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라고 신나게 쏘다니다 감기에 걸렸다. 거래처에서는 계속 전화가 오는데, 나의 집중력은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몸은 아프다는데 생각 없는 두뇌가 날 이끌고 소주를 마시러 나가, 병원 약까지 먹어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약을 먹으려면 밥을 먹어야 하는데... 있는 밥에 반찬 꺼내기가 귀찮아 라면을 끓인다.
혼자 살 때는 아프면 다 귀찮아 회사에 안 가고 누워 있곤 했다. 자주 아프지 않아 다행이었지만, 병원도 안 가고 종일 집에 누워 빈둥거리다 보면 이게 사는 건가 싶었다. 밥도 할 줄 몰라 죽을 두 그릇씩 배달시켜 쌓아두고 먹었다. 생수뿐인 냉장고 열기도 귀찮아 머리맡에 커다란 생수 병을 두고 꼼짝도 안 했다. 할 줄 아는 것도 없지만.
시골집에 내려와 지내다 보니, 조용히 아프기도 힘들다. 때 되면 밥 먹으라고 채근하는 엄마, 이모의 감기 바이러스를 두려워하지 않는 조카, 무더위에 시시때때로 에어컨을 켜대는 아빠, 아들내미 맡기고 친구 만나러 가는 동생. 뭐 그들이 나쁘다는 건 아니고, 그냥 내 상황이 아프기에 녹록친 않다는 소리다.
그래도 그들 덕에 따뜻한 밥도 먹고, 약도 먹고, 서늘한 소파에 누워 있으니 혼자 살 때보다 낫긴 하다. 조카가 공격해오지 않는다면 가만히 누워 조카가 노는 걸 구경할 수도 있다.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 쓰는 귀여운 조카. "아 유 이팅?"을 "아 유 먹팅?"이라고 말하는 귀여운 조카.
"쟤 오늘 울면서 똥 쌌어."
"때렸어?"
"아니, 변기에 앉기 싫다고 참다가 그랬어."
"서서 싸다가 앉아서 싸려면 힘들겠지."
"그러게. 그래서 기저귀 떼면 변비 걸리고 그러나 봐."
그렇지. 생각해보면 나도 처음부터 변기에 앉아 큰일을 봤던 건 아니었다. 나도, 너도, 우리 모두 변기에 앉아 큰일을 보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했을 것이다. 그뿐이겠는가. 앉기, 뒤집기, 걷기, 뛰기, 말하기, 노래하기, 대화하기, 유치원 가기, 길 건너기 등 우리는 어려서부터 수많은 것들에 도전했고 성공을 거두어왔다. 내가 비록 밥도 할 줄 모르고, 자전거도 탈 줄 모르고, 수영도 못하고, 운전도 못하고, 영어도 못하지만, 나는 많은 것들에 도전한 끝에 내가 된 것이다.
아프면 센치해진다더니. 소파에 누운 나는 나의 모든 행적을 더듬으며 나를 기특해하기에 이른다. 아파서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나를 그렇게 위로한다. 거래처 전화는 그러니까 그거슨, 에라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나는 나를 많이 괴롭힌다. 자기 전에 몇 시간씩 뒤척이며 하루 일을 반성하던 열 살 때 그걸 알았다. 그때부터 매일 밤, 단순하고 쿨하게 살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투 하나, 행동 하나까지 반성하느라 잠 못 이루는 일은 없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종교도 없으면서.
그렇게 이십여 년에 걸쳐 매일 밤 기도를 하니 껍데기는 얼추 쿨하고 단순하긴 하다. 그런데 이게 일을 하거나, 어떤 미션이 주어졌거나 했을 때는 또 한 없이 소심하고 예민해진다.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둥, 난 왜 이것밖에 못하냐는 둥. 뭐, 네가 천재나 영재라도 되는 줄 알았냐?
그런 나에게 조카의 탄생부터 성장 과정을 볼 수 있다는 건 대단한 공부인 것 같다. 지금의 내가, 아무것도 할 줄 모르면서 밥만 축낸 식충이 같다고 생각하는 내가, 실은 저 많은 성장 과정을 거치기 위해 노력해왔다. 나의 성장 과정을 나는 몰라도 내 주변의 어른들은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를 괴롭힐 이유 따윈 없다. 아프면 일을 못하는 게 당연한 거다. 내가 나약해서 그런 게 아니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던 꼬꼬마 베이비가 이 정도만 해도 잘하는 건데, 너무 욕심을 부렸다.
토닥토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