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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예 Feb 17. 2023

낮과 밤

시은아 시은아 (4)

자다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눈을 떠보니 시은이가 깨어 있었다. 엄마를 깨우지도 않고 조용 어둠 속에 앉아 있던 아이. 순간 덜컹했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 애썼다. 그리고 아이를 불렀다. 시은아, 왜 안자고 일어나 있어. 창밖으로 어스름한 새벽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어둠이 익숙해지면서 아이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는 책장에서 책을 하나 빼더니 무심히 페이지를 넘기고, 또 침대 곁에 놓인 커다란 쿠션의 지퍼를 계속 열었다 닫았다 했다. 나는 아이를 품에 안고 자장가를 부르며 재웠다. 머리칼은 너무 보드라웠고, 아이의 정수리에서 이비샴푸 냄새가 났다.    

내가 최근 보낸 밤 중 가장 막막했고 슬펐던 밤인 것 같다.


어느 토요일. 두 아이 감기로, 또 막둥이의 일로 일주일 동안 힘들었던 나를 생각해, 신랑이 잠시 쉬다 오라고 해 주었다. 옷을 입고 가방을 메고 슬그머니 현관문을 나서는데 둘째가 뛰어와 엄마 빨리 와야 해! 소리를 지른다. 그 소리를 듣고 아빠와 미끄럼틀 놀이에 빠져 있던 시은이가 저 멀리서 울면서 나를 향해 뛰어왔다. 엄마를 다시는 못 볼 것처럼. 아이는 서럽게 우는데 나와 신랑이 마주 보고 활짝 웃었다. 말은 하지 않아도 눈빛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래, 우리 시은이 아냐, 아니지. 그때 본 신랑의 표정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주말 내내 아이와 눈을 맞추고 유치원 선생님의 하이톤으로 말을 걸어주던 아빠. 허리 디스크 재발 전에 자주 해주던, 아이가 좋아하던 앵기(비행기) 놀이를 구부정한 허리로 다시 해주고, ‘쌔쌔쌔’를 가르치고, 엉거주춤 앉아 플라스틱 칼로 장난감 바나나와 딸기를 자르 아빠. 지쳐 있었지만 너무 행복한, 그러나 마음 한 편 걱정을 모두 다 내려놓지는 못한 슬픈 미소.


신랑은 이민에 대해서는 정말 부정적인 사람이다. 특별한 기술 없는 동양인 남성의 타지에서의 삶, 사회적 지위에 대해 다소 편협한 시각을 갖고 있다. 미국 시민권자인 동생 부부의 성화에 아주 가끔 농담처럼 언급될 때가 있었지만 신랑이 워낙 부정적이었기에, 나도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다.

아이의 치료를 위해 미국행을 택한 브런치 작가가 있다. 고민이 많았던 어느 날 우연히 알게 되어 브런치북을 밤새 읽었고, 아침에 신랑에게 읽었던 내용을 들려주며 물어보았다.


"자기는 어떻게 할 거야? 만약에……. 우리 시은이가, 정말 그렇다면."

"그럼 가야지. 미국이 그렇게 잘 되어 있다면."

"정말? 자기 의외다."

"시은이 위해서 가서 마트 청소하고 막노동이라도 해야지……."

"우리 제주도에서 살까?"

"우리 트럭 타고 다니며 사는 건 어때?"


우리는 그렇게 미국 이민에 제주 이사까지 하고 왔다.


"여보, 무슨 걱정이야. 너무 걱정 하지마. 오빠들 다 똑똑하고 건강하고……."

"맞아, 우리가 시은이 잘 키우면 되지."

"시은이만 행복하면 돼."


그리고 신랑은 까칠한 턱으로 시은이의 볼을 부비며 말했다.

"그래. 내가 평생 데리고 살 거야, 우리 시은이."


우리는 그렇게 시은이를 평생 노처녀로도 만들 뻔했다.


시은이의 언어 검사를 했고 표현 언어만 육개월 정도 늦어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속단하기는 조심스럽지만 큰 문제는 없는 것 같아요. 얼굴을 익히고 나니 눈맞춤도 나쁘지 않고요. 어느 노련한 치료사가 시은이를 이틀 지켜보고 해 준 이야기였다. 워낙 순한 아이라 어느 순간 스스로 다시 알로 들어가 버린 것 같습니다. 순한 아이는 예민한 아이보다 훨씬 더 신경 써야 해요. 본인이 포기해버리거든요.

순간 너무 놀라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알. 치료사의 표현이 심장에 박혀 따끔거리는 느낌이었다. 시은이의 눈에서 다시 생각해봤다. 항상 부엌에 서 있는 엄마. 본인을 데리고 말도 없이 어딘가로 급하게 가는 엄마. 엄마와 놀고 싶지만 항상 오빠들을 향해 있는 엄마. 우리 착한 시은이는 외로웠던 것이다. 그래서 본인이 어느 순간 소통의 닫아버렸는지도 모른다. 나는 당분간 이틀은 어린이집을 보내지 않고 시은이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보내기로 했고, 나름의 원칙을 다시 세웠다. 아이 셋 각자에게 엄마를 독차지할 수 있는 시간을 잠깐씩이라도 만들어 줄 것. 손이 느림을 탓하지 말고 미리 부엌일을 해놓고 아이들을 기다릴 것. 수다쟁이 엄마가 될 것. 시은이에게 절대 뒷모습만 보이지 않을 것.  

아이 셋이 모두 다르게 큰다는 것을 인정하고, 아이들이 원하는 방법으로 다가가 줄 것.

 

어제 잠자리에서 시은이가 아빠와 자주 하던 놀이를 한다. 아빠의 손을 펼치고 시은이가 손가락을 하나하나 만지면 아빠가 "하나 두울 세엣"  해주며 손가락을 하나씩 접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시은이가 소리를 낸다. 하나 두우 세에 네에 다 이곱……. 우리 모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눈이 휘둥그레진채 눈을 맞추었다. 뭐야 뭐야, 진짜 한 거야? 신랑이 백만 스물 번쯤 해준 놀이였다. 나는 계단을 오르며 하나 두울 세엣 백만 스물 번쯤 해준 말이었다. 백만 스물 번쯤. 어떤 아이는 열 번이지만, 어떤 아이에게 가서 닿기 위해서는 백만 스물 번은 시도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 시은이에게 배웠다. 시우가 말한다. 엄마 이거 꿈이야?

동생의 말을 그토록 기다렸나 싶어 시우를 힘껏 안았다. 아빠는 시은이의 볼을 부비고, ‘다섯 다음 곱’ 우리 시은이도 작은 입꼬리를 올리며 웃고 있었다.

꿈같은 밤이었다. 아이를 재우던 시간, 밤이었지만 나는 낮으로 기억한다. 환한 낮.


지난 몇 주간 나는 밤과 낮을 경험했다. 생각해보면 시현이에게도, 그리고 우리 시우에게도 캄캄한 밤의 날이 있었다. 육아는 밤과 낮이 지속된다. 세 번째임에도 모자란 엄마 아빠는 늘 뉘우치고 반성하고 또 배운다. 어둠 속에 눈물 훔치는 사이 새벽의 푸른 가 뜬다. 해와 달은 조금씩 몸과 색을 바꾸며 그렇게 우리 가족을 변함없이 지켜보고 있다. 아이들은 쑥쑥 자라고

아직 많이 부족한 나도, 그렇게 진짜 엄마가 되어간다.   







새의 지저귐을 나는 전혀 읽지 못한다

저 소리를 어떻게 따라할까 고민하는 사이

올려다보던 아이가 쭈비쭈비쭈비 하고 내낸다

아이와 새는 한참 말을 주고받고

나는 내가 왜 아이를 가끔 이해하지 못했나

알았다


아이는 새가 금방 알에서 깨어났나보다, 했다

나는 새가 원래 작은 것이라 생각했지만

말하지는 않았다


작은 새는 날아올라 더 힘차게 노래하고,

거리는 온통 쭈비쭈비쭈비로 가득 차고

아이는  펼쳐둔 오선 사

명랑한 음이 되어 

통통 뛰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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