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산책: 수필
안다이 똥파리
이제 65세 이상이면 ‘노인’이다. 국가가 인정하는 기초노령연금
대상자이기도 하다. 그런데 노인정, 공원 벤치, 종교단체 모임,
음식 무료 배식소 등 어디를 가든 남자 노인들이 모여 앉아 수다
를 떨기 시작하면, 금세 알 수 있다.
분위기가 슬슬 달아오를 무렵이면, 누가 먼저 알릴 것도 없이 삶의
체험담이 줄줄 흘러나온다. 그중에는 사실 여부를 검증 하기 어려운
직업관, 국가관, 가치관이 섞여 있다.
누군가 맞장구라도 잘 쳐주는 날이면, 주인공은 단번에 그 노인이
된다. 자랑이 자랑을 불러 기고만장한 표정으로 자신의 과거를
화려하게 펼쳐놓는다.
특히 말 많은 어르신들은 부산 갔다가 강원도 갔다가, 누가 일본
이야기를 꺼내면 갑자기 일본 갔다가, 미국 갔다가, 또 사우디 얘기
나오면 어느새 사우디 출신 으로 변신한다.
TV 드라마 얘기가 나오면 시인, 수필가, 칼럼니스트, 소설가가 되어
있다. 사업 얘기로 넘어가면 더욱 가관이다. “왕년에 수백억 날려봤다”
는 실패담은 듣고 있자면 가슴이 서글 퍼지기보다, 오히려 실소가
절로 나온다.
경상도 사투리 중엔 “안다이 똥파리”란 말이 있다. 무엇이든 아는 척
하며 아무 데나 달려드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이 말 만큼 떠버리
노인들의 특징을 잘 설명 하는 말도 없다. 그러다 누군가 말 한마디
툭 던지면 금세 싸움이 벌어진다.
“너 몇 살이야?” 반말에 발끈한 상대가 “주민 등록증 까자”며 고성이
오가기도 한다. 또 술 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소주 다섯 병 마셔도
멀쩡하다”는 체질 자랑이 빠지지 않고, 춤 이야기가 나면 “서울 바닥
에 내 손 안 잡은 여자가 없다”라고 말하는 ‘전설의 제비족’이 되어
있었다.
대학교수 이야기엔 “우리 형님이 xx대 교수였다”는 말이 덧붙고, 골프,
바둑,포커, 화투까지 줄줄이 이어진다. 처음 시작한 화제는 이미 실종
되고 사라지고 없다.
어느새 “XXX 범법자 내용”이 언급되며 누군가 허리를 툭 치고 웃는다.
“비아그라 먹어야 힘이 솟는다”며 정력 자랑으로 분위기가 바뀐다. 사위
자랑,며느리 자식 자랑, 손자 손녀 자랑이 뒤섞여 대화는 실종되고, 나는
속으로‘이건 치매도 아닌데 어찌 이리 횡설수설 인가’ 싶다.
그쯤 되면 집에서 전화가 온다.“저녁 안 먹고 뭐 하셔요?”나는 핑계를 댄다.
“실례합니다. 잠시 자리를 비울게요.귓구멍이 간지러워 더는 듣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야 말들이 참 많다.
은퇴 전에는 의미 중심의 시간, 카이로스 (Kairos)를 살았던 사람들이, 은퇴
후에는 덧없이 흘러가는 시간, 크로노스 (Chronos)의 삶을 산다.
어쩌면 지금 이들의 허세 어린 수다도 사회적 공허함과 외로움에서 비롯된
것일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생각한다. 진정성이 없는 말은, 결국 상대에게
신뢰 를 주지 못한다는 것을
.
할머니들의 수다는 어떨까.그분들도 아마 비슷하게 말꼬리를 물며 살아온
이야기를 꺼내고 계시겠지. 이제는 우리 모두 늙었다. 보잘것없는 넋두리라
해도, 진실만은 담아야 하지 않겠는가.
허풍도 허세도 떨지 말고, 살아온 그대로 보태지도 말고 빼지도 말고 정직한
인생 이야기를 나눴으면 좋겠다. 화려한 학력도, 번쩍이던 과거도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그저 병원 신세 지지 않고, 신체 건강하게, 미소 지은 얼굴로 상대를 다독이며,
발언권 무시하고 말끊고 끼여들지말고 따뜻한 덕담 한마디 미소을 건네며,
길가 마주 앉아 좌판기 커피 한 잔에 삶을 나누는 일~ 그런 평범한 하루가
어쩌면 가장 품격 있는 노년이 아닐까.오늘도 조용히 되뇌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