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1인분도 되나요?"
"넵. 편하신 대로 앉으세요."
길에 사람도 없고 심심도 하여 혼자 맥주 한 병 까다 손님을 맞았다. 저녁 무렵에는 혼자 오는 손님이 많다. 막 퇴근하고 나와 집에 가서 밥 차리긴 귀찮고 대충 때우고 갈까 하는 손님. 문을 열고 들어와 앉지도 않고 두리번거리며 1인분도 되냐고 묻는 손님. 라면이나 된장찌개를 시켜 급하게 먹고 나가는 손님이 있는가 하면, 본격적으로 먹어주겠다는 눈빛을 하며 제육쌈밥을 시키는 손님도 있다.
저녁에 혼자 와 제육쌈밥을 먹는 손님들에게는 비슷한 특징 같은 것이 있다. 일단 자리에 앉아 물을 한 잔 시원하게 마신다. 그러고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제육볶음, 된장찌개, 반찬, 쌈채소, 밥, 수저가 모두 나올 때까지, 말없이, 진지하게. 대부분은 게임을 하거나 축구나 야구를 보는 듯하다. 여하튼, 세팅이 끝나면 화장실에 가 손을 닦거나, 물티슈로 손을 닦는다. 쌈 싸 먹으려면 손 정도는 닦아줘야지.
"여기, 소주 한 병 주세요."
"어떤 걸로 드릴까요?"
"참이슬이요."
대부분은 참이슬. 셋에 하나 정도는 린. 아주 가끔 처음처럼. 소주를 고르는 데 망설임이 없다. 잔과 소주를 가져다주면, 소주를 한 잔 따른 후 쌈을 싼다. '그렇지, 그렇지, 마늘을 넣어야지.' 손님에겐 미안하지만, 주방에 서서 제육쌈밥을 먹으러 온 손님을 관람하며 맥주를 마저 마신다. 한 입 가득, 제육과 채소, 소스의 맛이 퍼진다. 캬!!!
그렇게 첫 입을 먹고 첫 잔을 마시면, 고도의 집중력이 발휘되는 것 같다. 베레베레베레~! 된장찌개 한 입을 떠먹더니 상 위에 음식들을 재배치한다. 된장찌개를 밥그릇 오른쪽으로, 제육과 쌈을 상 가운데로, 자주 먹는 반찬은 된장찌개 앞에. 매우 만족스러운 표정이다. 주방에 엄마와 내가 있다는 걸 잊었더라면 일어나 박수라도 칠 판이다.
나는, 다 마신 맥주병을 치우기 위해 홀로 나가려다 멈춘다. 조용히, 냠냠, 짭짭, 맛있게 먹는데 분위기 깨고 싶지 않다. 고독한 미식가는 멀리 있지 않았다. 느긋하게 자신만의 세계에서 밥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독한 미식가.
"공깃밥 하나만 주세요."
"여기요."
"고기가 많이 남아서..."
"제가 밥을 적게 드렸어요. 반찬도 더 드릴까요?"
"아, 김치 좀 더 주세요."
밥을 더 시키면서 뭐가 민망한지 안 해도 될 소리를 한다. 밥을 더 먹어주면 우리야 고맙지, 뭐. 맛없다고 욕 안 하는 게 어디야. 보는 재미까지 주시는데.
그렇게 두세 번 오다 안면을 트면, 주문을 하며 밥을 두 공기 달라거나, 꽈리고추 반찬을 더 달라거나 한다. 이럴 경우, 먹는 사람도 흐름이 끊기지 않으니 좋고, 주는 사람도 두 번 안 줘도 되니 좋다. 혼자 다니는 손님은 기억해두었다가 미리 알은척을 하기도 한다. 밥을 많이 먹는 손님, 김치를 좋아하는 손님, 쌈채소를 많이 먹는 손님. 그러다 보면, 언제 어색했나 싶게 혼자 와서 밥 먹는 게 편해지는 것 같다.
혼자 밥을 먹는다는 건 제법 즐겁다. 처음 혼자 밥을 먹던 시절엔 대충 한 끼 때우고 말 심산으로 집에서 가까운 분식집에 들어가 제일 빨리 되는 음식을 먹었다. 그러다 뭔가 푸드 파이터 같고, 살려고 먹는 것도 같아서 마음을 조금 바꿨다. 맛있는 걸 먹자. 남들과 같이 있을 땐 남들한테 맞추느라 내 마음대로 주문을 못했으니까. 오늘은 치즈까스 세트에 맥주를 마시자. 생맥주를, 시원하게. 생각만으로도 설렌다. 시내 식당으로 나가면 사람이 너무 많아 혼자 밥을 먹기 민망하지만(4인 테이블에 혼자 앉는 건 역시나 어색하다), 동네에 맛있는 식당에서는 자리나 시간에 신경 쓰지 않고 천천히 밥을 즐길 수 있다.
가족이 없어서, 친구가 없어서 혼자 밥을 먹는 건 아니다. 그게 혼밥족이라는 이름까지 붙여가며 떠들어야 할 사회적 현상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혼자 밥 먹는 일이 우울하고 쓸쓸할 수 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 나를 위한, 오로지 나만을 위한 밥상을 받아본 게 언제였는가.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음미해본 적이 있는가. 나와의 관계를 잘 맺어야 타인과의 관계도 잘 맺을 수 있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과 밥을 먹기에 앞서, 나는 어떻게 밥을 먹는 사람인가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함께하는 사람과의 보다 맛있는 식사를 위해서. (뭐지? 이 공익광고 같은 결말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