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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예 Feb 16. 2022

버스에서 생각난 열 살 그 아이

버스를 타기에 참 귀한 이 계절.


햇살은 따사롭게 승객들 무릎을 덥혀주고 분초를 다투지 않는 승객들은 가끔, 존다. 센스 있는 라디오 디제이는 Fly to the moon을 틀었다. 회사를  다니던 동안은 절대 몰랐을 이 한낮의 평화가 눈물 나게 좋다. 버스 안 이 공간에서는 그리 잘 살거나 못 사는 것도 없고, 특별히 똑똑하거나 모자란 사람도 없다. 모두 같은 시간에 갇혀  흔들리지 않기 위해 손잡이를 부여잡고, 내 엉덩이 붙일 자리가 있음에 감사하는 잔잔하고 시시. 나는 참지 못하고 가방에서 책을 꺼냈다. 이내 한 페이지도 못 나가고 덮었지만.




나는 버스로 한 시간이 꼬박 걸리는 거리의 초등학교를 다녔다. 대구의 잘 사는 집 아이들은 모두 모이는 학교였다. 학교에서 먼지처럼 떠돌았다. 늘 눈치 보았고 타인을 의식했다. 내가 섭렵했던 동화책들은 너무 따스하고 정의로웠으나, 정작 직접 만난 학교는 질문만 남는 곳이었다. 친구가 집단 왕따를 당하던 현장을 고발했으나 선은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기에는 자주 차별에 대해 썼다. 나는, 조금 불편한 아이였다.


학교가  끝나면 버스를 바로 타지 않고 몇 정거장을 걸었다. 학교가 시내 중심가에 있어 큰 도서관이 근방에 몇 개나 있었다. 숨어 있는 작은 도서관을 찾아내기도 했다. 도서관에 들어가 낯선 진열대를 구경하고, 오래된 책 냄새를 맡는 것이 좋았다. 책 뒤에 꽂혀있던 대여 카드에 학교와 내  이름을 남기는 것이 짜릿했다. 책을 빌려 버스를 타면 참지 못하고 책을 펼치곤 했다. 책을 보지 않아도 버스 멀미가 심해 고생했으면서도 빌린 책의 유혹을 참기란 어려웠다. 기어이 책을  몇  장 읽은 날은 버스를 내리면서 먹었던 점심을 다 게워내기도 했다.


전봇대를 붙잡고 제  몸이 감당할 양보다 훨씬 많은 것을 토해 내던 열 살 여자아이. 지나가던 친절한 행인이 "괜찮나, 애기야?"라고 물으면 옷소매로 입가를 쓰윽 훔치고 씩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시절, 난 참 작았다. 교과서를 모두 가지고 다니던 시절이라 어깨에 멘 가방도 무거웠을 텐데 그것보다 더 안쓰러운 것은 책으로 머리가 굵어진 아이가 너무 일찍 만난 불합리한 세상, 그 세상의 무게였다.


그래도 책은 나의 안식처였다. 나는 책이 보여주는 세상에 더  집착했다. 덜컹거리는 버스를 타고 부의 지역을 떠나 소시민의 동네로  들어오는 길,  따뜻하고 정의롭고 가난한 이들의 이야기를 읽었다. 속이 울렁거려 먹은 것을 다 토해내더라도 비로소 머리가 맑아졌다. 얼른 집에 가서 책을 마저 읽고 싶어 뛰었다.


삼십 년이 흘러 아이 셋  엄마가 되었다. 버스 안에서 책을 펼치려다 느낀 울렁거림에

109번 버스 의자에 파묻혀 동화책을 읽던 열 살 그 꼬마 생각이 났다. 마냥 아이처럼 반짝거리지 못했던 그 아이가 불쌍했었지만 일찍 맛본 쓸쓸함과 상실감도 꼭 나쁘지만은 않았다 싶다. 지금의 나는 여전히 책을 좋아하지만 그때보다 너그러워졌고, 세상이 단순해졌고 행복해졌다.

열 살보다 마흔 살 행복한 것이 우습지만 이 말도 안 되는 성장이 '나'다.

오늘 버스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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