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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안나 Jun 06. 2017

별빛이 쏟아지는 밤길을 걸으며

친구들과 늦도록 가게에서 술을 마셨다. 혼자 남아 유행하는 노래를 들으며 다 식은 음식을 버리고 설거지를 한다. 술자리 뒤에 남은 쓸쓸함을 혹여 들키지는 않을까, 구석구석 열심히 닦으며 흥얼흥얼, 가사도 모르는 노래들을 따라 불렀다.


가게에 불을 끄고 문을 잠갔다. 돌아서며 휴대폰을 꺼내 플래시를 켰다. 친구들이 바래다준다고 했지만, 씩씩하게 혼자 가겠다고 했지만, 시골의 캄캄한 밤길은 제법 무서우니까.


누군가의 인기척을 느끼지 못할까 봐, 음악은 듣지 않기로 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걸으니 밤길이 더욱 무섭다. 그래도 집으로 가는 길이니까 담담한 마음을 가져볼까.


바스락, 바스락


알 수 없는 소리에 놀라 고개를 돌리니 고양이가 쓰레기봉투를 바쁘게 헤집고 있다. 무섭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한다.


'저들은 왜 이 늦은 밤에 썩은 내가 진동하는 음식들을 남몰래 뒤져 먹어야만 할까.'


'어흥!' 하고 소리를 칠까 고민하며 한참을 지켜보다 나를 발견한 고양이를 보고서야 발걸음을 돌린다. 썩은 음식을 먹은 고양이의 배탈 따위를 걱정하며.


느릿느릿 걷다 술자리에서 친구들과 나눈 이야기를 생각한다. 생존의 절실함에 대하여, 돈에 대하여, 욕망에 대하여, 어느 정치인에 대하여, 또 그것들을 대하는 나에 대하여.


이런저런 생각을 하기엔 집이 너무 가깝다. 사과밭을 지나며 잠시 서 있는다. 숨을 들이쉬며 안경을 꺼내 썼다. 하늘에 별이 많다. 술이 덜 깼는지 별들이 지구와 같이 빙글빙글 돌다 쏟아져내릴 것만 같다. 어지러워 별들을 보던 눈을 달에게로 돌린다. 밤늦게 귀가하는 일이 잦지만, 보름달을 본 기억은 거의 없다.



생각이 생각에 꼬리를 물어 생각이 생각을 낳고 그 생각이 생각을 낳을 때쯤, 친구들에게 문자가 온다.


"난 집."

"나도 집."

"잔다."

"안녕."


한 마디 보탤까 하다 그만둔다. 잔다고 했으니까, 밤늦게 누군가의 휴대폰을 울리는 건 아무래도 실례니까.


생각하기도 그만두고 집에 들어와 씻고 누웠다. 끝내지 못한 오늘의 이야기들이 머릿속에서 맴맴 거린다. 서걱서걱, 몇 안 되는 생각에 뇌가 용량을 초과했는지 더 이상 회전하지 못하는 듯하다.


낮은 자존감과 연약한 멘탈로 사회생활할 때 고생이 많았지만, 성인이 된 친구들과의 어른스러운 대화에서도 여전히 난 고생이 많다. 그래서... 과연 나의 생각들은 조금이라도 성장하고 있는 것일까. 좀 더 성숙한 인간이 되고 싶어, 나다운 인간이 되고 싶어 회사를, 도시생활을 박차고 나왔지만, 시골생활을 한다고 해서 저절로 성숙한 인간이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모든 일에는 그만큼의 수고로움이 필요한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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