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 사회에 대한 경고

카카오톡

by 정민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에 우리는, 서로에게 만남이 필요할 때는 모여서 정했다. 그 모임에 참석자가 없을 때는 전화를 통해서 해결해야 했고, 언제 와야 할지도 결정하고 늦으면 늦는 대로, ㄱ때 연락을 하로 했다. 얼마나 걸리는지, 언제 도착하는지, 뭘 하다가 늦는지, 상세하게 이야기할 수도 없고 이야기할 필요도 없었다. 궁금한 게 있으면, 그냥 전화나 문자를 하면 되었고, 이건 이전에도 호출기라는 것 pcs라는 것 등을 통해서, 과거로부터 계속 이어져 오는 행동이었다.

아이폰이 나왔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 것은, 이게 어떻게 쓰이게 될지 몰라도, 뭔가 미친 듯이 이 세상에 변화가 올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뭔가 새로운 것 남들이 갖고 싶지 않은 것을 갖고 싶는 욕구가 큰 나는. 누구보다 먼저 그것을 갖고 싶었고, 갖고 싶은 사람들이 다음날 우체국의 문을 열지도 않았는데, 중간 집중국에서 자신의 아이폰을 가져가는 기현상을 최초로 겪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내 손에 쥐었을 때는 그냥 예쁜 조약돌이었다.

전화가 되고, 인터넷이 되고, 음악이 나오는 그냥 예쁜 핸드폰이었다.

그 변화를 짐작하지 못하는 이듬해, 새로운 SNS라는 것이 생겼다. 그건 카카오 톡이라는 건데, 두 명이서 이야기하는걸 세명 또는 네 명이 동시에 문자를 보낼 수 있었다. 어디서 뭐 하니? 나는 이걸 하는데, 너는 뭐 하니? 실시간으로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그 방 안에서는, 매우 가까이 내 앞에 있는 것처럼 대화를 느끼기 시작했다. 이건 대단했다. 단체 채팅방이라는 존재 말이다.

나는 이 채팅방이 너무 좋았다. 아침이 일어나면 아침인사를 했고, 우리는 새벽이 가도록 서로의 수다를 들어주며, 고민하고 듣고 느끼고 그랬다. 24시간이 쉬지 않았고, 그렇게 약 20여 명이 모이게 된 곳에서, 우리는 계속 서로의 안부를 물어보며 즐기고 있었다.

그동안 약속을 하고 만날 수 있어야 하는 관계에서, 눈뜨고 눈 감을 때 가지 함께하는 일들로 서로를 다독이고 응원하고 내적 친밀감을 실시간으로 쌓게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이게 정말 우리의 우정을 쌓아준다고 믿고 있었고, 이 기술은 나의 외롭고, 의지고 싶고, 사람을 만나고 싶은 결핍의 10년을 행복하게 해 주었다. 어떻게 보면 결핍이라는 것은 나만 겪고 있다 보니 같이 있던 20명은 나의 결핍을 이해하지 못하고 궁금해했을 것이다. 정말 사소한 것 까지도 나는 공유를 했고 우리는 내 공유한 것들을 보았다. SNS는 안 했는데, 카카오톡의 친구들의 채팅방은 계속했다. 무엇이 다르냐면 이건 내 정말 가까운 사람들의 반응이다라고 생각을 하니 더 신뢰감이 높아져, 여기에서 나의 알파를 보여주는 것이 친구들에게도 나의 즐거운 안부를 전하는 것이고, 친구들도 그것을 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일을 시작하고, 친구들의 희로애락을 같이 공감해 주고, 서로의 좋은 방향들을 응원하고, 같이 웃어주는 시간이 반복될수록, 나는 더 행복하고, 내 행복과 우리의 행복의 방향이 모두 일치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꼬여버린 나의 20대는 친구들 덕분에 본 궤도를 회복했다고 생각한다. 친구들에게 나의 실패사례를 공유하고 다음에는 이렇게 하지 않겠다고, 그고 또 실패하고 나는 또 위로받고, 그렇게 수 해를 반복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루틴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하다 보니, 19살에 실패한 수능도, 편입을 통해서 다시 공부할 수 있었고, 술을 좋아한 덕에 새로운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만져낼 수 있었고, 새로운 직장에 잘 적응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인생에 자리를 잡아갈 수 있었다. 내면과는 별개로 인성을 치장하는 방법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마음속의 내 비관된 생각을 반대로 하는 것이다.

난 평범한 내 생각이 비관적 생각이다. 높은 곳에 있으면 떨어지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고민하고, 과민한 생각에 집착하는 나의 행동이, 어른이 되어도 달라지지 않았는데, 이것을 들키지 않으려 하다 보니 과도하게 나의 사회적 시선을 치장하는 것에 집중했던 것 같다. 남들 다 하는 대학을 가는 것, 남들 다 하는 취업을 하는 것 , 남들 다하는 결혼을 하는 것, 남들 다 하는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 여기까지 올 때만 해도 나는 주변에서 열심히 산다는 말을 듣는 것이 그렇게 뿌듯했던 것 같다. 칭찬에 목이 마른 것 같기도 한데, 궁극적인 건 난 나를 추앙해 주는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는 시체 같은 사람이었던 것이라고 정의하고 싶었다.

추앙이 사실 별거 없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에 호응을 바라는 것 정도면 추앙으로서 손색이 없고 생각한다. 밥은 먹었니? 응 먹었어 의 엄마와 자식의 대화가 반대로 밥 먹었다! 그렇구나 정도로 바뀌는 방식이지만, 이상하게 친구들에게 호응을 받는 게 그렇게 기분이 좋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 같다.

매일매일이 서로에게 좋은 유대감이 쌓이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뭔가 불쾌한 기분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문제인지 잘 몰랐다. 뭐가 불쾌한 건가, 24시간 우리는 우정을 쌓고, 우리는 유대감을 쌓고, 서로의 안녕과 건강을 걱정하고, 서로의 불확실한 미래라는 항해에서 유일하게 마음속 이야기를 할 수 있는 20여 명의 동기동창 친구들의 모임이었다.

뭐가 문제였을까?

24명 중 12명은 결혼을 했고, 그중 6명은 아이를 낳았고, 그중 3명은 여러 아이를 낳았다. 24명 중 12명은 적성을 찾아 회사원이 되었고, 일부는 전문직, 일부는 예술인, 그리고 일부는 백수가 되었다.

24명 중 8명은 야당을 지지했고 8명은 여당을 지지했고 8명은 지지하는 정치적 당은 없었다.

24명 중 12명은 종교를 갖고 있었고, 12명은 그렇지 않았다.

우리는 통계적으로 철저히 작은 사회에서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과 인정하지 않는 것이 섞여있는 채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대화를 하고 응답을 요구하면서 발생하는 내면의 상처들을 유대감 형성이라는 핑계 아래, 많은 것들을 공유하게 되고, 곧 상처도 받게 되고 있었던 것이었다. 또한, 생각보다 여기에 쏟는 시간은 많았다. 일종의 온/오프라인 믹스 커뮤니티였던 우리는, 만나서 는 만나지 않을 때 하던 이야기를 이어서 하고, 많나지 않을 때는 만나서 할 이야기들을 계속해서 이어서 했다.

그러니까 24시간 중 이 채팅방에서 쏟는 에너지는 굉장히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었다.

특히 가정이 있는 사람들은, 취침시간과, 근무시간을 제외하고, 분명 남은 시간이 얼마 없었을 텐데, 여기에 할애되는 시간이 적지 않았다. 친구의 고민을 들어주고, 함께 토론하고 함께 이해하는 과정이 처음에는 좋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세츄에이션(포화)되는 일들로서 우리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혼자만 그렇게 느낀 것은 아니었다. 점점 우리는 대화가 없어졌다. 급기야, 공감이 되지 않는 것은 너희들끼리 따로 방을 파라며, 재테크 이야기, 운동 이야기, 문화 이야기, 심지어 육아 이야기를 다 나누기를 원했다. 그렇게 나누고 나니, 오히려 모여있는 방에서는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사라져 갔다. 다들 그 상황을 언짢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허전해했다. 예전으로 다시 돌아가면 어떨까 상의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럴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어떤 커뮤니티의 거스를 수 없는 진화의 한 과정을 몸소 겪고 있다고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신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럼 우리는 과연 저렇게 모여서 공통 관심사에 대해 의견을 나누거나, 이런 개인화된 커뮤니티가 서로의 발전에 도움을 주고 있는지, 본질적인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똑똑하지 못하다, 인생은 늘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즉 우리는 모든 생이 다 처음이다. 그런데 우리끼리 어떤 의논을 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의사결정만을 낸다고 보장할 수 있을까? 결코 그것은 불가능하고 , 확률론적으로는 조금 나을 수는 있겠지만, 여기서는 다수 편향이 더 있기 때문에, 옳지 못한 결정을 옳다고 믿는 행위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나보다 먼저 생을 더 오래 산 아버지, 또는 그 아버지의 연배가 쓴 책들, 한 사람의 인생이 담긴 에세이, 그리고 교육적 교양적으로 쌓은 인문학 서적들을 지속적으로 탐읽하는 것을 같이 섞어서 판단하는 것이 도움이 되지 , 지금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시간을 갉아먹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이 들었다. 서로가 서로의 천장이 되어서 더 성장하는 것을 막으면서, 문제가 쌓이는 것들에 대해, 대응할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


그러면 이제는 그 천장을 뚫고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위에 말했듯이, 다양한 인문학 서적을 읽으면서 사람을 이해하고 나에게 접목할 수 있는 것들을 취해가는 과정이 올바르게 삶을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기술이 발전하고 우리는 편리해지면서 불필요한 대화나 불필요한 사고가 늘어나기 시작했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생각을 요하는 일들이 줄어들고 서로에게 생각을 강요하고 있었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그냥 상황을 설명하는데 사람들은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누군가 말을 해주길 바란다. 말을 해주는 사람의 조언이 딱히 중요하지는 않고 잘 들리지는 않는다. 그런데 나는 말한다. 이게 지금의 소셜미디어 네트워크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이자, 여기에 쏟는 스크린 타임이 우리의 인생을 낭비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지적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을 메신저라는 행위를 통해서 우리는 더 세부적으로 알 수 있었으며, 결국 이건 우리 모두에게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렇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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