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할 수 있어야 한다

평범한 사람들이 내는 알파

by 정민

-. 이건 이렇게 해보자

-. 이건 이렇게 나올 수도 있으니까, 걱정은 그때 하고, 지금은 이렇게 해보자

늘 변수는 많았지만, 항상 실행을 빠르게 해야 했다.


내가 처음 주식을 배웠을 때는, 매일 코스피가 하락했다. 정말 지독하게 하락했고, 조금도 오르려고 한다면, 이내 다시 하락했다. 정말 이런데 어떻게 돈을 벌지? 하는 생각이 지배적인데도, 형은 항상 돈을 벌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나도 돈을 벌기 시작했다.


고작 몇백만 원으로 시작한 주식이 내 최소생활비를 제외하고, 모두 다 주식에 저축한다고 생각하고 시작하니 예수금은 꾸준하게 증가하고 있었고, 더 많은 주식을 사고 싶으니, 나는 소비자체를 할 일이 없다는 것도 알았다.


정확히 소비를 하는 건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고, 돈을 쓰더라도 내가 벌어서 돈을 쓰자고 생각했다.

돈을 벌지 않으면, 쓰지 않았고, 대신 돈을 벌면 번돈의 10% 만 나와 가족을 위해 사용했고, 모든 돈은 다시 재투자에 활용되었다. 그간에 수십 년간 해왔던 모든 근심들이 사라져 가고 있었다. 돈을 아무리 모아도 인플레이션을 따라갈 수 없다는 걱정과, 자식을 낳아서 발생하는 비용들에 대한 것들도, 아직은 뚜렷하게 그려진 것은 없지만, 점점 희망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삶의 변화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걱정을 하지 않으니 더욱 본업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해 하던 일에 대해서도 성과가 나쁘지 않아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고, 나는 더욱더 퇴근하면 주식을 공부하는 일에 몰두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부진이 형을 이해하는데 모든 힘을 기울이게 되었다.

내 꿈은 한 달에 한두 번은 아무 걱정 없이 가족 외식을 하는 것이었다.

우리 부모님은 우리가 가족 외식을 하려고 할 때면, 무엇이든지, 그 돈이면 집에서 먹지라는 수식이 항상 붙다가 결국, 원하지 않는 음식을 원하지 않는 식당에서 먹으면서 원하지 않는 기분으로 시간을 보냈었고, 그마저도 연에 한번 정도였는데, 마지막으로 했던 식사도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우리 집은 수십 년간 아버지가 경제활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부채를 갚았는데에 온 가족이 몰두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확히는 부모님이, 나는 쓰는 쪽에 속했으니까.

남들처럼은 따라가야 한다며, 찢어지게 가난했음에도 불구하고 사교육을 포기하지 않았던 어머니의 의지와, 어떻게 해도 플러스가 안 되는 자산은 매월 감소되니, 가장의 무게는 매번 짓눌러졌으리라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아버지의 무게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가 그걸 하기 시작했다.

비록 계좌에 마이너스 몇십 퍼센트의 평가수익률이 존재하는 종목도 있었지만, 언제든 기회가 생기면, 벌어 나올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고, 실제로 그렇게 하지 못했던 종목도 있었지만, 밀어내고 나더라도, 한해를 복기할 때 번 돈과 잃은 돈을 합치고 나면 내 수준에서 꽤 많은 돈을 벌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투자 예수금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회전력을 필요로 했고, 수익률은 낮지만 수익금에 집중하자는 생각으로, 계속 반복된 거래를 통해서, 대신 지속적인 저축과 재투자를 통해, 계좌를 복리로 성장시키는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매일 행복하고 사는 것에 감사함을 느껴갈 즈음, 내 스승님인 부진이 형은 만날 사람들이 있다고 하셨다.

사실 부진이 형도 혼자 주식을 한 것은 아니라고 하셨던 것을 얼핏 들었다. 지금은 그분들을 만나고 있지 않지만, 가끔 전화 안부를 주고받으면 소주 한잔 하시곤 하셨다 했다. 자세한 것을 묻지 않는 것도 나의 처세중 하나였기에, 언젠가 형님이 그런 이야기를 꺼내실 때면, 마음속은 너무 두근거렸지만, 겉으로는 태를 내지 않았다.

부진이 형이 이 정도면 형이 배웠다던 그분들은 얼마나 대단하신 분들이 실까 하는 망상이 내 뇌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나도 슈퍼개미를 만날 수 있는 건가 , 이분들의 대화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무엇일까, 이야 역시 잠자코 수저나 잘 놓고, 물이나 잘 따라야겠다. 그런 생각이었다.


약속된 날이 되었고, 부진이 형을 모시고, 약속된 장소로 갔다. 그런데.. 평범한 동네 호프집이었다.

어? 내가 생각한 느낌은 이게 아니었는데, 도시에서 가장 비싸고 가장 좋은 곳에서 모셔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부진이 형에게 차마 묻지는 못했다. 나중에 듣고 보니, 여기가 가장 연장자분의 집에 가깝고, 여기 치킨이 맛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인사를 나누었을 때, 나는 다른 의미로 놀랐다.

평범한 옆집 아저씨, 마침 자녀를 학교를 보내고 나온 어머니, 그리고 방금 일이 끝났다며 느지막지 온 페인트향이 조금 나는 형님이 앉으셨다.

그리고 이어지는 시간들도, 주식의 지읏도 꺼내지지 않았다. 최근에 수능을 보았다는 자제분의 이야기, 맛집 이야기, 내가 기대했던, 주식과 거래에 대한 이야기는 일절 없었다.

내가 들을 준비가 제대로 안되어 있었던 것 같은 게, 내가 생각했던 대화가 이어지지 않으니, 말을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평상시에 그렇게 신나게 말하던 내가 묵묵부답으로 있으니, 잠시 환기하고 있을 때 부진이 형이 물었다.


“왜, 기대했던 거랑 달라?”


화들짝 놀랐다. 마치 내 생각이 다 읽힌 것 같은 부끄러운 느낌이 들었지만, 솔직히 그랬다고 말씀드렸다.

“지금은 시장이 좋아,구구절절 이야기 할 거리가 없지. 정확히는 살게 없지. 너도 나도 돈을 벌 수 있었어. 그리고 너도 벌었고 나도 벌었어. 그게 실력일 것 같아?”

“아니 그래도… 우리는 엄청 고민을 많이 해서 선택한 회사들이 잘된 건데..”


“우리가 잘해서 시장이 돈을 번다고 생각하면, 형은 항상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 우리가 주식이야기를 매일 하는 건, 너를 위해서야, 네가 이 생리를 이해해야만 해. 그러려면 남들이 들인시간의 몇 배의 공을 들여야 같은 열차를 탈 수 있어. 혼자만이 노선이 다르다면 떠나가겠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잖아. 나도 한때 주식에 미쳐있을 때는, 당구 좋아하면 잘 때도 머리 위에 공굴러간다고 하지. 나도 그랬어. 그런데 계속 그렇게 하면, 어느샌가, 잘못될 것은 생각 못한다는 거지. 그리고 그게 내가 잘해서 된다고 생각하면, 무너질 거야, 이분들은 이미 그 시기가 한참 지나 있어. 그리고 주식을 항상 갖고 계셔. 그럼 주식이야기를 새로 할 필요가 없어, 이미 자기의 주식을 갖고 계시거든.”


이어지는 이야기는, 오만한 나에게 아이스 버킷 챌린지를 당하는 느낌이었다.


“주식은 누구나 할 수 있어야 해. 동네 슈퍼 아저씨도, 옆집 문방구 할아버지도, 그리고 너의 가족도, 지금 만나고 계신 분들도 평범한 분들이야, 다 똑같이 자기 일을 하시고, 그런데 주식으로 좀 더 많은 알파를 추구하고 계셔, 우리처럼 거래를 하지 도 않아. 빠져있지도 않아. 자기 삶에 더 집중하시고, 다만, 시장이 지옥에 빠지면, 그때만 가진 현금과 배당을 받은 돈으로 재투자하시지, 어때. 뭔가 다르지?”

그냥 다른 게 아니고.. 아예 다른 인생이었다.

나는 당장 그렇게 할 수도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된다고 부진이 형에게 조언을 받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뭔가 알기 시작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맞았다.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05화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