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치웠나?"
"어. 점심 뭐 먹지?"
"너무 더우니까 입맛도 없네."
"그러게. 커피나 마시러 갈까?"
식당 주방의 여름은 상상 이상으로 덥다. 홀에 에어컨을 두 개씩 틀어도, 점심 장사를 하고 나면 땀으로 온몸이 끈적인다. 그럴 땐 밥보다 커피다. 차를 타고 5분 정도 나가야 하지만, 바닷가가 보이는 카페에서 에어컨 바람 맞으며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하다 보면, 언제 땀이 났나 싶게 뽀송해진다.
"음... 커피는 아메리카노지."
"그게 뭐가 맛있어?"
"시원하잖아."
"그래도 난 믹스 커피가 제일 맛있더라."
"믹스도 마실 만하지. 근데 아메리카노는 그거랑은 또 달라."
아포가토를 시킨 엄마는 아이스크림과 함께 나온 에스프레소를 나에게 밀어주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매번 비싼 아포가토 시켜놓고 바닐라 아이스크림만 먹는 엄마가 난 더 이해할 수 없는데.
서울에서 지낼 땐, 밤이고 낮이고 생각날 때마다 아메리카노를 마실 수 있었는데. 집에서 배달도 시켜 마셨는데. 시골에서 지내니 아메리카노 한 번 마시는 것도 큰 결심이 필요하다. 정말 더운 날이나 기분이 안 좋은 날, 그래서 나에게 상을 주고 싶을 때 아메리카노를 마시러 간다. (아메리카노 이야기를 하니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싶다. 너무나.)
"우리 가게 커피는 맛이 없어?"
"아니."
"근데 왜 맨날 여기 와서 마셔?"
"글쎄. 나와서 마셔야 마신 것 같아."
"돈 쓰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우리 식당에도 원두와 드리퍼, 더치커피 내리는 기계가 있는데도, 매일 아메리카노를 마시는데도, 왜 밖에 나가서 아메리카노를 마셔야 맛이 나는 걸까. 누군가의 말처럼 커피는 맛으로 마시는 게 아니라 분위기로 마시는 거라 그런가. 카페 안팎을 둘러보며 빨대로 쪽 빨아 마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오늘따라 유독 맛있다.
"가끔 기계로 내린 커피가 마시고 싶어."
"드립커피나 더치커피가 더 순수한 맛이 나는데?"
"웃기지? 기계로 진하게 내린 커피는 한 잔만 마셔도 커피를 마셨구나 하는 느낌이 들거든. 근데 드립이나 더치는 여러 잔 마셔도 속에서 이제 커피 그만 하는 소리가 안 들려."
"뭔 말인지 모르겠네."
"그러게. 나도 모르겠네."
밖에서 마시는 커피가 맛있는 이유에 대해 생각하다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그냥 커피가 아니라 기계로 내린 커피가 생각날 때도 있다고. 제법 그럴듯한 결론이다.
원 재료의 맛이 제대로 나는, 자연 친화적인 음식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그렇다고 과자를 안 좋아하는 건 아니다. 단맛을 싫어하지만 초콜릿은 좋아한다. 그런 맥락에서 드립이나 더치 커피를 좋아하지만, 기계로 내린 커피를 싫어하는 건 아니다. 나름의 균형 잡힌 입맛이라고나 할까.
여하튼 카페에서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고 있노라면, 시골생활의 답답함이라든가 더위라든가 막막한 미래라든가 하는 것들은 다 사라져버린다. 오롯이 나와 커피와 풍경과 음악만이 남는다. 전투력이 완전히 사라진 온순한 나만 남는다.
"다 먹었어?"
"응."
"그럼 빨리 가자."
"좀 있다 가지, 왜?"
"배고파. 밥 먹어야지."
그런데 웃긴 건 커피를 다 마시면 카페를 나가야만 할 것 같은 압박감이 든다는 것이다. 이런 나를 두고 친구들은 가족과 외식 나온 아버지 같다고 했지, 아마. 용건 끝났으면 빨리빨리 일어나야지 언제까지 앉아 있을 셈이야. 여유 부리며 음악을 듣던 나에게 마음이 말한다. 예, 예, 일어납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