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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예 Feb 22. 2022

시가 그리워지는 책, <쓰는 기분>

요즘 책이 나를 부르는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온라인 글쓰기 수업을 찾다가 <글쓰기의 최전선>과 은유라는 작가를 알게 되었고,

책에서 추천한 책들을 하나 하나 아껴 읽고 있지요.


어제는 도서관에 가서 어떤 책 한 권에 우연히(!) 눈이 머물렀는데 그 작가 이름이 너무나 낯이 익은 거예요.

이 작가를 어디서 보았더라, 보았더라

왠지 모를 아쉬움과 궁금증에

한참 도서관 바닥에 쪼그려 앉아 그 책을 뒤적뒤적  했는데 책 뒷날개에 적힌 작가의 저서 제목을 보고 알았습니다.



은유 작가가 추천해 주었던 시집 <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의 박연준 시인이었습니다.

그 책은 도서관에서 없어 나중에 중고 서점에서나 사야겠다 마음먹고 있었는데

시인이 쓴 이런 좋은 산문집을 먼저 읽게 되었어요.

아무도 대여하지 않은 것 같은 빳빳하고 바스락거리는 종이의,

페이지 사이가 멀어지는 느낌이 생생한

새 책입니다.  


책이 나를 불렀어요!



책은 '시를 쓰는 기분'을 황홀하게 전해주면서

모든 것이 내게 낯설게 다가오는 순간들을 일깨워 줍니다.

시를 소리 내어 읽는 기쁨을 알려주고, 우주의 아득한 에너지를

"평범한 당신도 담아 낼 수 있다" 용기를 전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시인으로 태어났다고요.



제가 네이버에서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모든 아이는 시인> 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읽은 시인의 산문집에서 "아이들은 시인으로 태어납니다"라는 구절을 발견한 것이예요. 괜히 저도 시인의 눈을 가진 것 같은 이런 반가움이란!

제가 썼던 글이랑

시인의 글이랑 비교해 보실래요? (물론 문장력은 많이 차이납니다만.)



천부적인 재능을 받지 않고도, 글 쓰기 수업을 받지 않고 게다가 한글도 모르는 사람 중에 세상에서 가장 예쁜 시를 쓸 수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입니다.  아이의 생각과 아이의 표현은 누구나 따라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천재성이 폭발하는 시간은 어떤 사람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옵니다. 그리고 그 재능을 더 발전시킬지, 아니면 일찍 사그러들게 할 지는 어쩌면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는 우리 엄마 아빠에게 달려 있습니다. 모든 아이들은 시인입니다.

- 지예의 블로그 글, <모든 아이는 시인> 중



아이들은 생각이 발랄하고 도무지 진부함을 모른 채 창의적입니다. 세상 모든 게 다 눈부신 '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일까요? 그들의 목소리는 별 뜻도 없이 시적입니다.

아이들은 시인으로 태어납니다. 다만 자신이 시인이었다는 기억을 잊은 사람과 잊지 않은 채 어른이 되는 사람이 있을 뿐이지요. '쓸모'를 따지기 좋아하는 어른들에 의 시적 능력을 거세당하지 않았다면 당신을 별 어려움 없이 오늘 밤 시를 쓸 수 있을지 모릅니다.

- 박연준 산문, <쓰는 기분> 중



아이가 시인이라는 것을 발견한 것은,

저는 시인은 아니나 '엄마이기 때문'이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시인이 모든 것의 빛나고 충만하고 쓸쓸한 것들을 발견하는 눈을 가졌다면 엄마는 우리 아이의 모든 순간을 잡아두고 싶은 사람이거든요.

아이의 모든 언어가 봄날 흩뿌리는 꽃잎들처럼 느껴지는 사람이거든요. 




20대에는 슬픈 사람만이 시를 쓸 수 있는 줄 알았어요.  

시는 슬픈 것이라 생각했고,

내 자신이 비참해서 나처럼 왜소하고 쓸쓸해 보이는 시에라도 기대고 싶었던 시기가 있었지요.

요즘은 행복(?)한데 왜 시가 쓰고 싶을까요?



40대가 된 저는,

아이들을 보며 '그 무엇'때문에 시를 씁니다.

원 시간 맞춰 아이들먹을 밥을 정신없이 차려내고,

두툼한 옷 대충 주워 입고 헝클어진 머리 그대로 아이를 데리러 나가고,

시든 엄마도 좋다고, 팔랑팔랑 즐거워 뛰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던 아어느새  내년이면 초등학교 입학 통지가 오겠구나

느낄 즈음

달력은 무력하게 넘겨지고,


그것을 기쁨이라고도

행복이라고도

쓸쓸함이라고도 말하기 어려운

그 무엇에

망연히 내 자신이 멈춰지는 순간,


그래도 아이의 어여쁜 웃음 한 번에

달아나버리고 마는 그 감정

'그 무엇'을 잡고 싶을 때

시가 쓰고 싶어집니다.


 




네 입 가에 하얗게 묻은 우유 자국을

닦아주다  느껴지는  그 무엇


네가 하는 종알종알 헛소리를

넋나간듯 보다 느껴지는 그 무엇


네가 혼자 야무지게 신은 신발이

왼쪽 오른쪽이 바뀌어있을때

느껴지는 그 무엇


아장아장 걷기시작한 네가

두 팔 벌려

내게 흠뻑 안기어 올 때 느껴지는 그 무엇


네 몸만한 가방을 등에 지고

초등학교로 줄지어 들어가는

네 꽁무니를 지켜보다 울컥하는 그 무엇


그 무엇의 진짜 이름을 나는 모르나


얼음이 녹고,

꽃이 피고 봄이 오고

새들이 날아오르고

연어가 제 집으로 돌아가는

우주의 비밀을 닮은


놀라운

그 무엇


나는 그것을 엄마의 시(詩)라 부르고 싶다





이 책이 온 즈음 나는 시를 다시 읽고, 또 쓰고 있었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시인인 아이 셋을 기르다보니 다시 시가 좋아졌고

누군가에게는 유치하고,

말장난같은 그 언어유희로 나는 엄마인 나를 달래고 위로하고 있습니다.

시를 선동(?)하는 이 책이 나를 불렀다,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오늘 밤 자리에 누우면 당신은 '흰 바람벽'을 하나 가지게 될지 모릅니다. 그 위로 당신이 사랑하고

당신을 사랑한 것들이 훠이훠이 지나다니도록 두겠지요. 흰 바람벽 위로 지나다니는 글자들이 있어, 당신을 다른 세계로 데려갈지도 모르겠어요.

- 박연준 산문, <쓰는 기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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