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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안나 Jun 13. 2017

맨날 왜 그러고 다녀?

갑자기 나타난 삼십 대 중반의 미혼 여성을 시골 마을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안타깝게도 시골로 내려오기 전에는 생각해본 적 없는 문제다. 서울에서 지낼 때야 어엿한 직장이 있었고, 나를 궁금해할 만한 주변 사람도 없었다. 내가 어느 집 누구라는 걸 알고 있는 사람도, 알고 싶은 사람도 없었다. 그저, 지나가는 사람일 뿐이었다. 원룸 주인도 고향 같은 건 묻지 않았으니까.


지나가는 사람에게 인사를 할 필요도 없는 곳에서 지내다 시골 마을에 내려와 지내려니, 처음에는 뒤통수가 따가워 다닐 수가 없었다.


'쟤 누구 아니야?'

'시집은 갔나?'

'누구네 아기를 안고 가는 거야?'


삼십 대 중반 미혼 여성의 갑작스런 등장에 대한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나의 귀로 들어오지 못한 질문들은 마을 사람들의 눈을 타고 뒤통수에 와 꽂혔다. 십 대 때도 졸린 눈으로 말없이 동네를 어슬렁거리던 백수 캐릭터였으니, 나이를 먹었다 한들 말 걸기가 쉬운 건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도, 해도 해도 너무했다. 궁금하면 직접 물어보지. 브레이크 타임에 가게를 비우면, 마을 사람들은 엄마를 찾아와 별 별것을 다 물어댔다.


"엄마 도와주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딸내미는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딸내미 지금 읍내 가는 버스 타던데... 큰 가방 메고 어디 가는 거야?"

"맨날 안고 다니는 아기는 자기 애야, 동생 애야?"

"남자는 있대? 사십 대 중반인가 하는 남자 있는데. 편의점 운영하고."

"어떤 회사 직원이 사원 구한다던데. 노느니 나가서 조금이라도 벌어보라고 하는 게 어때?"


 그냥, 네 하고 넘겨도 될 질문들인데, 유약한 멘탈의 엄마는 일일이 답했다. 더 이상 자세할 수 없을 만큼, 자세히. 뻥도 조금 보태서.


"회사에서 인정도 받고, 돈도 잘 벌고 했나 본데 나 도와준다고 여기 왔어요. 착하지, 뭐."

"남자는 무슨 남자가 있어? 맨날 일만 했지. 괜찮은 사람 있으면 소개해봐요."

"집에서 따로 하는 일 있어요. 서울에서 하던 일 받아서 하고 있어요."

"베트남에 여행 가는 거예요. 여기 그림 그려준 친구랑 둘이."


못난 딸, 시집도 못 가고 시골에 백수로 있다는 얘기 듣기 싫어서, 엄마는 열심히 답했다. 그 덕에 나는 효녀 코스프레 제대로 하고 있고. (이미지 메이킹이 이렇게 대단하다.)  


효녀로 이미지 메이킹을 했지만, 한 일 년 지나니 그것도 서서히 잊혔다. 대낮에 추리닝 바람에 슬리퍼 끌고 어슬렁거리고. 친구들하고 가게에서 밤늦게까지 술 마시고 떠들고, 벌건 얼굴로 치킨도 시켜먹고. 어느 놈 찬지, 가게 앞에서 타고 나가는 차는 매번 바뀌고. 가슴 다 파인 옷에 선글라스 쓰고, 큰 가방까지 메고는 버스 기다리고. 효녀 이미지는 자연스레 지워지고, 십 대 꼴통을 보는 듯한 눈빛이 여기저기서 나를 불렀다.


어느 날, 참다못한 옆집 할머니가 나를 불러 세웠다.


"아이고, 맨날 왜 그러고 다녀? 시집 안 가?"

"내년에 가요."


허허허. 그러게 자꾸 묻지 말랬잖아요. 계획도 없이, 생각 나는 대로 답해버렸다. 그런데, 그 말이라는 게 무섭더라니. 일단 뱉어놓고 보니 다른 사람을 만나도 시집 안 가냐는 질문에 내년에 간다고 답하게 되었다. 신기하게 그들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래, 시집만 가면 되는 거였어.


약간의 양심은 있어서, 뱉어놓은 말을 위해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서울 다시 갈 거 아니니까 일단 여기서 선이라도 보자. 한 달에 한 번이 목표다.


이게 올 초 일이었고, 지금은 유월이고, 올해 세 번의 선을 봤고, 애인은 아직도 없다. 그래도 나름 노력하고 있으니, 포기하긴 이르다. 마을에서 조용히 살고 싶으면 내년엔 시집을 가야 하겠지. 가야만 하겠지. 갈 수 있겠지.


내년이 최대한 늦게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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