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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안나 Aug 09. 2017

친구가 필요해!

'오늘 저녁 참치 콜?'

'콜! 무조건 콜!'     


동네 친구들 단톡방에 글이 올라왔다. 참치라니, 콜이지, 무조건 콜이야. 도시라면 인도 음식이나 태국 음식을 먹거나, 양식을 먹거나, 패밀리 레스토랑이나 뷔페에 가겠지만, 지방 소도시에서 건전하게 먹고 마시기란 쉽지 않다.      


지역색 때문인지, 친구 색 때문인지, 나이 색(?) 때문인지 동네 친구 중 대부분은 자영업을 한다. 먹고살 만큼은 벌지만, 수입이 일정하지 않고, 까먹을 땐 대차게 까먹는다.      


'오늘 일이 너무 힘들었어. ;;;'

'그럼 마셔야지.'

'아, 술 끊어야 하는데.'

'개가 X을 끊지.'

'ㅋㅋㅋㅋㅋ'     


자영업을 하다 보니 힘든 일도, 기쁜 일도 고스란히 본인만의 몫이 된다. 누구를 탓할 것도 없고, 분풀이할 것도 없다. 그나마 다행인 건 자영업을 하는 친구들이 주변에 있다는 것. 기쁜 날이나 슬픈 날, 동네 친구들은 우리끼리 회식을 한다. 회사 상사도, 직장 동료도, 거래처 직원도 없는 회식. 누가 어떤 하소연을 해도 백 퍼센트 이해할 수 없지만, 그런대로 나쁘지 않은 회식.     


일은 각기 다르지만, 술을 마시는 이유는 대부분 비슷하다. 받기로 한 돈을 못 받는다거나, 엄청난 돈이 들어갈 일이 생긴다거나, 돈이 잘 벌리지 않을 때. 속물 같지만 자영업자에게 돈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수단이다. 들고 나는 돈에 일희일비하는 삶을 살다 보면, 거의 모든 가치는 돈으로 매길 수밖에 없다. 그러다 돈 때문에 쩔쩔매는 자신이 싫어지면, 친구들을 불러서 신나게 돈을 쓴다. 그래 봤자 소주 열댓 병에 남들 다 먹는 안주지만.       


운이 좋으면 날씨 덕에 술을 마시기도 한다. 친구들 대부분은 뱃일이나 서비스업을 한다. 비가 오거나 겨울에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러면 대낮부터 모인다. 얜 뭐하나, 쟨 뭐하나, 이리저리 들려보던 친구가 점심을 먹으며 술판을 벌인다. (물론, 그게 내가 되는 일도 있다.) 낮술은 어미, 아비도 못 알아본다기에, 많이 마시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날씨 탓인지 저녁 여덟 시까지 멀쩡하게 남아 있는 친구는 없다.      


가끔은 날이 좋아서 마시기도 한다. 점심까지 대충 일을 끝내고 바닷가에 모여 맥주를 마신다. 오해 없길. 그래 봤자 한 캔이다.      


새벽부터 일하는 친구들이 있어서 밤늦도록 마시지 못하니, 대부분은 열두 시가 넘기 전에 집에 간다. 모난 친구들은 애초에 떨어져나간지라, 그렇게 맨날 만나 술 마시고 놀아도 별일 없다. 그냥, 모여서 낄낄거리다 집에 가는 게 다다. 그래서인지 대리기사님들이 우리 전화는 참 반갑게 받으신다. 괜히 대리기사님께 미안한 마음이 들어 대리비를 엄청 드리는 친구가 있는 건 안 비밀.      


우리도 가끔 정신이 돌아올 때면, 좀 더 건강한 취미를 가져보자며 한참을 이야기한다. 이걸 할까, 저걸 할까, 이건 이래서 별로고, 저건 저래서 별로다. 에잇, 그냥 살던 대로 살자. 마셔!!! 그렇다. 우리는 사실 노는 법을 모른다.


안타깝게도 친구들에겐 취미랄 것이 없다. 그래도 예전엔 모두 취미 하나 정도는 있었는데. 한 친구는 낚시를 열심히 했지만, 갑자기 빚더미에 앉게 되면서 장비를 다 처분하고 낚시를 접었다. 한 친구는 부모님과 싸운 후 홧김에 집 밖에도 안 나오고 게임만 하다, 몇 개월 만에 산신령이 돼서 나타나기도 했다. 또 한 친구는 오토바이를 좋아했지만, 애를 둘 낳으면서 와이프 눈치를 보다 팔았다.          


그렇게 이십 대 때 취미는 저 멀리 가버렸다. 우리의 젊음처럼, 조용히, 머얼리. 다행인 것은 요즘 친구들이 게임에 흥미를 붙였다는 거다. 예전처럼 미친 듯이 하지는 않지만, 게임을 위해 컴퓨터부터 바꾸는 걸 보면 어지간히 좋긴 한가 보다.     


이십 대였으면, 그게 뭐라고 비전도 없는 걸 하냐며 다그쳤겠지만, 지금은 다행이다 싶다. 강퍅한 인생에 기쁨이 있다는 게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술을 마시고 취해 잠들지 않아도 웃을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맨날 게임이나 하고, 술이나 마시며 낄낄거리고 싶지만, 자영업자는 그렇게 한가할 수 없다.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그 무엇도 바뀌지 않으니까.


자영업으로 살아가는 친구들이 가끔은 안타까워 눙물이 앞을 가리지만, 그래도 난 이 친구들이 좋다.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 줄 알며, 가족을 책임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아는 친구들, 밤 잠 못 이루며 돈을 벌지만, 어려운 친구에게는 선뜻 손을 내밀 줄 아는 친구들, 끊임없이 인생과 맞서는 친구들이 멋지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도 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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