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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안나 Jun 02. 2017

퇴직금이 통장에 스치운다

장사를 시작하고 한동안 힘들었던 건 별생각 없이 정한 메뉴 때문만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장사를 시작할 때는, 못해도 한 육 개월 정도는 내 주머니에 돈이 안 들어온다는 가정 하에 그 시간을 버틸 만큼의 여윳돈을 준비해야 한다. 가능하다면 일 년 정도를 버틸 수 있는 여윳돈을 준비하는 게 좋다. 대략 계산해보면, 이천만 원 정도가 여윳돈으로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그 여윳돈이 없었다. 그나마 있던 돈도 개업 준비 비용으로 쓰고 나니,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그 상태에서 장사를 시작하니 소소하게 필요한 돈은 급하게 마련하기가 힘들었다. 주방에 필요한 기계를 들이느라 돈이 필요할 때면 주변 사람들에게 급전을 부탁하기도 했다.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면 또 돈이 필요했다. 이 세상은 온통 돈으로만 이루어진 것 같았다. 누구한테 얼마, 누구한테 얼마, 누구한테 얼마……. 은행 대출 외에도 자잘하게 돈 갚을 것들이 생겨났다.     


“선배!”

“어라, 무슨 일이래?”

“오늘 퇴직금 입금했어요.”

“그래요???”

“금액 확인해보세요.”     


퇴사한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장사하다 말고 은행으로 내달린다. 통장에 입금 내역을 확인한다. 돈을 찾아 빚진 지인들에게 나눠주고 싶지만, 일단 급하게 돈이 필요한 곳이 없는지, 세금을 안 낸 건 없는지, 가게에 현금이 필요한 일은 없는지 먼저 계산해봐야 한다.     


서울에 살 때 같았으면, 바로 돈 찾아서 여행을 갔을 텐데. 여행이 어렵다면 친구들 모아놓고 밤새 술이라도 한잔 했을 텐데. 언제 그런 삶을 살았나 싶을 정도로 아득하다.


“그때 누구한테 얼마 빌렸다고 했지?”     


메모지를 꺼내놓고 빌린 돈을 계산한다. 급하게 돈 쓸 일이 있어도 빌린 돈 먼저 갚는 게 마음이 편할 것 같다. 얼마 안 되는 돈으로 아쉬운 소리 해가며, 좋은 관계를 망쳐버릴 만큼 돈이 궁한 건 아니다. 설사, 돈이 궁하다 하더라도 나의 상황을 안타깝게 여겨 돈을 빌려준 사람에게 다음을 기약하는 건 도리가 아니다.     


퇴직금으로 지인들의 돈을 갚고 세금을 내고 나니, 십만 원이 남았다. 십만 원으로는 더운 여름에 가게 일 돕느라 고생하는 가족들과 삼겹살을 사 먹었다. 맥주도 한 병 마셨다. 칠백여만 원이었나. 이 년 반 남짓한 시간 동안 버둥거리느라 고생했다고 회사에서 준 돈을 쓰는 데는 두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말은 안 하지만, 엄마는 내심 미안한 눈치다. 가끔 주말에 내려와 용돈을 주면, 엄마는 애들 코 뭍은 돈을 어떻게 쓰냐며 그마저도 내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함께 여행을 가도 내가 교통비와 숙박비를 내면, 엄마는 식비와 기타 비용을 내는 식이었다. 다달이 월급 타는 딸에게 철철이 새 옷을 사주고 싶어 기회만 보는 사람이었다.     


그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냉정하게 생각하면 내 돈을 안 쓰고는 버틸 수 없는 상황이다. 미안한 마음과 안타까운 마음은 나중에 돈을 많이 벌면, 그때 추억하면 된다.      


그렇게 나의 퇴직금은 하루 만에 통장을 스쳐갔다. 이제는 받을 수 있는 퇴직금도 없다. 그렇게 내 씀씀이도 조금씩 줄었다. 어떤 날인가는 빵을 사 먹으러 제과점에 갔다가 돌아 나왔다. 빵을 세 개 살 돈이면 우리 가게 소고기김밥 한 줄을 산다. 소고기김밥 한 줄 팔기가 얼마나 힘든데 그걸 선 자리에서 까먹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기가 막히면서도 빵은 사지 않았다. 가게로 돌아와 돈통에 삼천 원을 넣고 소고기김밥 한 줄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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