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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핀름 Jun 09. 2024

<타락천사>:홍콩의 뒷골목, 그 안의 빛나는 순수-순간


1. 그림자 진 거리의 천사들 : 왕가위의 뒷골목



    왕가위 감독의 <타락천사>는 연작으로 묶인 <중경삼림>과 확연히 그 분위기가 다르다. 왕가위 감독의 연작 시리즈 중에서도 특히 ‘<중경삼림>은 빛, <타락천사>는 그림자’ 라는 평이 대중적이다. <타락천사> 감상 후, <핀름> 팀에서는 “미장셴이 아름답다”는 평가와 “서사에 아쉬움이 남는다”는 상반된 평가가 공존했다.

    대중적으로 크게 히트한 <중경삼림>과 달리, <타락천사>가 보다 매니악한 영화로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타락천사> 속 뒷골목으로 조금 더 들어가 보자.




2. 고독한 인물들 : 타인 혹은 친구



“우린 매일 사람들과 마주친다.

그들은 나의 친구나 지기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경찰은 나와 친한 친구가 될 수 없다.

내 이름은 하지무. 교도소에서의 번호는 223이다."


    <타락천사>의 인물들은 하나의 특성이 그대로 형상화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하나의 특성이 부각된 캐릭터이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킬러, 아이처럼 사랑을 갈구하는 ‘베이비’, 사기를 쳐서 벌어먹는 바보 청년, 킬러를 짝사랑하는 동료.

    감독의 전작인 <화양연화> 속의 복잡한 불륜 관계 사이에서 감정에 휩쓸리는 첸 부인이나 차우, 끝없이 서로에게 이끌리고 또 미워하는 <춘광사설(해피투게더)> 속 아휘나 보영과는 또 다른 점이다. 기존 작품 속의 인물들은 하나의 상황에 양가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꼭 어딘가에 살아 있는 것 같은 입체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타락천사> 속 일부러 얄팍하게 만들어진 인물들은 하나의 강렬한 특성으로 관객에게 본인을 각인시킴과 동시에, 관객과 자신 사이에 투명한 벽을 하나 쳐 둔다. 관객들은 이러한 거리감을 통해 등장인물들을 거리에 스쳐가는 수많은 타인처럼 느끼게 된다. 관객에게 그들의 서사를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영화 속에서 누구보다도 고독한 인물들은 관객과의 교류 또한 끊긴다. 인물이 이전에 어떤 일을 했는지, 어떤 고뇌가 있는 사람인지 등 관객들이 볼 수 있는 인물의 전사가 전무하여 인물에 대한 몰입도가 떨어지는 것이다.

    캐릭터의 특성, 입체성이 굉장히 강하다는 점에서 인물들은 실제 인물처럼 느껴지지만, 동시에 나와는 동일시하기 어려운 타인이 된다. 영화 속 서사를 보는 것은 관객의 특권이다. 그러나 <타락천사>에서,만큼은 관객들에게 이 특권이 허락되지 않았다. 5인의 타락천사는 관객과의 관계에서조차도 외로운, 고독한 인물들인 것이다.






3. 타락천사의 홍콩 : 신기루처럼 사라질 지금 이 순간


    총 5인의 주인공들은 홍콩의 밤거리에 살아가는 5인의 타락천사다.

    그들이 살아가던 시대는 과연 어땠을까?

    영화는 홍콩 반환(1997년) 이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1997년, 홍콩에 살고 있는 거주민들의 의지와는 전혀 별개로 영국 정부와 중국 정부 사이에 홍콩 반환이 이루어졌다. 당시 사회주의 중국에 대한 홍콩인들의 감정은 두려움, 혹은 불안, 혹은 미지의 것에 대한 거부감이었을 것이다. 생각해 보라. 내 것이었던 것이 하루아침에 내 것이 아니게 될지도 모르는, 내가 어느 나라에 살게 되는지도 모르는 그 불안한 시기를.



"사람들은 아침에 출근하지만 내 출근 시간은 정 반대이다.

내 일은 사람들을 만나는 거다.

모두 모르는 사람들이고 난 그들에게 관심도 없다.

모두들 곧 사라지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다. 당시 홍콩 사회의 빈민층, 밤거리의 어두운 일면을 보여주는 측면에서 <타락천사>의 의의가 있다고 한다면, 과연 “영화의 존재의미는 무엇인가?”

    김현 평론가는 “문학은 배고픈 거지를 추문으로 만든다”고 말했다. 서사컨텐츠는 문화예술로써 배고픈 거지를 구원해줄 수는 없지만, 그의 존재를 공표시킴으로써 그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영화는 이 명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사울의 아들>, <택시운전사>, <국제시장> 등 어떠한 시대를 담고 있는 영화들은 당대의 모습을 영상 자료로 남기기에 역사의 기록 측면에서의 의미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타락천사>가 앞서 서술한 영화들처럼 역사성이 짙은 영화는 아니다. 영화 <택시운전사>나 <변호인>처럼 특정 역사적 사건을 모티브로 삼은 영화 또한 아니다. 오히려 주인공들의 서사가 희미해 마치 스쳐가는 타인을 잠깐 관찰한 필름과 같이 느껴진다.

    그런데도 <타락천사>가 이토록 아름답게 느껴지고, 인물들에게 연민이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가 점차 진행되면서, 관객들은 타인과도 같은 이들에게서 익숙한 모습을 발견한다. 바로 삶에 있어 미숙하지만, 어떤 한 순간에 위로받는 자기 자신이다.



"어떤 사람은 가까이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잘 안다.

사람과 너무 가까워지면 흥미가 사라져버린다.

난 매우 현실적인 사람이라 나의 쾌락을 만족시킬 줄 안다."




4. 왕가위 유니버스 : 사람은 순간의 기억으로 살아간다



    왕가위의 영화에는 "연인과 헤어진 뒤 함께 가기로 했던 파도를 보러 가 그 파도 소리를 녹음"(해피 투게더)하는 인물, "찰나의 인연 속에 녹아든 금단의 사랑"(화양연화)을 하는 불륜 연인, "아버지의 모습을 계속해서 촬영하는 바보 아들"(타락천사)이 등장한다. 이러한 인물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각자의 사연이 있는 모두가 아름다운 순간의 기억을 붙들고, 계속해서 꺼내보며 살아간다는 점이다.

    어쩌면 허공에 둥둥 뜨는 듯 뿌리 없이 부유하는 <타락천사> 속 인물들에게도, 삶은 ‘순간의 기억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우리 또한 살아가면서 수많은 타인과 스쳐 지나간다. 누군가는 한 순간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기도 하고, 누군가는 그저 그렇게 스쳐 지나가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끝없이 누군가와 함께하는 순간에서 위로를 얻고, 마침내 해방감을 느낀다.


    

    영화의 마지막 순간, 사랑과 삶에 실패하고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기도 했지만, 결국 웃으며 홍콩 밤거리를 함께 달려나가는 두 사람의 모습처럼 말이다. 수많은 만남과 이별 속, 아름다운 순간을 붙들고 방황하는 이들에게 이 영화는 그 무엇보다도 위로가 될지 모른다.

    누구와도 가까워질 수 없고, 내일은 또 어느 곳을 스쳐갈지 모르는 삶에서 타락한 뒷골목의 천사들에게도 아직은 찬란한 순간의 기억, 그 순수함이 남아 있다.




 editor: Y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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