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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안나 May 23. 2017

내 방 한 칸이 갖고 싶었을 뿐이오

나에게는 세 살 터울의 여동생이 하나 있다. 내가 서울에서 생활하는 동안, 동생은 일본에서 생활했다. 느릿느릿 소처럼 걷는 것도 모자라 일도 소처럼 하던 나와 달리, 어릴 때부터 영리하고 재빠르던 동생은 한 남자를 영리하게 길들여 재빨리 시집도 가고 아이도 낳았다. 그런 동생네 가족이 부모님과 함께 살겠다는 의사를 먼저 전해왔고, 짐을 정리할 때쯤 나는 후발대로 시골에 내려오게 됐다.     

 

시골로 내려가 살기로 한 후, 가게보다 원룸을 먼저 계약했더랬다. 부모님 집으로 들어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1도 하지 않았다. 한 집에서 대가족이 복작거리며 산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피곤했다. 대낮에 와인을 병째 깔 수도 없고, 샤워 후에 맨몸으로 돌아다닐 수도 없고, 술에 취해 방에 누워 노래를 부를 수도 없고, 빨랫감을 산더미처럼 쌓아놓을 수도 없는 생활이라니. 종일 한 공간에서 일하고 잠까지 함께 자야 한다니. 무엇보다 한밤중에 사부작거려야 하는 저녁형 인간으로서 아침형 인간들의 재잘거림을 견뎌낼 생각을 하니, 생각도 하기 전에 피곤하기부터 했다. 도대체가 매력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는 생활을 할 이유가 없었다. (사실, 내가 집에 들어가는 걸 반길 사람도 없었다.)


서울에서 막 내려왔을 때는 수중에 돈이 조금 있었다. 그래 봐야 일이백이지만. 부모님 집 근처에 원룸을 알아보니 보증금 없이 삼사십만 원 정도면 방을 얻을 수 있었다. 서울에서는 보증금 이천만 원에 월세 사십사만 원을 내고 여섯 평짜리 관에서 살았는데, 시골에 오니 열 평도 넘을 것 같은 풀옵션 1.5룸에 보증금도 없이 들어갈 수 있었다. 아하하하. 엄청 기뻐서 담배 냄새와 하수도 냄새가 엄청 나는 것도 모르고 계약부터 했다. 서울 친구들에게 연락해 엄청 큰 방을 얻었으니, 주말에 싹 다 놀러오라고 신신당부도 했다.     


여섯 평짜리 관에 누워 아침을 맞을 때면, 죽음을 체험하는 핑크 파니의 모습이 떠오르곤 했다.


며칠 동안 청소도 하고 묵은 짐도 싹 정리했다. 먼지 대잔치를 하며 집 같은 집이 되었지만, 막상 원룸에 들어가려니 발길이 쉬 옮겨지지 않았다. 여름이 되어 창문을 닫고 에어컨을 켜려니, 담배 냄새와 하수도 냄새가 나 좀 보라며 밤새 춤을 추었다. 가게 일이 끝나면 자연스레 부모님 집에 가 저녁을 먹었고, 거실에 누워서 텔레비전을 조금 보다 보면 잠이 들고 말았다. 가게를 처음 열고 적응하기에 바빠, 가게 외에서의 삶이 거의 존재하지 않던 때였다. 원룸은 어느새 아침에 화장품을 찍어 바를 때나 여행에 필요한 짐을 쌀 때, 책을 보관할 때 들리는 곳이 되어 있었다.      


꽃길만 걷게 해줄 것 같은 벽지에서 담배 냄새를 맡는 순간, 망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

돈지랄은 이렇게 하는 거다.


그렇게 석 달 정도 돈지랄을 하고 나니, 정신이 살짝 들었다. 동생네 가족도 정신이 났는지 근처 빌라에 독립해 살겠다고 했다. 몇 년 전, 갑작스런 뇌경색과 심근경색으로 직장생활을 정리하게 된 아빠와의 생계를 위해 엄마는 과감하게 장사를 결심했다. 하지만 일을 하며 시한폭탄 같은 혈관을 가진 아빠를 자주 들여다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사람이 그리워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어 하던 동생네 가족이 부모님과 함께 살기를 결심한 것이었다.      


굳은 결심이 있었겠지만, 오랜 시간 따로 지내온 두 가족이 함께 사는 건 역시 쉽지 않았으리라. 그렇게 동생네 가족은 독립을 했고, 돈이 떨어진 나는 부모님 집으로 들어갔다. 가게 일을 마치고 아주 오랜만에 내 방에 들어와 누웠다. 작고 아늑한 한 평짜리 방이 예전 모습 그대로 나를 반겨주었다. 십 년 전에 내 피 빨아먹다 배 터져 죽은 모기의 핏자국까지도.     


퇴근하며 현관 문을 열기 전에 마당에 서 돌아보면 저 멀리 가게 건물이 보인다. 수고했어, 오늘도.


+ 말 나온 김에 마저 하자면, 그 후로 두 개의 원룸에서 두 번의 돈지랄을 같은 순서대로 했다. 이유? 글쎄. 저녁형 인간의 가족 일탈법이랄까. 물론 지금은 다시 한 평짜리 내 방이다. 그리고 여전히 또 다른 원룸에서의 돈지랄을 꿈꾸고 있다. 호시탐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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