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도 묻어 둔 우주
검고 잠잠한 어둠 속
천천히 천천히 흘러다니다
사람의 별에 오게 된 건
당신이 나를 불렀으니까요
열 달을 웅크려
낯선 내가 되어가는 동안
내가 곧 만날 곳이 참으로 두려워도
당신의 목소리가 세상을 기대하게 하였습니다
내가 처음 만난 이 세상은
차갑고 딱딱하고 낯설어
크게 크게 울 수 밖에요
당신의 목소리를 들려주세요
세상을 만날 용기를 내어 보게요
좋은 집을 바라지 않아요
멋진 당신을 바라지 않아요
나를 불렀던 목소리를 오래오래 듣고 싶은 거예요
그 목소리로 나를 안아 주세요
당신의 표정으로
웃음으로
아이를 낳고서 한동안, 자고 있는 아이를 보면 괜스레 눈물이 났습니다.
나 아니면 배를 채울 수도, 잠들 수도 없는 그 존재의 연약함이 너무나 무서웠고, 시리게 아팠습니다.
내가 아니면 심연의 어둠 속을 평화롭게 부유했을지 모르는, 순수한 한 영혼이
어쩌면 내 욕심으로 이 복잡하고 파란한 인간 세상에 내려 왔는지도 모릅니다.
사람에 상처받고, 삶에 지칠지도 모르고
어떤 날에는
눈 감는 것이 살아가는 것보다 좋았겠다, 마음 무겁고 괴로운 날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내가 이 아이를 이 세상에 오게 할 자격이 있을까 자꾸만 자문했었습니다.
정인이 사건으로 세상이 시끄러운 날들이었습니다.
시설에서 사람의 손길에 목말라하는 아가들을 계속 찾아보게 됐었습니다.
그 해맑고 순수한 눈망울들이 자꾸만 눈에 밟혀 잠 못 이루는 새벽에
종이를 펼치고 토해 놓았던 글이었습니다.
갓 태어난 아기가 천 리를 내다본다는 어른들의 말씀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우리를 향해, 세상을 향해 하고 싶은 말을 대신 전하고 싶었습니다.
#정인이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