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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안나 Jun 20. 2017

회사에 다니지 않기로 하다

"언제 올라올 거야? 그때 거기서 사람 구한다던데."


업계 동료들에게 밥집이 자리 잡을 때까지만 있다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서울을 떠나온 지 어언 6개월. 직장생활을 하며 나름 로망으로 품고 있었던 출판사에서 사람을 구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곳 편집장이 나의 안부를 물었다는 소식도 함께.


정리하고 올라갈까?

밥집에 직원을 구할까?


순간, 욕심이 났다. 가고 싶었다. 밥집에 직원을 쓰고, 완전히 자리 잡을 때까지는 내가 직원 월급을 보조하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밥집에서 내가 하는 일은 홀 청소와 서빙뿐. 엄마 혼자 동분서주, 땀 뻘뻘 흘리며 주방을 지키는 걸 지켜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난 주방에 쉽사리 발을 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라면 하나도 제대로 못 끓이는데, 손님 음식에 손을 댄다고 생각하니 손발이 저절로 오그라들었다. 그렇다면 주방을 보조해줄 직원을 구하는 게 여러모로 이득 아닐까? 끝없는 자기 합리화가 시작됐다. 여기서 무능한 노처녀로 늙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침까지 평안하던 나의 머릿속은 전화 한 통으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뭐든 할 것처럼 단칼에 짐을 싸 시골로 내려온 그 호기로움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엄마, 내가 다니고 싶던 출판사 편집장이 나 찾는대."

"...... 그럼, 올라가봐야겠네?"


시골에 내려가겠다고 말했을 때처럼, 엄마는 별 힘도 들이지 않고 답했다. 하지만, 그 답 속에서 백 퍼센트 긍정의 의미는 읽어내지 못했다. 칼을 뽑았으니 무라도 썰고 떠나고 싶었다. 그래서 일단은 서울에 가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그 일은 내 머릿속에 혼돈의 카오스만 남기고 끝났다.


그 후로도 몇 번의 연락을 받았고, 나는 매번 혼돈의 카오스를 맴돌았고, 끝내 서울행을 택하진 못했다. (나를 능력자로 오해하는 이들이 있을까 봐 미리 말하는데, 능력이 있는 게 아니라 내 연차의 편집자가 귀한 것이다.) 회사에 다니며 쉬는 날 제대로 쉬고 싶었지만, 혼자만의 라이프를 다시 한 번 만끽하고 싶었지만, 월급이 너무나도 받고 싶었지만, 사실 직장생활에 월급 말고 큰 메리트는 없었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은 하고 싶었다. 이젠 돈도 없었다.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일이 하고 싶은데요.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을 주시면 안 될까요?"


어디서 용기가 났는지, 다니던 회사 대표에게 연락을 했다. 시골에 내려와 몇 달 안 돼 대표가 근처에 강의가 있다며 나를 찾아온 적이 있었다. 밤낮없이 소처럼 일하던 직원이 어느 날 갑자기 회사를 박차고 나간 진짜 연유를 슬쩍 물어왔다. 이유? 제가 말한 게 전부인걸요. (내부 고발자가 있었다. 내가 퇴사한 이유가 시골에 계신 부모님을 돕기 위함보다는 대표가 출간 일정을 쪼아댔기 때문이라고 고발을 한 것이다. 헐!!) 그렇다면 자리는 항상 비워놓을 테니 언제든 올라오라는 말을 남기고, 대표는 낯선 소도시에서 술이 떡이 돼 홀연히 사라졌다.


"아, 그럼 이것 좀 해주겠어?"


아주, 준비하고 기다렸다는 듯이 일을 줬다. 그로써 어색한 관계도 정리된 셈이었다. 그렇게 일을 조금씩 받아 밥집 근무 시간을 조절해가며 집에서 일했다. 엄마도 내가 일할 시간을 충분히 확보해주셨다. 말은 안 했지만 내가 밥집에만 있으니 걱정이 많았던 모양이었다. 한창 일할 나이에 시골구석에서 밥집을 지키고 있는 게 안쓰러웠던 것 같았다.


엄마는 밥집 일을 도맡아 도울 사람이 필요했던 게 아닐지도 모른다.

옆에 있어주기만 해도 힘이 되는 사람이 필요했던 것일지도.

나는, 직장생활을 할 때처럼 너무 많은 것들을 해내려고 욕심을 부렸고.


그렇게 밥집 일은 서브 격으로 돕고, 집에서 내 일을 하다 보니 마음도 몸도 한결 건강해진 것 같다. 좋은 제안을 무조건 고사하지도 않는다. 찾아가 이야기를 들어보고, 내 사정을 말한 뒤,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받아와 한다. 교정교열뿐만 아니라 인터뷰를 하거나, 윤문을 하는 일들도 할 수 있는 것들은 해보려고 한다. 매일매일 똑같은 일은 지루하니까. 직장생활을 할 때보다 일도 훨씬 재밌다. 불쑥불쑥 고개를 디밀던 똘끼도 사라졌고.


회사에 다니지 않고도 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 같다. 꼭 서울일 필요도 없다. 내가 필요한 일이라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사무실이 아니어도 된다. 그렇게 나는 2년여가 지나서야 회사 밖으로 완전히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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