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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안나 Jul 07. 2017

엄마의 사회생활

엄마는 예순이 넘어 첫 사업을 시작했다. 결혼 전에 잠시 직장생활을 하고, 쉰이 넘어 잠시 아르바이트를 한 것을 제외하면, 사회생활은 거의 전무한 상태. 첫 사업으로 밥집을 선택한 것은 엄청난 도전이었다. 체인이 아닌 일반 밥집을, 집밥을 겨냥한 밥집을 선택한 것은 어찌 보면 무리수였다.


"어서 오세요."

"음... 여기 뭐가 맛있어요?"

"글쎄요."

"밥이 먹고 싶은데."

"저기 메뉴 있어요. 골라보세요."


개업을 하고 처음 몇 개월은 손님만 나타나면 얼음이었다. 나도, 엄마도. 메뉴를 추천해달라는 소리에 나몰라라 주방으로 도망치기 일쑤였다. 안다. 해도 해도 너무했다. 특히나 엄마는 손님과 마주하는 것을 어려워했다. 종갓집 막내딸로 곱디곱게 자라다 시집와, 돈 잘 버는 남편 돈으로 원 없이 살림했던 엄마에게 을이 된다는 일은 쉽지 않았다. 진취적이고 자기주장 강하고 인정 넘치는 엄마였지만, 사회에 나와 갑을, 을을, 병을, 정을 대하는 건 다른 문제였다.


엄마는 늘 정성껏 음식을 해주고 싶어 했고, 바쁠 때 손님이 오면 당황했다. 더불어 표정도 너무 솔직한게라. '저 사람, 바쁜데 왜 왔어?'라고 온몸으로 외쳐대는 걸 보고 있노라면 내가 다 무안했다. 그래도 손님이 밥을 잘 먹는지는 어지간히 궁금한 것 같았다. 손님 입으로 음식이 들어갈 때면 그 반응이 궁금해 주방에서 고개를 빼꼼히 내밀곤 했다. 뭔가를 사고파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엄마는 손님이 내민 밥값을 조금은 미안한 마음으로 받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나의 완벽주의는 엄마를 닮은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 엄마를 보며 완벽할 수 없지만, 끊임없이 완벽을 추구했던 내가, 또 엄마가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다고 내가 엄마의 당혹감을 떨쳐낼 수 있는 방법을 아는 건 아니었다. 완벽주의의 끝엔 폐허가 된 영혼과 나를 갉아먹는 자괴감만 남는다는 것을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뭐라고. 그래도 엄마는 끊임없이 노력했다. 완벽을 위해서가 아니라 손님에게 만족스러운 식사를 대접하기 위해. 생존을 위해 음식을 먹어왔던 엄마가 손님들의 입맛과 먹는다는 것의 즐거움을 이해하기 위해.


늘 바른 길로만 갈 수 있었다면 인생이 지금보다 훨씬 값진 것이 되었을까. 아니, 시행착오 덕분에 모든 이의 인생이 비로소 값진 것이 되는 건 아닐까. 엄마는 자신의 손맛을 믿지 못했다. 요리 프로그램과 요리 블로그를 한참 뒤적인 다음날은 늘 엉뚱한 메뉴를 내놓곤 했다.


"아, 하던 대로 하지."

"별로야?"

"어. 이상해. 조화롭지 않다고 해야 하나?"

"분명히 이렇게 하라고 했는데."


요리는 전혀 모르는 나지만, 그런 엄마를 보며 요리도 하나의 예술이구나 싶었다. 손맛 좋은 엄마의 음식에 소금 조금, 설탕 조금이 더해져 엄청 맛없는 요리가 완성되기도 했다.

 

그래도 엄마는 해냈다. 엄마의 음식들은 하루 이틀 방황하다 신기하게도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래, 이맛이야!"

"그래??? 이거였어?"

"하던 대로 해. 엄마 음식에 대한 답은 엄마가 제일 잘 알 걸."

"그래도 이렇게 해봐야 마음이 편해. 호호호."


동생이나 나에게 시식을 권했는데 반응이 좋으면, 엄마는 안심하고 다시 주방으로 들어간다. 그런 날은 자신감 있게, 정성껏 음식을 한다. 채소 많이, 고기 많이, 양념 많이. 손님들이 밥을 먹고 나가며 "잘 먹었습니다." 하고 인사를 하면, 별 거 아닌데도 엄마는 기분이 좋다. 이렇게 해서 남겠냐고 묻는 손님의 등짝을 치며 "많이 먹어요. 더 있어."라며 한껏 웃는다. 특별한 선물이라도 받은 사람처럼.


사람을 치유할 수 있는 건, 결국 사람이지 않을까. 손님만 만났다 하면 당황하던 엄마는 이제 없다. 갑이고 병이고 내 알 바 아니었다. 어쩌면 지금도 엄마는 손님에게 음식을 판다는 생각 따위 안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따뜻한 밥 한 끼 먹이고 싶은 아들 같고 딸 같은 청년들만 있을 뿐.


그래, 세상이 어찌 갑을병정만으로 돌아가겠는가. 어떤 날은 나도 직장생활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아침부터 사장에게 욕을 한 바가지 얻어먹은 날, 엄마 같은 사람이 밥을 해주는 식당에서 점심 한 끼 든든히 먹고 기분 좋게 오후 근무를 마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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