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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안나 Jul 28. 2017

모두가 멀리, 높이 날아야만 하는 건 아니잖아요

느지막이 가게에 출근해 아침을 먹으며, 문득 이십여 년 전에 다니던 학원 선생님 생각을 했다. 그녀는 삼십대에 막 들어섰던 것 같았고, 서울에서 대학을 나왔으며, 여행도 좀 즐기던 사람이었다. 그 시대, 그 동네에선 드물게 볕이 뜨거운 날엔 선글라스를 썼고, 한겨울에도 목이 훅 파인 티셔츠를 입고 수업을 하곤 했다.


"나는 어릴 때, 동네에 있는 젊은 언니들을 보면 왜 저러고 있나 싶었어."

"무슨 소리야?"

"도시로 나가면 할 일이 많을 텐데, 왜 여기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나 싶었어."


달큰한 호박찜을 한 입 물고는 엄마에게 한마디 건넸다. 정말 그땐 그랬다. 동네에서 출퇴근하는 젊은 언니들을 마주하면, 안타까운 생각이 먼저 들었다. 저리도 젊고 예쁜데, 왜 도시로 나가지 않고 여기, 이 시골에 있는 거지? 회사랑 집만 오가며 연애도 안 하고 지루하게 지내는 거지?


"걔들이 왜 할 일이 없어? 회사 잘 다니면서 시집만 잘 갔는데."

"그러게. 학원 선생님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정말 자유분방한 사람이었는데. 선생님 집에 놀러 가면 여행 다니면서 찍은 사진도 많고, 대학 다닐 때 찍은 사진도 많았거든. 근데 나 혼자 선생님은 여기서의 생활이 불행하고 답답하겠구나 하고 단정 지었던 것 같아."

"내가 볼 땐 그냥 밝고 재미나게 사는 것 같았는데."

"그치? 지금은 뭐하시려나."


이십여 년 전 시골 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삼십대 초반의 여성은, 지금 무엇이 되어 있을까? 문득 궁금했다. 막상 내가 이십여 년 전 그 여성의 입장이 되고 보니, 지나가는 나를 보고 이 동네 학생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궁금했다. 화장도 안 한 얼굴에 더벅머리로 냉장고 바지를 입고 삼디다스 슬리퍼로 바쁘게 뛰어다니는, 실없는 아줌마라고 생각하겠지?


시골 동네에 사는 젊은 여성을 보며 이런저런 상상을 했던 사춘기 소녀는, 이십여 년 후 그 여성들과 비슷한 삶을 살게 됐다. 막상 그녀들의 입장이 되고 나니, 어릴 적 단순했던 나의 상상이 미안해진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삶을 산다. 억대 연봉을 받는다고 모두가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고, 서울에 산다고 모두가 화려한 것도 아니다. 이십여 년 전에는 그걸 알지 못했다.


"중학교 때 서울 가서 살고 싶고 그랬어?"

"아니. 난 시골로 전학 온 게 오히려 좋았지. 날라리, 일진 그런 것도 없고. 애들이 엄청 순수했어."

"근데 왜 그런 생각을 했어? 시골에 젊은 여성이 사는 게 이상한 건가?"

"글쎄. 그냥 답답해 보였어. 뭔가 더 많은 일을 해볼 수 있는 가능성 같은 것들을 차단당한 것 같은 얼굴 같았다고 해야 하나?"

"그 사람들은 그렇게 사는 게 만족스러웠을 수도 있는데?"


그러게. 그들은 그렇게 사는 삶을 스스로 택했을 텐데. 나 혼자, 뭘 걱정한 걸까? 시골에서 적당한 직장에 나가며 개인의 삶에 더 많은 것을 투자하는 삶을 왜 답답하다고 느꼈던 것일까? 정해진 시간에만 근무를 하고, 근무를 마치면 플루트를 배우고, 주말이면 짐을 챙겨 자기 차로 운전해 여행을 떠나던 그 여성들에게 어떤 답답함을 억지로 찾으려 했던 건 아닐까?


어릴 적 나는 어쩌면 원대한 꿈을 품고 서울로, 해외로 나가는 어른의 삶을 동경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있는 곳에서 잘 살아보고자 하는 건, 현실에 안주하는 지루한 삶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어린 나는 시골에서 평화로운 시절을 보낼지언정, 어른이 된 나는 이곳을 떠나 어딘가로 나의 삶을 찾아가야만 한다는 로망이 있었던 것도 같다. <갈매기의 꿈>에 나오는 조나단처럼, 높이 멀리 나는 것만이 의미 있는 인생이라고 생각했는지도.


조나단처럼 높이, 멀리 날기 위해 도시로 떠난 소녀는, 십여 년을 버둥거린 후에야 높이, 멀리 날기를 포기한다. 아니 높이, 멀리 나는 목적을 다시 정립한다. 나는 직업인으로서의 성공과 돈을 위해 높이, 멀리 날고 싶어했다. 그런데 그건 다른 누군가의 가치일 뿐, 나의 가치가 될 수는 없었다. 조나단처럼 더 자유로워지기 위해 높이, 멀리 날고 싶었던 게 나의 진짜 마음이었다. 오랜 시간을 다른 이의 가치를 위해 높이, 멀리 날기 위해 어깨에 힘을 줬지만, 그렇게 해서는 결코 높이 날 수 없었다. 공포스럽고 지치기만 할 뿐.


그렇다. 어깨에 힘을 빼고, 모든 것을 놓았을 때 비로소 높이, 멀리 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내 삶을, 내 시간을 조금은 멀리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아침 상을 치우며, 어릴 적 동네에 있던 젊은 언니들은 내가 이제야 알게 된 이 사실을 누구보다 먼저 깨달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퍼득 들었다.


그러니까, 이거슨 어느 누구도 지나가는 누군가의 삶을 제단 할 자격은 없다는 그저그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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