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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안나 Apr 19. 2017

누가 뭐래도 서울 사람

25일.

월급날이다.

한 달 내내 아등바등하던 나에게

약간의 위로주와 맛있는 음식을 권하는 날.      


점심을 먹고 나른해질 시간이 되면, 저녁 메뉴를 고민한다. 정확히는 안주되시겠다. 피시앤칩스, 참치타다끼, 가지튀김, 삼겹살……. 오늘은 비가 오니 삼겹살에 소주가 좋겠다. 금요일 밤이니 저녁을 먹고 클럽에 가도 좋겠다. 괜찮은 인디밴드 공연이 있으려나.      


대개 술자리는 요즘 핫하다는 곳에서 시작해 노래방으로, 음악이 괜찮은 바로 이어진다. 흥이 나면 문 닫은 바에 남아 사장님과 술을 거덜내기도 한다. 해가 뜰 때까지, 월급을 다 써버릴 것처럼.     


밤새 놀다 집에 돌아와 옷도 못 벗고 잠든 날은 눈이 일찍 떠진다. 화장을 지우고 이를 닦고 냉장고를 연다. 냉장고에 있는 건 새벽에 사 온 탄산수 두 병과 지난 주말에 사다둔 생식두부 한 팩. 따뜻한 엄마 밥이 먹고 싶지만 시골집에 가긴 좀 귀찮다. 딱히 해장이 필요할 정도로 마신 것도 아니니 잠시 빈둥거리다 맥도널드에 전화를 한다.      


“아메리카노 한 잔이랑 치즈버거 두 개요.”     


혼자 살지만 일인분을 배달해달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음식은 따끈할 때 먹어야 제맛이지만, 저녁까지 해결할 요량으로 이인분을 시킨다. 맥딜리버리에서 배달된 따끈한 아메리카노와 치즈버거를 먹으며 일하느라 미뤄둔 TV 프로그램을 볼 수 있으니, 그보다 달콤한 주말 계획은 없다.      


십여 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며 얻은 것은 적지 않다. 학벌이 후달려서, 자존감이 낮아서 고민하던 이십대의 나는 이제 없다. 가진 것 없이 무식한 나였지만 맨땅에 헤딩을 반복하다 보니, 직장생활을 하며 무서울 일도, 해결하지 못할 일도 이제는 없다. 다만 두려운 것이 있다면 내가 한 일에 내가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 언제나 나의 의견이나 내가 고친 글은 나도 모르게 의심하고 만다는 것.      


그렇다. 부족할 게 없는 날들이다. 언제고 아무 때고 연락할 수 있는 친구, 나만의 논리로 반박하며 나설 수 있는 저자의 글, 내 말이라면 무조건 신뢰하는 후배, 나와의 소통을 누구보다도 원하는 거래처 직원. 인간관계마저도 외로울 틈이 없다.     


그럼에도 월급날이면, 좀 더 솔직히 말해서 일주일에 두세 번씩 맛있는 음식과 술을 찾고 싶은 날이면, 나의 이력에 의구심이 들곤 한다. 과연…… 나는…… 나의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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