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와 씨.. 또 털렸네."
도대체 몇 번을 털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어제도 150달러 오늘도 벌써 121달러.
리딩방 사람들도 하는 거 보면 어떻게든 벌어치우던데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거지. 정말 그들은 실력이 있고 난정 말 쓰레기라서, 고작 하는 게 바카라 수준인 건가.
그저 가만히 창밖만 바라보다가 다시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너무 익숙한 화면, 불과 2시간 전에도 입금창을 열었던 나는 또 부족한 돈을 환전하고 있었다.
이제 마지막 환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더 이상 남은 돈도 없었고, 마지막 희망이라도 걸어보려는 듯이 은행 어플을 새 로고침하며,
손 안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입금이 완료되었다는 문자. 마지막 희망이라고 생각했던 돈이 이제 내 손안에 들어왔다.
‘마지막이다. 이제 정말 희망이 없어.’
‘아까 vcp에서는 숏이 맞았어. 그런데 내가 잘못한 거야 그러니까 지금은 롱을 배팅해야 해.’
‘가자 힘내자 제발!!!’
내가 투자라고 불렀던 이 모든 것들이 결국은 도박이었다는 것을 인정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던가.
결국, 또 실패했다.
전자담배의 액상은 타버린 코일 때문에 짙은 갈색으로 변해있었다. 1평 남짓한 고시원은 키보드조차 던질 수 없을 만큼 좁은 공간에서 나를 구석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나는 스스로를 죽이고 있었다—이제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가족도, 부모님도, 그리고 마지막 남은 양심마저도 잃어버린 이 작은 공간 속에서 나는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나도 처음에는 이렇게 되지 않기를 바랐다. 이게 내가 원하던 삶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내가 도박에 빠질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고, 지금 하는 이 지옥 같은 짓이 도박이라고 인정하지도 않았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나는 여의도에서 이름값 하던 전업 투자자였다.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해 명함을 당당히 주고받을 정도로 올라왔었다. 가치투자로 시작해서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꽤 괜찮은 인생을 살고 있다고 자부했는데, 어느 순간 내 모습은 찌그러진 콜라캔처럼 되어버렸다. 다른 의미의 새옹지마라고나 할까.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나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
노량진 15만 원짜리 건물의 달방은, 니코틴으로 되어있는 썩은 이방은, 이제 아무것도 없다.
밖으로 나왔다.
지금이 밤인 줄 알았는데, 아직 해가 중천인 저녁이다.
나는 도대체 어떻게 지난 몇 년을 지내온 걸까?
배고픔도 잊었는 줄 알았는데, 마침 미친 듯이 위산이 올라오는 것이 느껴져 , 짜증이 뒤섞인 채 편의점에 들어가서 우유하나와 크림빵하나를 사서 가축이 여물을 물듯이 별생각 없이 한입 들이키고, 빵을 욱여넣었다.
그런데 갑자기 짜증이 슬픔으로 전가되기 시작하면서, 씹고 있던 빵을 넘기기가 지극히 어려워지고, 등에 갑자기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고, 나는 이 더러운 기분이 뭔지 알고 있었다.
한두 번이 아니지 않았나, 이런 기분 낯설지 않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없는데, 막상 바닥에 도착하고 나면, 누군가는 이제 오를 일만 남았다고 한다. 그런데 주변에 아무것도 없다면, 그건 오를 수가 있는 게 아니고, 그냥 덩그러니 남겨진 불쌍한 고깃덩어리일 뿐이다.
이제는 체념을 해야 한다.
이제는 받아들여야 한다.
난 즉시 실행해야만 한다.
더 이상은 없다.
더 이상은…
눈앞이 깜깜해진다. 자꾸만 휘청거리는 발걸음을 억지로 이끌며 건물 옥상으로 향했다. 이제는 정말 모든 것이 끝이라고, 마지막 발걸음을 내딛으며 생각했다.
차갑고 건조한 바람만이 옥상에 가득했다. 철제 난간 앞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저 멀리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개미처럼 보였다. 마지막 순간에도 머릿속은 여전히 숫자들로 가득했다.
아, 그래. 이것도 수십 번이 되어봐라.
‘포기해. 다 끝났어.’
미안해요 어머니.
당신의 아들이 이렇게 나약하고 어리석어서.
결국 난 마지막 순간에도 당신을 실망시켰네요.
돈이 너무 없었다. 이렇게 살아서는 지옥 같았고, 사는 게 너무 불편했다. 사는 건 즉 사는 게 아니었고, 월급은 의지와 상관없이 새기 시작했다. 우울감은 곧 나의 어두운 미래를 표현하듯 생기하나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고, 시작했던 재테크는 모두 다 실패하게 된다.
그리고 기본적 분석과 기술적 분석 등 시중의 투자 서적들을 처음 접했을 때부터 나는 강한 호기심을 느꼈다. 그 책들의 진정한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수없이 속독하고 정독하며, 각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을 깊이 고민했다. 주식투자서는 여타 자기 개발서와는 달랐다. 이 분야에서 실제로 성과와 권위를 이룬 사람들이 자신의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책을 출간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전문 저술가나 훈장, 전관 등 다양한 목적으로 책을 내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특히 업계에서 조용히 성공을 이룬, 잘 알려지지 않은 전업투자자들의 투자 방법론에 더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투자로 부를 이루는 방법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나의 초기 투자 방식은 미숙했지만, 지속 가능성을 찾아 끊임없이 다양한 방법을 연구하고 학습했다. 완벽하지 않은 나의 투자 방식을 개선하기 위해, 새로운 투자자들의 독특한 관점이 담긴 투자 서적을 탐독했고, 그들의 경험에서 값진 교훈을 얻었다.
상당히 파격적인 투자 방식이나 스크리닝 방식을 접했을 때도, 비판보다는 그 방식의 타당성을 진지하게 고민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차트의 흐름을 유체역학적 관점으로 해석하는 이론이었는데, 본질적으로는 추세 분석이었지만 이러한 창의적 접근을 통해 투자에 대한 나의 시야가 한층 넓어졌다.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투자 서적과 금융 관련 서적들을 깊이 연구하며, 가치투자에서 기술적 분석, 복잡계 이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를 공부했다. 모든 것을 완벽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투자가 단순한 돈벌이가 아닌 복합적인 예술의 영역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도제식 학습 과정에서 스승의 투자 방식은 내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 초기에는 선배의 모든 것이 대단해 보였고, 새내기 투자자였던 나에게는 모든 것이 신선한 충격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한계를 느꼈고, 결국 나만의 색깔과 길을 찾아 떠나야 했다. 스승과의 관계는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최대한 빨리 독립적인 투자자로 성장하는 것이 나의 첫 번째 목표였다.
스승의 가르침을 기반으로, 나는 전형적인 바텀피싱 투자자가 되었다. 실적으로 하방을 보호하고 모멘텀으로 상방을 공략하는, 저평가된 주식에 투자하여 수익을 창출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곧 깨달았다. 주식이 싸 보이는 데에는 항상 이유가 있었다. 특히 한국 시장에서는 상속세와 거버넌스 문제로 인한 저평가를 단순한 수치로만 판단했다가는 심각한 함정에 빠질 수 있었다. 인생은 짧은데, 단순히 저평가라는 이유만으로 보유하는 전략은 예상 이상의 리스크를 수반했다.
이런 경험을 통해 나는 고 PER에서 저 PER로 전환되는 시클리컬 산업을 제외하고는, 모든 저평가 주식에 대해 '왜 이렇게 저평가되어 있는가'라는 본질적인 비동의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철저히 분석한 후에야 투자를 결정했다.
오랜 시간 이러한 방식으로 투자하며 꾸준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타인의 성공 사례를 보며 새로운 호기심이 생겨났다. 그리고 마침내 깨달았다. 내가 특별한 존재가 아닌, 평범한 투자자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부터 새로운 시각이 열리기 시작했다.
많은 이들이 그렇듯 나도 안주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현재에 만족하면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어울리며 안정을 추구했다. 하지만 이것이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특히 주식시장에서는 작은 차이로도 관계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었고, 너무 가까우면 서로의 단점이 부각되고, 멀어지면 접점을 찾기 어려웠다.
힘든 투자 여정 속에서 인간관계의 복잡함까지 더해지자, 자연스럽게 편한 사람들만 찾게 되었다. 하지만 완벽한 관계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투자자의 길은 고독한 여정이었다. 홀로 걸어가는 이 길에서 많은 것을 보고 배웠지만, 그 과정의 비용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면 한 걸음도 내딛기 어려웠을 것이다.
비록 기본적인 투자 원칙은 변함없지만, 나의 지식과 경험이 아직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했고, 매 순간 완벽한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나 자신을 내려놓는 순간부터 진정한 성장이 시작된다는 것이, 진정한 투자자의 삶이라고 나는 확신했다.
“네 다음은 슬픈 소식입니다. 노량진 고시촌에서 자살사고가 있었습니다. 매우 안타까운데요. 신변을 비관한 어느 40대 남성이 옥상 건물에서 추락해 사망하였습니다. 최근에 코인투자나 다양한 투자 실패등으로 인해서 40대 남성의 자살률이 급등하고 있어 사회에서 안타까움을 야기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에 사망한 안모 씨는, 10년 전 다양한 미디어 매체에서 투자 성공 신화로 많이 알려져, 더욱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습니다. 다음 소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