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을 시작할 때, 우리에게는 원대한 포부가 있었다.
맞춤 메뉴 예약 주문 가능.
이것이 무엇이냐 하면. 요즘 소고기뭇국이 엄청 먹고 싶은데, 요리해줄 사람이 없다. 물론, 나는 할 줄 모른다. 그런데... 먹고 싶다. 미치도록 먹고 싶다. 이럴 때 우리 식당에 전화를 하면 된다. 요리해줄 사람이 여기에 있다.
식당 같지 않은 식당. 내 집처럼 드나들 수 있는 식당. 돈 안 되고 힘든 것 빼면 괜찮지 않나? 하지만 별 것 없는 인생이 늘 그렇듯 결과는 참패. 우리에게 뭘 먹으면 좋겠느냐고, 메뉴는 이게 다냐고 묻는 손님뿐이었다. 먹고 싶은 음식은 언제든 요청하라고 크게, 아주 크게 메뉴판에도, 명함에도 써넣었는데.
그렇게 2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동태찌개 2인분 주세요."
"동태찌개는 예약 메뉴라 좀 기다리셔야 되는데요."
"아... 그럼 그냥 제육쌈밥 2인분 주세요."
갑자기 몰아닥쳐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손님들의 주문에 밥그릇 들고 서서 울 수도 있을 것 같았던 늦은 점심. 한창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좀 말랐다 싶은데 얼굴까지 하얗게 질려 절로 걱정이 되는 여성 한 분과 적당히 건강한 체구에 약간의 근심이 깃든 남성 한 분이 맥없이 입장했다.
손님 치르느라 고생한 엄마와 나를 위해 설거지를 끝내고 회덮밥을 먹으러 가려고 했는데. 맛있게 회덮밥 먹고 시원한 도서관에 가서 일하려고 했는데. 아쉽지만 손님 없어 울던 날을 생각하며 열심히 상을 차렸다.
그런데 잘 먹는 남성 분과 달리 여성 분은 깨작깨작 된장찌개만 떠먹는다. 그러다 화장실행. 한참을 안 나온다.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저건 백발백중 숙취다, 싶었다. 아이고, 엄청 힘드시겠다. 그런데 남성 분은 남에 속도 모르고 공깃밥까지 추가해 열심히 먹는다.
"그냥 빵 사다 먹을까?"
"그래."
"무슨 빵?"
"크림 들은 거."
"갔다 올게."
우울하게, 터덜터덜 동네 빵집에 가 빵을 사 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여성 분이 식사를 잘 하고 계신다. 식당 공기도 살짝은 가벼워진 것 같다. 화장실에서의 일이 잘 해결되었나 보다. 커피우유에 빨대를 꽂으며 생각했다.
"옆 동네에 이사 온 지 얼마 안 됐대."
"여긴 어떻게 알고 왔대?"
"와이프가 입덧이 심해서 옆 동네 식당부터 하나씩 훑어 여기까지 왔대."
"아이고..."
동생은 일본에서 지낼 때 임신을 했다. 입덧이 심해 아무것도 못 먹고 병원행을 여러 번. 너무 힘들어 심신 3개월 때부터는 한국에 들어와 지냈더랬다. 열심히 밥을 먹는 여성 분을 보니, 그때 생각이 나 안타까웠다.
"입에 맞으니 다행이네."
"그러게."
"그래서 내가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전화하라고 했어."
"잘했네. 우리 처음 목표가 그거였잖아."
"그러게 말이다."
낯선 동네에 적응하며 입덧까지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겠다. 입덧하는 아내 옆에서 남편은 또 얼마나 마음을 졸였겠나.
"정말 잘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전화드릴게요."
아이고, 거래처 직원도 아니고, 애인은 더더욱 아니고. 전화드린다는 말을 이런 데서 이렇게 듣다니. 묘하게 설렌다.
빨리 먹는 밥이 체한다고 했던가. 식당을 처음 시작하면서 맞춤 메뉴 주문이 들어왔으면 정성껏 그럴싸하게 대접하지 못했겠지 싶었다. 식당 같지도 않은 식당. 내 집처럼 맛있는 요리할 사람 없는 식당이 됐을 수도. 에어컨 바람 앞에 앉아 빵을 먹으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음흠. 근데 빵 좀 맛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