요 프로젝트를 맡아 수행하는 책임자도 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내 삶을 정의하는 태도, 그리고 타인을 대하는 모습을 나의 아이들이 보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내 상황이 비록 암흑 속 터널같을지라도 그 터널의 끝에 반짝이는 빛을 보려 노력하고, 내가 만나는 타인을 귀인으로 대한다면 우리 아이의 모든 시간은 더 가치있는 '배움'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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