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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예 Jan 04. 2024

당신을 향한 나의 하찮은 몸짓, <사랑의 발명>

김지예 시산문1.

사랑의 발명


이영광


살다가 살아보다가 못 살 것 같으면

아무도 없는 산비탈에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

누워 곡기를 끊겠다고 너는 말했지


나라도 곁에 없으면

당장 일어나 산으로 떠날 것처럼

두 손에 심장을 꺼내 쥔 사람처럼

취해 말했지


나는 너무 놀라 번개같이,

번개같이 사랑을 발명해야만 했네     






친구인지 연인인지 가족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나’는 “나라도 곁에 없으면” 이라는 구절로 미루어 보아 상대를 “당장 일어나 산으로 떠”나지 않게끔 잡아 주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나’는 다행히, 힘들어 하는 상대를 내 앞에 붙잡아 둘 수 있는 사람이고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 “곡기를 끊겠다”는 고백을 들어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나의 상상 속 두 사람은, 허름한 술집에 앉아 있습니다. 불판 위에는 다 식은 고기 덩어리들이 하얀 기름으로 굳어가고, 둘은 찌그러진 플라스틱 의자에 긴 말도 없이 앉아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다 마주 앉은 나의 ‘그 사람’이, 술에 취해 다소 붉어진 얼굴로 숨을 토하듯 말을 뱉습니다. 그저 이대로 죽는 것이 삶보다 편할 것 같다고. “구덩이를 파”고, “곡기를 끊고 싶다”는 말은 계획된 말이 아니었습니다. 미리 생각한 말도 아니었습니다. 오랫동안 고통에 엉겨 들끓던 혼잣말이 ‘그’도 모르게 흘러넘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정적이 흐릅니다. ‘나’는 어디를 보고 있었을까요? ‘나’는 무슨 말을 했을까요? 과연 사랑을 발명했을까요?


시를 읽고 “사랑을 발명해야 했지.” 라는 ‘나’의 말이 어쩌면 ‘그’를 두고 하는 ‘나’의 다짐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는 끝내 무슨 말도 해주지 못했을 것만 같았습니다. 죽고 싶다는 사람 앞에 그 사람이 듣고 싶은 말, 내가 위로가 되어줄 말을 바로 찾아낼 수 있을까요? 더군다나 그 사람이 내가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든 그를 붙잡고 싶지만 그 어떤 말도 그의 고통에 비할 바가 되지 못한다 생각한다면, 나의 어떤 말도 지금 그에게 헛헛할 뿐이라 생각된다면……. ‘나’는 무력해져 아무 말도 못 꺼내고 있습니다. 그저 이런 ‘그’를 위해 사랑을 발명하고 싶은 ‘나’의 마음이 이런 시를 쓰게 했을 것이라고. 그는 사랑을 발명하는 마음으로 시를 발명했습니다. 


친구는 취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습니다. 불의의 사고가 일어나 한순간 눈을 감을 수 있다면 너무 편할 것 같다고. 그러면 스스로 삶을 끊는 것보다는 남은 가족들이 덜 슬프지 않겠냐고. 어두운 술집이었지만 붉은 조명도 친구의 우울과 불면의 흔적들을 감출 수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곧 무언가를 쏟아낼 것만 같던 그녀의 눈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먹먹히 빈 공간만 내려 보다가 친구의 용감한 제안에 무조건 오케이를 외쳤고, 그녀가 물고 있던 담배를 나도 한 개비만 달라고 했습니다. 담벼락 옆에 옹송거리고 서 있는 친구 옆에 같은 모습으로 서 있어 주는 일. 그것이 ‘너무 놀’란 내가 기껏 생각한 ‘사랑의 발명’이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 오래 알고 지낸, 너무 사랑하는 언니가 문득 힘든 속내를 꺼낸 적이 있습니다. 오전 열한시를 지나던 시간. 술의 힘도 빌리지 못했던 자리인지라, 아무도 이야기를 쉽사리 잇지 못하는 상황에 나는 ‘사랑의 발명’을 찾아 소리 내어 읽었습니다. 그리고 읽다 중간에 목이 메었고 그 바람에 함께 있던 모두가 함께 울었습니다. 민망해진 우리가 한바탕 젖은 눈으로 웃고 나서 문득 언니가 말했습니다. 그래도 그 사람은 좋겠다, 사랑을 발명해주고픈 사람이 있어서. 나는 문득 억울한 마음이 들어, 꼭 이 말만은 해야겠다 싶어서, 언니 언니에게는 우리가 있잖아요, 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하다  목이 메었고, 언니는 그런 나를 향해 웃어주었습니다.


고통에 빠진 사랑하는 사람에게 당장 그가 꼭 듣고 싶은 말은 끝내 찾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당신을 위한 사랑의 발명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 늘 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어라 입술만 달싹대다 목이 메어 끝까지 말을 맺지 못하는 목소리에, 그리고 떨어트린 고개에, 먼 산만 멍청하게 바라보거나 눈만 껌벅거리고 있는 어리석은 우리의 몸짓은, 어쩌면 우리가 ‘발명’에 고심 중이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랑이라는 것을. 


사랑을 ‘발명’해야 하는 것은 당신의 고통 앞에 우리가 아는 사랑이 너무 멀어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장 사랑이라는 것을 번개같이 가져다 당신의 고통을 잠재워주고 내 곁에 붙잡아 두고 싶지만 지금 당신의 고통 앞에 나의 사랑은 멀고, 무력해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사랑을 고민하고 발명하려 애씁니다. 그날만이라도 외로운 친구의 담배동무가 되어주고, 사랑하는 언니를 위해 함께 시를 읽는, 우리가 아는 하찮고 어리석은 몸짓들로. 그것을 알아봐주는 누군가 있어서, 그리고 그렇게 나의 고통 앞에 사랑을 발명해주려 애쓰는 당신이 있어서 우리는 오늘도 결코 쉽지 않은 삶을, 또 살아갑니다.



#이영광

#사랑의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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