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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안나 Jul 31. 2017

다시 가까워질 수 있을까?

친밀하다는 건 무엇일까?

사람과 사람이 어느 정도까지 가까워질 수 있을까?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친밀한 관계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대가족 사이에서 허물없이 지내는 게 불편했고, 단짝 같은 것을 요구하는 친구가 있으면 조용히 밀어냈다. 타인을 향한 불타는 사랑 같은 건 미지의 영역이었고, 친밀해지기 위해 겪어야 하는 과정이 힘들어 연애가 애매하게 끝나버린 적도 있다. (뭐, 거의 대부분 그렇다. 연애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것들이다. ;;;)     


그래도 가장 친밀한 사람, 가까운 사람이라고 하면 엄마 정도? 엄마는 평생에 걸친 나의 만행을 별 불만 없이 넘겨준 사람이다. 그렇게 친밀한 사람과 장사를 함께하기로 결심했을 때, 이를 통해 우리의 관계가 어그러질 수도 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주변에서 온갖 사례들을 대며 걱정을 해도, 티브이에 나온 사업가가 동업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지적해도 그저 남에 얘기였다.       


엄마는 늘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니까.

내 얘기라면 무조건 오케이 해주는 사람이니까.


남들이 걱정을 하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남에 말을 무조건 따를 필요는 없지만, 참고할 필요는 있다. 엄마와 나는 가게 문을 열고 난 후로 엄청나게 부딪혔다. 직장생활을 하며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데 신물이 난 나는, 엄마 옆에서도 그걸 그대로 반복했다. 정녕,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 건가.      


“이걸 이렇게 두면 보기 안 좋잖아.”

“고무장갑을 끼고 홀에 나가면 어떻게 해?”

“뜨거운 걸 들고 그렇게 들어오면 안 되지.”     



나의 지적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엄마가 숨만 쉬어도 지적을 할 판이었다. 장사를 하며 만난 엄마는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니었다. 친밀하고 인자한 사람은 없었다. 음식 조리에 신경이 곤두서 말을 해도 잘 듣지 못하는 사람, 손님의 주문을 제대로 듣지 못해 실수를 하는 사람, 매일 팔이 아프다고 하는 사람만 있었다.     


엄마 입장에서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같이 여행 다니며 수다 떨고, 상사의 잘못에 고민하는 친구 같은 딸은 이제 없었다. 미친개처럼 하루 종일 뭔지도 모를 소리를 짖어대는 괴물만 하나 있었다.     


그렇게 엄마와 나의 관계는 점점 악화되었다.      


“엄마랑 싸우는 거 너무 힘들어.”

“엄마랑 왜 싸워?”

“내가 뭘 지적하면 엄마는 화만 내. 개선의 여지가 없어.”

“개선?”

“여기도 직장인데, 집에서 생활하는 거랑은 다르잖아.”

“엄마가 얘기하면 알았습니다, 하면 끝나잖아. 엄마랑 싸운다는 말 자체가 난 좀 이해가 안 가는데.”     


나보다 훨씬 더 먼저 부모님과 장사를 했던 친구에게 하소연했다가 본전도 못 찾았다. 조선시대 유교사상 운운하며, 함께 장사를 하는 사람으로서의 대등한 관계를 갖고 싶다고 투덜댔다.


그렇게 일 년을 보냈다. 숨 막히는 일 년을. 그러다 어느 날, 친구의 말이 무슨 의미였는지 알게 되었다.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는 친구 커플을 보며 깨달음을 얻었다. 누구 한 사람이 지지 않으면,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지 않으면 친밀한 관계나 가까운 관계는 불가능하다.      


연애의 역사를 제대로 쓰지 못했던 이유는 거기에 있었다. 상대와 부딪히는 시간을 많이 가짐으로써,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도 있게 되는 건데. 지금 여기서 내가 백기를 든다고, 그 관계에서 패자가 되는 것도 아닌데. 나는 그게 귀찮고 두려워서 매번 도망쳤던 것이다.     


엄마는 사십여 년 살림을 해오며 터득한 엄마의 룰이 있었다. 내가 보기에 비합리적이고, 답답해도, 엄마는 그 룰 안에서 충분히 좋은 아내였고, 좋은 엄마였다. 어쩌면 나는 사회적으로 평등한 관계나 합리적인 작업방식을 핑계로, 평생에 걸쳐 조금씩 공들여 쌓아온 엄마의 가치와 생활방식을 송두리째 흔들었는지도 모른다. 엄마는 그 자체로 충분한 사람인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대며 엄마의 인격을 헤집었는지도.     


아이고, 나쁜 년.      


나는 내가 본 적 없었던 엄마의 모습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엄마의 가치와 생활방식을 존중하기로 했다. 고작해야 삼십여 년 살아온 주제에, 온갖 풍파를 겪으며 육십여 년을 살아온 사람에게 말이 많았다.      


그렇게 우리는 엄마와 딸의 관계를 넘어선, 다른 어떤 관계를 맺었다. 전보다 더 친밀하고, 가깝지는 않지만, 상대를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해줄 수 있는 관계랄까. 그렇다고 엄마를 향한 지적을 그만둔 건 아니다. 마음가짐이 달라져 말투가 조금 정중해졌을 뿐.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래도, 이제는 좀 더 어른스러운 연애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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