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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안나 Jun 09. 2017

아저씨, 밥집이 잘 될까요?

밥집을 할까 말까 고민하던 차에 엄마가 찾은 사람은 신내림 받은 지 얼마 안 됐다는 옆 동네의 박수무당. 그의 말에 의하면 엄마는 젊어서 큰 술집을 했으면 잘 됐을 것이다. 배포가 크고 음식을 잘해 작은 장사도 좋지만 큰 장사를 하면 더 큰돈을 번다. 자기주장이 강해 직장생활은 힘들다. 지금이라도 밥집을 하면 돈을 벌 수 있다. 물이 들어간 메뉴를 하나 넣어라. 그럼 더 좋다.   

    

그 말에 힘을 얻어 덜컥 가게를 얻고 장사를 시작했지만, 문을 열자마자 문전성시가 될 수는 없는 법. 엄마는 통장에 꽂히는 돈이 없으니 하루에도 열댓 번씩 가게를 접어야 하나 고민을 했고, 세 달에 한 번 꼴로 가게를 내놓는 게 낫지 싶어 박수무당을 찾아갔다. 점심 장사를 마치고 쉬는 시간이 되면 그를 찾아 한두 시간 넋두리를 했고, 저녁 장사 시간이 되면 가게로 돌아왔다.      


내가 먼저 그를 만나러 가자고 한 적도 여러 번이다. 음식을 만들어 파는 일에는 엄청난 체력이 필요했다. 적지 않은 나이에 종일 서서 요리를 하다 보니, 엄마에게 체력적으로 한계가 오는 날이 종종 있었다. 힘들다고 가게 닫고 집에 가 쉴 수 없으니, 팔이 아프면 팔 주사를 맞으며 버텼고, 머리가 아프면 두통약을 먹으며 버텼다.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약해진다. 그런 날이면 몇 푼 없는 통장을 더 한심스럽게 여겼다.      


“아이고, 이거 돈을 버는 건지, 내버리는 건지, 도대체 모르겠다.”     


그 시간이 지속되다 조금만 더 힘내 보자는 내 말이 안 들릴 정도의 절망감이 엄마를 찾아오면, 박수무당을 만나 그의 위로를 듣는 편이 엄마에게는 힘이 되었다. 점괘를 믿어서 찾았다기보다는 누군가의 위로와 응원이 필요해서, 그 말을 해주는 사람이 신의 음성을 대신 전해주는 이라서 그를 찾았다. 그의 앞에 엄마와 내가 나란히 앉는다. 엄마가 요즘 힘들어한다는 말을 꺼내며 약간은 친해진 그에게 엄마 모르게 눈짓을 한다.

      

엄마에게 괜찮다고 말해주시오.

조금만 더 열심히 해보라고 말해주시오.      


이런저런 고민들을 늘어놓는 엄마에게 박수무당을 슬쩍 끼워 나의 의견을 전달하기도 한다. 그에 부응하듯 그는 늘 엄마에게 지금 조금만 견디면 벌이가 곧 나아질 거라는 말을 해준다. 엄마에게는 그의 말은 일종의 심리 치료 같은 효과가 있다.     


“오늘은 갈비찜이 맛있어요. 어제 고기가 좋은 게 들어왔거든요.”

“떡볶이 하나 시켜서 둘이 먹어요. 많이도 안 먹으면서 뭘 많이 시키려고 해?”     


그렇게 박수무당을 만나고 온 날이면, 엄마는 손님들에게 더 밝게 대한다. 맛있는 것도 더 챙겨주고, 가게를 나서는 손님에게 밝게 웃으며 다음에 또 오라고 살갑게 말하기도 한다. 누구든, 곧 돈을 잘 벌게 될 거라고 생각하면 더 열심히 일하게 된다. 별 거 아닌 말이지만 엄청난 힘이 되는 말이기도 하다.      


가게를 열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더 이상의 심리 치료는 필요 없게 됐는지 엄마는 한동안 그를 찾지 않았다. 순 뻥만 친다고 나무라기도 했다. 장사가 나아진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실제로 장사가 나아지는 것 같지 않으니, 엄마 입장에서는 그를 찾는 일에 서서히 기운이 빠지기 시작한 것이다.      



“엄마, 왜 신년 운세 안 봐? 나 시집가야 하는데, 가서 좀 물어봐주면 안 돼?”

     

올 초에는 어쩐 일인지 엄마가 신년 운세 볼 생각을 안 하길래 옆구리를 살살 긁었다. 개업한 지 일 년이 지나면서 우리 가게는 마이너스를 면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날 벌어 그날 먹고사는 장사의 특성상, 엄마 손에 쥐어지는 돈은 여전히 없었다. 밥 먹고, 생필품 사고, 세금 내고, 가게 식재료 사느라 통장에 있는 돈을 쓴 것인데, 일단 통장에 돈이 없으니 오늘 장사는 공쳤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이다. 그러니 돈을 아무리 벌어도 마이너스인 것만 같아 불안할 수밖에 없다.     


새해이니 새 마음 새 뜻으로 심기일전해야 하는데, 자기주장 강한 엄마를 말로 설득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또 한 번, 어쩌면 마지막으로 박수무당을 찾은 것이다.      


“이제 힘든 고비 거의 다 넘어왔으니, 두세 달 안으로 빛을 볼 겁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세요.”     


크게 달라진 멘트는 없다. 늘 그렇듯 이야기의 핵심은 곧 잘 될 거니까 조금만 참으라는 것. 그래도 박수무당을 만나고 온 엄마의 표정이 밝다.

      

“올해는 가게가 자리를 잡겠어.”      


(서당 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본인이 박수무당이라도 되는 듯 한마디 툭 던진다. 내가 생각해도 영 틀린 말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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