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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예 Feb 22. 2022

엄마의 시

#삶

20대에는 슬픈 사람만이 시를 쓸 수 있는 줄 알았다. 시는 슬픈 것이라 생각했고, 내 자신이 비참해서 나처럼 왜소하고 쓸쓸해 보이는 시에라도 기대고 싶었던 시기가 있었다.


40대가 되고 보니 아이들을 보며 '그 무엇'때문에 시를 쓴다.

원 시간 맞춰 아이들이 먹을 밥을 정신없이 차려내고, 옷 대충 주워 입고 헝클어진 머리 그대로 아이를 데리러 나가고, 시든 엄마도 좋다고, 팔랑팔랑 즐거워 뛰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던 아가 어느새  내년이면 초등학교 입학 통지가 오겠구나

느낄 즈음 

달력은 무력하게 넘겨지고,


그것을 기쁨이라고도 

행복이라고도

쓸쓸함이라고도 말하기 어려운

그 무엇에

망연히 내 자신이 멈춰지는 순간,


그래도 아이의 어여쁜 웃음 한 번에 달아나버리고 마는 그 감정.

'그 무엇'을 잡고 싶을 때

시가 쓰고 싶어진다. 






네 입 가에 하얗게 묻은 우유 자국을

닦아주다  느껴지는  그 무엇


네가 하는 종알종알 헛소리를

넋나간듯 보다 느껴지는 그 무엇


네가 혼자 야무지게 신은 신발이

왼쪽 오른쪽이 바뀌어있을때

느껴지는 그 무엇


아장아장 걷기시작한 네가

두 팔 벌려

내게 흠뻑 안기어 올 때 느껴지는 그 무엇


네 몸만한 가방을 등에 지고

초등학교로 줄지어 들어가는

네 꽁무니를 지켜보다 울컥하는 그 무엇


그 무엇의 진짜 이름을 나는 모르나


얼음이 녹고,

꽃이 피고 봄이 오고

새들이 날아오르고

연어가 제 집으로 돌아가는

우주의 비밀을 닮은 


놀라운

그 무엇


나는 그것을 엄마의 시(詩)라 부르고 싶다


- 2022. 9 <엄마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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