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진의 변
음식의 명칭이기도 한 이 "튀김"을 주식쟁이라면 다르게 쓴다. 정확히 말하면 튀겨 먹는다는 뜻이다.
초반에 자본금이 없을 때, 어떤 식으로 이 자본금을 늘려야 되는지, 스승님에게서 배웠다. 그는 항상 말했다. 시장은 바다와 같다고. 때로는 잔잔하지만 때로는 거칠어진다. 중요한 것은 파도의 리듬을 읽는 것이라고.
이렇게 튀겨먹어서 버는 돈보다 잃는 경우는 대부분 욕심 때문이고, 적당히 여기서 먹고 살려면, 이렇게 해야하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욕심이라는 것은 마치 독과 같아서, 한 번 맛보면 점점 더 많은 것을 갈망하게 만든다. 하지만 나는 그 독의 달콤함보다는 생존의 쓴맛을 더 잘 알고 있었다.
굳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 않아도 되고, 굳이 남들에게 아쉬운 소리 해가면서, 왜 이 종목이 좋은지 떠들지 않아도 되고, 어차피 아무도 이 회사 관심도 안 가지고 있으니, 그냥 튀면 튀겨져서 팔고 다시 내려오면 긁고 하는 과정들이었다.
그것은 마치 홀로 춤추는 것과 같았다. 관객도 없고, 박수도 없지만, 오직 자신만의 리듬에 맞춰 묵묵히 움직이는 그런 고독한 춤이었다. 나는 그 고독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편안했다. 누군가에게 설명할 필요도, 이해받을 필요도 없었으니까.
그런데 이걸 내 동생한테 솔직하게 알려줄 수가 없었다.
이 친구는, 지금 그만큼 간절했고, 어떤 식으로든 살아남는 법을 알려줘야 했고, 근데 이 본질이 뭔지 알려주기 전에, 분명히 한번쯤은 실수 할 것 같았다.
간절함이라는 것은 때로는 독이 되기도 한다. 마치 사막에서 신기루를 쫓다가 더 깊은 사막으로 빠져드는 것처럼, 그 간절함이 오히려 올바른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 수도 있었다. 동생의 눈빛을 보면 그런 위험한 갈증이 보였다. 뇌가 본질을 찾지 못하고 지배해서 제멋대로 하는 것에 대한 말로는 숱하게 시장에서 사라져간 사람들을 통해서 알고 있었다.
어제까지도 필드에서 신나게 내기 골프를 하던 매니저 형도, 어느 순간 가정이 파탄나있고, 결국 레버리지를 올려서, 영영 돌아올 수 없는 친구도, 그리고 결국 유사수신 사기를 통해서 투자금을 들고 해외 도피해버린 아는 사람, 그리고 세상을 떠난 많은 사람들을 보면, 나는 이친구에게 어떻게 알려줄 수 있을까, 사실 나의 그 무모함 때문에 벌어진 주식을 가르쳐주겠다는 일념으로 이친구를 실망시켜주고 싶지 않았다.
그들 모두는 한때 꿈을 품고 있었다. 부자가 되겠다는 꿈, 가족을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꿈, 자유로운 삶을 살겠다는 꿈들을. 하지만 시장은 꿈꾸는 자들에게 가혹했다.
거대한 바다가 작은 배를 집어삼키듯, 그들의 꿈과 희망을 한순간에 앗아가 버렸다. 그리고 남은 것은 빈손과 후회 뿐이었다. 나는 그런 모습을 너무 많이 봤다. 그래서 더욱 조심스러웠다.
기본베이스는 북밸류(PBR)에서부터 출발한다.
충분히 타의에 의해서 싸져버린 회사가, 대주주와의 이해관계가 어느 정도 맞았을 때, 그렇게 자빠져 있는 회사가, 어느 순간 신규자본들이 들어와 소규모 매수가 시작될 때, 실수를 할 때가 있다.
그것은 마치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 것과 같았다. 추위에 얼어붙어 있던 땅이 따뜻한 햇살을 받아 서서히 녹아내리고, 그 속에서 새싹이 돋아나는 그런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새싹을 알아보는 눈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새싹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별할 줄 알아야 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매집 봉이라고 부르기고 하고, 당연하지만, 그건 아주 작은 소형주에서는 쉽게 드러나지만, 어느 정도 규모가 큰 회사는 그런 돈이 필요 없기도 하고 실제로 드러나지도 않는다.
큰 바다에서는 작은 물결이 잘 보이지 않지만, 작은 연못에서는 던져진 돌멩이 하나가 만드는 파장도 선명하게 보인다. 나는 주로 그런 작은 연못들을 찾아다녔다.
대주주와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면, 지금 대주주가 돈이 필요한 상태인지 확인 해봐야 한다.
3자배정 유증을 시도했는데, 실패했다든지, 주주배정유증을 하도 하다가 결국 감자까지 벌어졌는데, 유독 상장 폐지심사를 어떻게든 거래재개로 이어가려고 노력한 회사들이 나에게는 대상이었다.
그들은 마치 절벽 끝에 매달린 사람들과 같았다. 떨어지면 죽음이고, 올라가려고 해도 힘에 부치는, 그런 절박한 상황에 놓인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런 절박함이 때로는 예상치 못한 기회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들은 어떻게든 회사를, 매각하거나, 최소한의 투자를 받아서라도 엑시트를 하고 싶어한다.
입장을 바꿔보면 얼마나 토할 것 같은가. 그들도 꿈이 있었겠지, IPO를 처음 했을 때는 부자가 될 줄 알았는데, 그때부터 이상하게 방해를 받기 시작하더니 사업마저 기울어버리고, 뭘 해도 안되는데, 어떻게 해서든 나는 손을 떼고 싶은데 주가가 90% 이상 하락을 하니 더이상 도망갈 수가 없다.
발버둥칠수록 더 깊이 빠져들고, 도움을 요청하려 해도 주변에는 아무도 없고, 오직 절망만이 짙어져 가는 그런 상황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런 절망적인 순간에, 때로는 예상치 못한 기회가 찾아오기도 했다.
그들에게는 항상 주식 사냥꾼이라 불리는 자본들의 유혹을 받고 , 그리고 회사를 적당한 가격에 팔아 넘기려는 일들을 하게 된다. 일반 주주들에게는 지옥같은 일들이지만, 그들에게는 살길이라는 자본주의의 민낯으로 아주 잔인하고 처참한 광경들 속에서, 사실 알파가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오르는 주식이 아니다, 지독하게 하락한 주식이 마침 손이 맞아서 들썩이면 놓고 나오면 되는 것이다.
뉴스에 고점에서 밀려서 물릴 일도 없고, 회사가 거짓말을 해서 피해자가 속출할 일도 없고, 나같은 개투의 거래대금 쯤만 커버하는 주식이라면 그냥 튀겨 먹으면 되는 것이다.
과거에는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 했고, 늘 금감원의 감시에 피하면 그만이었지만, SNS 가 발전했고 미쓰리가 텔레그램으로 옮겨오게 되면서 더 활발하게 이어지게 되어, 신규 주주들이 이런 회사들을 오지 않게 하길 바라는 선한척 하는 자들이, 낙인을 찍는 경우도 많아서, 예전보다 더 힘들어졌지만, 여전히 이런 회사들은 내 튀김의 타겟이 되었다.
시대가 바뀌면 게임의 룰도 바뀐다. 과거에는 정보의 비대칭성이 더 컸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투명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투명함 속에서도 여전히 기회는 존재했다. 다만 그 기회를 찾아내는 눈이 더욱 예리해져야 했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이 친구가 종국에는 이걸 하지 않기를 바랬고, 적당히 하다가 그만둘줄 알았는데, 벌써 몇년째 같이하고 있었다.
시간이라는 것은 참으로 기묘하다. 처음에는 짧은 만남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몇 년이라는 긴 여정이 되어버렸다. 마치 강물이 흘러가듯,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함께 흘러온 시간들이 쌓여 있었다.
동생은 변했다. 처음 만났을 때의 그 서투른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이제는 나보다 더 차갑게 시장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늘 집요하게 물어봤지만, 난 적당히 둘러댔고, 이 친구가 답을 찾기를 원했던 것도 있지만 의도적으로 알려주지 않았던 것도 있다. 결국에는 이 것을 하지 않기를 바랬기 때문이다.
특히 이런 위험한 게임에서는 더욱 그랬다. 나는 동생이 이 늪에서 벗어나기를 바랐지만, 동시에 그가 혼자 헤쳐나갈 힘을 기르기를 원했다. 그것은 마치 새끼 독수리를 둥지에서 밀어내는 어미 독수리의 마음과 같았다.
그런데 어느순간 내 바로 뒤꽁무늬 까지 따라온 듯해 보였다.
좀 특이하긴 했다.
마치 게임같다고 말한 이친구는, 매번 새로운 것들을 시도하는 것에 대해 거리낌이 없었으며, 조금 손실을 보기시작하면, 던져버리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랐다. 그에게는 마치 얼음같은 냉정함이 있었다. 감정이 개입될 틈을 주지 않는, 그런 합리성이 있었다.
일부러 어려운 매매들도 추천은 하지 않았지만, 물어보니 알려준 것인데, 곧잘 따라오곤 했다.
"다 형님 덕분입니다."
제자의 눈빛처럼, 순수하고 간절한 무언가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나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너무 순수한 것도 위험하다. 시장은 순수함을 먹잇감으로 여기니까.
여기서도 수익을 만들어냈어? 하는 경우도 많았다.
뻑하면 -40% 가 하락할수도 있는, 바텀피싱에서, 몇번을 매수해서 수익금으로 매도한 것이다.
아찔한 순간이지만, 제대로 된 장비와 기술이 있다면 안전하게 착지할 수 있는 그런 스릴이었다. 하지만 동생에게는 그런 장비가 있을까? 기술이 있을까? 나는 확신할 수 없었다.
나는 보통 이런 것을 밀어버리곤 했는데, 이정도도 이제 능숙하게 해버리는 것을 보니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래도 큰돈이 아니니, 그랬겠거니 했는데, 어느새 꽤 많은 수익금을 내고 있었으니, 나는 그걸 월급쟁이라고 불렀었다. 실제로 나는 회사원이니까.
월급쟁이라는 말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 있었다. 안정성, 꾸준함, 그리고 적당한 만족감. 하지만 동시에 한계도 있었다. 정해진 틀 안에서만 움직일 수 있는 그런 제약 말이다.
"인턴이 받는 월급은 한달에 100만원이다."
"신입사원이 받는 월급은 한달에 200만원이다."
"대리가 받는 월급은 한달에 300만원이다."
"과장이 받는 월급은 한달에 500만원이다."
"차장이 받는 월급은 한달에 1000만원 이상이 되고, 이때부터는 매매가 없으면서 자산이 늘어나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그것은 일종의 단계별 성장 지표였다. 마치 게임에서 레벨업을 하는 것처럼, 각 단계마다 달성해야 할 목표가 있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마지막 단계였다.
더 이상 직접적인 매매에 의존하지 않고도 자산이 늘어나는 구조,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였다. 그런데 그 자유에 다다르는 사람은 정말 드물다. 대부분은 중간에 욕심을 부리다가 추락한다.
2년차가 되자 이 녀석이 나에게, 계좌를 보여주며, 환하게 웃었다.
"이제 제 회사 월급을 초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미소는 밝았다. 성취감과 자신감이 얼굴 전체에 퍼져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미소 뒤에 숨어있는 위험을 감지할 수 있었다.
이 친구야.. 계좌에 -50% 가 이렇게 많은데..
겉보기에는 평온해 보이지만, 한 걸음 잘못 디디면 폭발할 수 있는 그런 위험들이 곳곳에 숨어 있었다. 마치 지뢰밭을 걷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발을 디뎌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친구는 어차피 다 살아나오게 할 자신이 있다고 했지만, 나는 이렇게 까지 알려준 적은 없었는데, 그렇다면 두가지다.
첫째, 정말 잘 살아나오게 할 자신이 있거나.
둘째, 객기이거나.
그런데 나는 안타깝게도 이친구가 두 번째에 가까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자신감을 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판단력을 흐리게 만든다. 그리고 결국에는 파멸로 이끈다.
그렇게 생각한 가장 큰 이유는 이 녀석에게는 출구 전략이 없다.
내가 가장 큰 불안이 이것이다. 어떻게 알려줄 도리가 없다.
내가 지금 사실을 알려준다면, 이 친구는 그동안 해온 행위들이 송두리째 흔들릴 수도 있고, 알려주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다.
한가지 더, 이걸 스스로 깨우쳐서 나오는 방법이다.
깨달음이라는 것은 누군가가 억지로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치 꽃이 저절로 피는 것처럼,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 때를 기다리는 것은 때로는 너무나도 고통스럽다.
특히 이 녀석의 경우는 제로로 시작을 했기 때문에, 꿈을 꿨다고 가정하고 송두리 째 날라가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그때 깨닫기를 바랄 수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 다행인 것은 나는 이 친구에게 레버리지를 가르쳐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 위험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절대 그것을 가르치지 않았다. 레버리지는 마치 양날의 검과 같아서, 잘못 다루면 자신을 베어버린다.
실제로 계좌를 종종 보여줄 때 신용과 미수가 있는지 확인했다.
돈이 없으면, 계좌에 이익 중인 회사를 밀어서 가장 큰 손실이 있는 회사에 거리낌 없이 넣었고, 그게 어느정도 오르면 또 가장 큰 손실이 있는 회사에 넣는 것을 반복한다.
신기하게도 , 나는 중간에 그게 끊길 줄 알았는데, 그걸 혼자서 몇년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사실 이게 잘 안되서, 어느정도 교훈을 갖고 다음 단계로 갈 생각이 사실 있었는데, 이게 계속 반복이 되는걸 보니, 나도 도저히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때로는 실패가 더 좋은 선생님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친구에게는 그 실패의 순간이 좀처럼 오지 않았다. 그것이 오히려 더 큰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래도 내가 아무도 찾지 않는 회사를 한건 맞지만, 말도 안되는 회사를 하지는 않았다.
그렇다 치더라도 항상 늘 맞지는 않았는데, 이녀석은 어거지로 끼워 맞추는 것을 보니 한편으론 대견하기도 했고, 나조차도 이녀석이 신기해보였다.
정말 감정없이 하는게 가능한 거구나, 아닌가 이녀석은 정말 뭔가를 담고 있는건가.
감정 없이 투자한다는 것. 그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감정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친구는 마치 로봇처럼 차가운 합리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것이 때로는 경이롭기도 하고, 때로는 걱정스럽기도 했다.
다음에 진행하는 건 정리매매를 했었다.
정리매매에서는 기업의 순보유 자산가치 이하로 떨어지면, 기술적 반등을 통해서 차익거래구조가 생긴다는 원리를 설명했고, 그때 벌고 나오지 못한다면, 반드시 손절을 해야한다는 규칙을 언지해줬다.
정리매매는 마치 쓰레기통에서 보물을 찾는 것과 같았다. 대부분은 정말 쓰레기지만, 가끔 진짜 보석이 섞여 있기도 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언제 손을 떼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었다.
이런 튀기는 과정의 전체적인 개괄은 옵션과 비슷한데, 내가 얼마나 프리미엄을 물고 들어가서 차익거래를 해내느냐에 관한 프로세스였고, 대신 캔들이 어떻고, 지지와 저항이 어떻고, 자질구래한 것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기술적 분석이라는 것은 때로는 숲을 보지 못하게 하는 나무와 같다. 너무 세부적인 것에 집착하다 보면 본질을 놓치게 된다. 나는 그보다는 큰 그림을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어떤 것이든 새로 배우면 편향이 생기기 마련이고, 확증 편향, 최신편향 편향의 종류도 가지각색이기 때문에, 이걸 학술적으로 풀어나가는 것보다는, 몸으로 익히고, 단 하나, 돈을 버는 것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바탕을 내어주었다.
편향이라는 것은 마치 색안경과 같다. 한번 끼면 세상이 그 색깔로만 보이게 된다. 빨간 안경을 끼면 모든 것이 빨갛게 보이고, 파란 안경을 끼면 모든 것이 파랗게 보인다. 투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번 특정한 방식에 매몰되면, 다른 가능성들을 보지 못하게 된다.
나는 스승님께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 인생이고, 투자라고 배웠기 때문에, 나또한 동생이 그렇게 자라기를 원했고, 그리고 생각보다 돈을 벌기 시작한 시점이 빠르고, 궤도에 오르는 것도 빠르게 되었지만, 여전히 한켠에 불안감이 있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그릴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그릴 것인가였다. 성급하게 그으면 선이 흔들리고, 너무 조심스럽게 그으면 생기가 없어진다. 동생은 아직 자신만의 선을 긋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날 부터인가, 내가 계속 질문에 답변을 두루뭉실하게 하니 이녀석이 자신만의 종목들을 찾아서 매매하기 시작했다.
독립. 그것은 모든 스승이 제자에게 바라는 궁극적인 목표였다. 하지만 막상 그 순간이 오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마치 자식이 집을 떠나는 것을 보는 부모의 마음처럼, 기쁘면서도 걱정되고, 자랑스러우면서도 불안했다.
나는 다 맘에 들지 않았다. 솔직히 한번쯤 부러지기를 바랐던 것도 있다.
실패는 때로는 최고의 선생님이 된다. 성공보다 더 많은 것을 가르쳐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 실패가 회복 불가능한 수준이어서는 안 되었다. 적당한 실패,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정도의 실패 말이다.
실패도 좋은 경험이 될테니까, 그런데 내가 오판했고, 그래서 더 걱정이 되기 시작했지만, 결국 혼자 느껴야 한다는 것에 더이상 잔소리를 이어내지 않았다.
그것이 그에게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나도, 스승님을 떠난 이유가, 그 사소한 잔소리 때문 아닌가. 이녀석이라고 다를까.
그렇게 서로의 대화가 줄어갈 때 즈음, 사고가 발생했음을 이친구의 질문에 직감적으로 느꼈다.
"형님 , 그거 어떻게 하실 계획이세요?"
그의 목소리에는 평상시와 다른 긴장감이 섞여 있었다. 마치 얇은 얼음 위를 걷는 사람의 조심스러운 발걸음처럼, 말 한마디 한마디에 무게가 실려 있었다. 나는 그 순간 알았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그거? 진작 손절했지~"
"네?... 형은 손절 안 하시잖아요."
"필요 없으면 팔아야지."
사실 안 팔았다.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거짓말이 필요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이친구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한편으로 미안하기도 하면서, 이친구가 어떻게 헤쳐나갈지 궁금했다.
그의 얼굴은 마치 갑자기 길을 잃은 아이와 같았다.
지금까지 믿고 따라왔던 이정표가 사라져버린 그런 당황스러움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아니 그런데 그 헤쳐나간 방식이 펫핑거였다니, 또 성장할 기회를 버려버린건가.
철저하게 편향에서 배제되어야 한다는 것 중에는 실적도 있었다.
실적이라는 것은 과거의 이야기다. 하지만 사람들은 과거의 성과에 매몰되어 미래를 판단하려고 한다. 그것은 마치 뒤를 보며 앞으로 걷는 것과 같았다. 언젠가는 넘어질 수밖에 없다.
아이러니하게 EPS를 추종하는 방식이 아닌 이런 차익거래는, 결국 대주주와의 이해관계를 파악해야하고, 설령 내가 파악한 것이 틀렸다 하더라도, 충분한 시기를 기다려서 추가매수를 통해, 들고 나와야한다는 것을 이해하려면, 결국 이 주가의 상승의 원동력을 완벽히 이해해주기를 바랬는데, 내동생은 안타깝지만, 더이상 깊게 들어올 마음이 없어 보였다.
어쩌면 당연한 것인게, 돈을 만지다 보면,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린다. 이걸 어떻게 매매해야하는지만 생각하고, 다른 것들을 생각하지 못한다. 정확히는 생각하는 척만 한다.
돈이라는 것은 마치 마약과 같은 중독성이 있다. 한번 그 달콤한 맛을 보면, 다른 모든 것들이 시시해진다. 그리고 점점 더 많은 것을 갈망하게 되고, 결국에는 판단력을 잃게 만든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데, 그 사업보고서에서 발생한 힌트들을 해석하는 것이 핵심인데, 이미 알려주기엔 너무 늦어버린 걸까.
그 안에는 회사의 진짜 이야기가 숨어 있다.
하지만 그 암호를 해독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나 욕심이 앞서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랬다.
동생이 나에게 투자에 관련된 연락이 없는지 몇 달이 지났다.
나는 동생이 정말 잘되기를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