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지게, 우아하게 늙어가자

마음의 산책: 수필

by 하태수 시 수필


멋지게, 우아하게 늙어간다는 것


사람이 옷을 입고 거울 앞에 서는 일은 단순히 외출 준비만은 아니다.
그날의 몸 상태를 살피는 일이기도 하고, 아직 세상과 관계를 맺고

싶다는 작은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나이가 들수록 옷차림은 더

솔직해진다.


무엇을 숨기기보다는, 그 사람이 살아온 태도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거리에서 만나는 노인들 가운데는 유독 눈길이 가는 사람이 있다.

화려하지 않아도 단정하고, 몸은 늙었어도 얼굴에는 삶의 결이

고르게 정돈된 어른이다.


그런 사람을 보면 절로 마음이 고개를 숙인다. 그 모습은 그가 어떤

직업을 가졌는지, 얼마나 부유한지를 말해 주지 않는다. 대신 어떻게

자신을 대하며 살아왔는지를 조용히 들려준다.향을 싼 종이에 은은한

향이 남고, 생선을 싼 종이에 비릿한 냄새가 남듯이, 인생도 담아 온

것의 흔적이 끝내 남는다.


말투에, 표정에, 걸음걸이에, 그리고 옷차림에까지. 나이가 들수록

그 흔적은 지우기 어려워지고, 그래서 더 정직해진다.아무리 많은

것을 가졌어도 머리가 헝클어지고 슬리퍼를 질질 끌며 다니는 모습

에서는 삶에 대한 긴장이 느껴지지 않는다.


반대로 값비싼 옷이 아니어도 몸과 마음을 한 번 더 추스른 사람

에게서는 묘한 품격이 풍긴다. 그것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치장이

아니라, 자신을 놓지 않으려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이 들어 멋스럽게 늙는다는 건 젊음을 흉내 내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의 나를 인정하고, 무너진 곳이 있다면 조심스럽게

보수해 가는 일에 가깝다.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

들이면서도, 그렇다고 방치하지는 않는 것. 그것이 노년의

자존감이 아닐까 싶다.


여행길에서, 혹은 낯선 도시의 거리에서 가끔 그런 어른들을

만난다. 과하지 않게 단정하고, 표정에는 여유가 묻어 있으며,

걸음에는 자신만의 속도가 있다. 눈꺼풀이 처지면 고쳐도 좋고,

기미가 올라오면 점 하나쯤 빼도 괜찮다.


그 작은 손질 하나가 마음을 먼저 밝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세월은 자연의 법칙이지만, 그 흐름에 전부를 맡길 필요는 없다.

조금은 거슬러도 좋고, 조금은 다듬어도 된다. 그렇게 자신을

살피는 일은 허영이 아니라 자기 사랑에 가깝다.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끝까지 나로 살기 위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단정한 옷차림, 깨끗이 빗은 머리, 그리고 얼굴에 머금은 웃음

하나만으로도 사람은 다시 살아난다. ‘마귀할멈’이 아니라 ‘

꽃할머니’로 불리고 싶은 마음, ‘초라한 노인’이 아니라 ‘멋진

어른’으로 남고 싶은 바람은 누구에게나 자연스럽다.


낡은 옷을 벗어 던진다는 건 가난을 부정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을 더 이상 방치하지 않겠다는 선언일지도 모른다. 품격은

태어날 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선택 속에서 조금씩

쌓인다.


멋진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많은 사회는 그만큼 늙음을 존중

하는 사회다. 늙어감이 부끄럽지 않은 세상에서는 나이 드는

일 또한 하나의 문화가 된다. 그리고 그 문화는 결국, 자기

자신을 끝까지 소중히 대하는 사람들로부터 시작된다.


죽는 날까지,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 자신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가장 우아한 노년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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