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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안나 Jun 24. 2017

언제까지 스트레칭만 해야 하나요?

직장인인 나에게는 몇 가지 연례행사가 있었다. 운동, 인문학 강의 듣기, 독서, 영어 공부, 외쿡 드라마 보기 등. 한 달 단위로 연례행사 스케줄을 소화하다 보면 일 년이 금방 간다. 그러니까 헬스 세 달 끊고 세 번 가기, 인문학 강의 신청해 두어 번 듣기, 영어 교재 사서 열 쪽 풀기... 매달 말만 되면 강박적으로 뭔가 일을 벌였고, 그 일을 실천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한 달을 보냈다. 물론 작심삼일일 뿐인 연례행사였지만.


그러다 시골에 내려오니 연례행사를 시행할 수가 없었다. 학원이 있는 읍내까지 나가려면 버스를 타고 사십여 분. 겨우 생각해낸 것이 인터넷 강의. 그러나 정작 필요한 건 운동이었다. 직장생활을 하며 쌓인 노폐물과 나쁜 지방을 빼내고, 피를 원활하게 돌게 해주어야 했다. 그렇다면 요가다. 요가가 하고 싶다.


어떤 책에서 그랬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도와 그 바람을 이루어준다고. 나의 간절한 마음에 온 우주가 탄복했는지, 마을 부녀회에서 일주일에 두 번, 저녁 시간에 '요가 수업'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소문을 듣게 됐다. 그렇다면 안 갈 이유가 없다. 나를 위해, 온 우주가 도와 요가 수업 프로그램이 있음을 알려왔는데, 안 가면 안 되는 것이다. 허허, 그런데 난 부녀자가 아니다. 부녀자가 아닌데 부녀회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해도 될까?


"아이고, 걱정도 팔자네. 사람도 없는데 그냥 가서 하믄 되지."

"뭐, 누가 호적 검사하는 것도 아니고."


'네. 걱정도 팔자입니다.' 그렇게 마을회관에 찾아가 문의한 끝에 참여하게 된 요가 프로그램. 그런데 이것이 요가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두 다리를 쭉 펴고 앉아 양발 끝 치기, 누워서 다리 번쩍 들고 흔들기, 다리 쫙 벌리고 앉아 골반 운동하기... 저기, 그래서 요가는 언제 할 수 있는 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부녀자도 아닌 주제에 감히 나서서 질문이라니. 입 다물고 시키는 대로 열심히 했다. 언젠가는 요가 자세를 하겠지. 고양이 자세, 코브라 자세, 쟁기 자세, 전갈 자세... 천천히 몸 풀고 나면 이 자세들을 하나씩 다 하겠지.   


"어머님들, 산후조리 제대로 못해서 골반 엉망 되고, 나이 들면 오다리 되고 하는 거, 운동을 안 해서 그래요. 반대로 너무 무리해서 운동하면, 여기저기 다 아프죠? 이렇게 스트레칭 같은 것을 많이 해주는 게 좋아요. 제가 시키는 거 열심히 따라 하시면 좋아질 거예요." "아이고, 이것도 힘들어요. 맨날 연습해야 겨우 따라간다니까. 쉬운 것 좀 알려줘 봐요." (그냥 숨쉬기 운동을 하시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흠, 그렇다면 내가 원하는 요가 자세들은 할 생각이 없다는 건가? 육십 분을 가득 채워 운동을 했는데 왜 땀이 나지 않는 거지? 약간 더워지기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이럴 거면 수업 이름을 '스트레칭 수업'이라고 했어야지. 요가 수업을 들을수록 요가가 하고 싶었다.


요가를 하고 싶다.

이미 요가를 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고

더 적극적으로

요가를 하고 싶다.



그렇게 6개월을 다녔다. 딱히 할 일이 없고, 힘들지도 않아 작심삼일이 6개월이 됐다. 어쩌면, 요가 선생님은 꾸준한 운동을 유도하는 데 천재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여하튼, 우리는 여전히 '요가 수업'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양발 끝 치기라든가, 누워서 다리 털기라든가 하는 것들을 한다. 요가 자세도 한다. 고양이 자세와 아기 자세. 운동이 끝나면 모여서 누군가가 쩌온 감자를 먹기도 하고, 제철 과일을 먹기도 한다. 어색하지만, 배도 고프고 예의 문제도 있으니 벌떡 일어나 가버리진 못한다. 덕분에 몸에서 노폐물과 지방 몰아내기는 실패!  


그래도 노느니 염불 한다고,

오늘도 요가나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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