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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진 Oct 07. 2024

어쩌다 아이는 몽유병을 앓게 되었나

7살 나 만나기

그 시절 어린 미진이는 몽유병을 앓았다고 한다.


한번 잠들면 옆에서 굿을 해도 모를 동생과 달리 잠귀가 밝은 K장녀인 나는 잠에 드는게 무서웠다. 매일 밤 술에 취해 동네가 떠나갈 듯 고성을 지르고 살림살이를 부수는 부모님의 싸움 때문에.


이불을 뚤뚤 싸매고 니가 잘했니 내가 잘했니 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노라면 나는 한없이 작고 작아져 끝에는 점보다 더 작아지고 세상에서 사라질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했다. 너무나 무서운 아빠에 대한 공포심과 저러다 엄마가 죽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자괴감이 한데 엉켜 등에 딱 달라 붙어있다. 눈을 감고 양을 세봐도 다시 잠들 수 없을 때가 많았다. 누구 하나 집을 나가던가 피를 봐야만 끝이 나는 싸움을 두분은 질리지도 않는지 매일 밤 해댔다. 싸움이 극으로 치달으면 참다 못한 나는 거실로 뛰쳐나가 눈물콧물 범벅이 되어 무릎을 꿇고 손을 싹싹 빌며 제발 그만해달라고 빌곤 했다.


어느 날 엄마가 날 병원에 데리고 갔다.

엄마가 의사에게 말한다.

“선생님, 아이가 자꾸 새벽에 일어나서 돌아다녀요.“

유난히 잘 놀라는 엄마는 귀신처럼 긴 머릴 풀어헤치고 오도카니 서서 자고 있는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딸 때문에 여러차례 놀란 모양이었다. 의사는 아이가 몽유병에 걸린거라 진단한다.


꿈인 줄 알았는데.

싸움이 없는 날에도 비슷한 시각에 일어느 잠에서 깨지 못한 채로 집안을 돌아다닌 것이다.

‘오늘은 안 싸우는걸까‘ 자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확인했던 꿈을 꿨던 일을 기억한다. 하지만 내가 어떤 꿈을 꾸었는지 왜 그랬는지 엄마에게 말하진 않았다.


엄마는 의사가 처방해준 수면제를 먹여 날 재웠다고 한다. 수면제를 얼마나 오래 먹었는진 모르겠다.

애가 잠을 못 잔다하니 수면제를 먹여 재우던 시절이었다. 1994년 그 시절이 그랬다. 무려 30년 전이니까. 다들 그렇게 살았던 때가 있었다.


가끔 새벽에 잠에서 깨어 그 때를 떠올릴 때가 있다. 그러다보면 손발이 저리고 척추가 오그라드는 것 같은 느낌에 압도된다. 지금의 난 그 때의 미진이보다 더 큰 아이의 엄마인데도 말이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을 땐 부드러운 담요를 덮은 채 눈을 감고 상상을 해본다.


내겐 나 전용 지하실이라 이름 붙인 곳이 있다. 거기엔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있다. 한 계단 한 계단 내려가면 문이 하나 보인다. 방문을 열면 작은 방에 침대가 하나 놓여있고 그 위에 이불을 뚤뚤말고 양을 세고 있는 7살 미진이가 있다.

어떨 땐 그 아이의 침대에 슥 들어가 등을 살살 긁어주며 함께 양을 세는 상상을 하기도 하고, 어떨 땐 아이의 손을 잡고 문을 열고 나와 피 터지게 싸우고 있는 부모님을 지나쳐 집을 나오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이런 상상들은 수면제를 먹는 것보다 느리긴 해도 확실히 근본적이고 꽤 효과가 있는 것 같다. 7살 나와 만나 이런 저런 일을 하는 상상을 하다보면 어느새 까무룩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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