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 엄마 또래 아주머니들은 참 열심히 일한다. 해뜨기 전부터 달이 뜰 때까지, 쉬지 않고 일한다. 기본적으로 농어촌이니 농사를 짓거나 굴을 캐거나 하는 일을 한다. 능력이 좀 더 있다면 옆 동네 큰 회사에 청소나 빨래 등을 하러 다닌다. 원룸 청소 같은 알바를 하기도 한다. 이에 만족하지 않는 분들은 자격증을 따 요양보호사나 조리사 등으로 나서기도 한다. 동네에 쉬는 아주머니를 여간해서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OO이, 병원에 입원했대."
"왜?"
"회사에 출근하다가 교통사고 났대."
"회사? 그 아주머니 식당 하시잖아."
"그건 밤에만 하니까, 낮에는 회사에 알바하러 다녔거든."
"아이고, 많이 다치시진 않았대? 아주머니도 참 어지간하다."
식당을 하는 아주머니들도 예외는 없다. 밤에 장사를 하시는 분들은 낮에 알바를 다닌다. 엄마와 앞집 식당 아줌마는 2주 전에 브레이크 타임을 이용해 원룸 청소 알바를 나갔다가 심한 몸살을 앓았다. (엄마는 링거까지 맞았다.)
동네 아주머니들은 왜들 열심히 일하는 걸까? 돈이 없어서? 아니, 차도 있고 집도 있다. 자식이 속 썩여서? 아니, 다들 지 앞가림은 하고 산다. 그럼 왜, 어찌하여 자신의 몸을 혹사시켜가면서까지 일하는 것일까?
"저녁에 장사하는 것도 힘들 텐데 낮엔 쉬시지."
"장사가 잘 안되니까 그랬나 봐."
"컨디션 관리 못해서 사고 나면 더 큰 손핸데."
"뭐 그럴 줄 알았겠어?"
"건강해야 돈도 벌고 돈도 쓰지."
엄마는 전업주부였다. 내가 스무 살 때까지니까 한 이십여 년을 전업주부로 산 셈이다. 아저씨 셋 하숙 친 걸 빼면 알바도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내가 스무 살이 되던 해에 아빠가 해외로 일하러 가고, 내가 대학을 가면서 독립을 하게 되자, 동생과 둘만 남은 엄마는 심심한 마음과 불안한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낮이면 동네 사람들은 다 일하러 가고, 집에는 아무도 없고, 열심히 청소하고 밥을 해도 동생과 둘이 밥을 먹으니 보람도 약간은 줄었을 것이다. 그 무렵 엄마가 처음으로 진지하게 말했다.
"나 초등학교에 알바 갈까 봐."
"무슨 알바?"
"급식실."
"거긴 왜 갑자기?"
"동네에서 나만 놀고 있는 것 같애. 다들 열심히 사는데."
그렇다.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온 동네 사람이 지나치게 열심히 일을 하니, 집에서 살림만 하던 엄마는 상대적으로 자신이 무가치한 인간은 아닌지 의심이 들었을 것이다. 이러한 논리로 동네 대부분의 아주머니들이 사시사철, 불철주야 일을 하시는 것이리라.
"안나 씨, 요즘 많이 바빠요?"
"네... 뭐..."
"아르바이트 하나 있는데. 일곱 시 출근, 일곱 시 퇴근이고, 월 삼백. 이 개월만 일하는 거예요."
"아... 근데 저는 가게가."
"뭐, 엄청 바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몇 달은 괜찮지 않을까?"
"가게 말고도 프리랜서로 진행하는 일이 있어서요."
"그렇구나. 일 있을 때 하면 좋을 텐데. 그래요, 그럼."
동네 부동산 아저씨의 알바 제안을 거절하자, 그는 아쉬움 섞인 뒷모습만 남기고 가게를 나갔다. 분명히 나는 일을 하고 있는데. 가게 일에 내 일로 머리가 터지기 직전인데. 그래도 일이 있으면 사양 말고 해야 하는 건가? 솔직히 월 삼백이라는 말에 혹 하긴 했지만, 나는 내가 가야 할 내 길이 있는데.
열심히 일하는 것 자체를 부정하진 않는다. 그러나 나는 내가 왜 일하는지, 어떤 일을 할 때 즐거운지 정도는 알고 하고 싶다. 돈이 많아서 나쁠 건 없으니까, 노느니 염불 한다고 일이 있을 때 하는 게 좋으니까 하는 일은 나의 삶을 크게 풍요롭게 하진 못하는 것 같다. 일을 하고 돈을 버는 것만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돈을 위해서, 일을 위해서 일을 하고 돈을 벌면, 그 돈은 그 일로 인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별 거 아닌 데 써버리고 만다. (안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다는 얘기다.)
열심히 일하는 동네 아주머니들 또한 부정할 생각은 없다. 열심히 돈 벌어서, 여행도 가고, 딸내미 비싼 냄비도 사주고, 손주들 유모차도 사주고, 맛있는 회도 먹으러 다니는 삶을 부정할 이유는 없다. 그녀들만의 즐거운 여생을 위해, 몸을 조금 더 아꼈으면 하는 바람만 가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