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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안나 Sep 14. 2017

돌아온 탕자

"안나 씨, 잘 있었어?"

"어? 언제 오셨어요? 다른 데 계시다고 들었는데..."


손님의 살짝 굽은 등이 어쩐지 낯익더라니. 십여 년 전 근처 회사에 계약직으로 근무할 때 옆자리에 앉았던 직원이 식당에 왔다. 전문대를 졸업하고 진로를 정하지 못해 빈둥거리던 때, 여행을 위해 돈벌이가 필요해 들어갔던 직장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 이 년여를 근무했더랬다. 이 년여를 옆자리에 앉아 지낸 이의 뒷모습을 십 년이 넘도록 기억하고 있는 걸 보면 그 시간이 짧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다시 왔어. 안나 씨 여기 있다길래 와봤지."

"오~ OOO 과장님께 들으셨어요?"

"어. 시집은 안 갔다면서? 진짜 하나도 안 변했다."

"에이... 그짓말은..."


부끄럽지만 대학교를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해본 적이 없다. 집에 돈이 많다거나 공부를 특출 나게 잘해서는 아니었다. 사회성이 부족했다, 상상 이상으로, 많이. 식당에 하루 나가고 울며 포기하고, 약국에 하루 나가고 울며 포기한 이후로는 아르바이트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대학교만 졸업하면 근사한 글쟁이가 될 거라고 생각했던 신입생 시절의 나는, 2학년이 되면서 여러 가지 이유로 (아니, 사실은 별 이유 없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인간이 되었다. 술만 마시면 "나는 술 마시는 착한 천사"라고, "그렇지 않고서는 인생이 이렇게 힘들 리 없다"고 헛소리를 하기 일쑤였고, 교수가 추천해준 지역신문사 면접 자리에 나가 술이 덜 깨 쾡한 얼굴로 넋 놓고 앉아 있기도 했다.


그렇게 대학교를 졸업하고 시골로 돌아와 삼십여 군데에 이력서를 냈다. 딱히 하고 싶은 일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집에서 놀 수만은 없었다. 세무서가 뭔지, 방문교사가 뭔지도 모르고 그냥 닥치는 대로 이력서를 썼다. 몇 군데 면접도 봤다. 하지만, 글 쓰는 전공은 일반 회사에서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사회로의 발길을 접고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집 근처에는 화력발전소가 하나 있었다. 발전소에서는 지역 주민을 계약직으로 뽑기도 했다. 종일 집에만 있다 밤이면 맥주를 사러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동네 개발위원장인가 하는 양반이 날 발전소에 취직시켜줬다.


사회성이 부족해 아르바이트도 제대로 해보지 못한 내가 큰 회사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았다. 하도업체의 문서들을 받아서 총무팀에 전달하고, 우편물을 정리해 전달하는 업무가 전부인데도 너무나 숨이 막혀 저녁마다 울었다. 거의 일 년을, 밥을 먹어가면서. 그래도 여기서 포기하면 정말 사회로 못 나갈 것 같아 아침이면 출근을 했다. 나를 극복하기 위해서.


그렇게 일 년을 다니니 좋은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조직이라는 곳의 생리를 이해하지 못한 채, 벗어나고만 싶었던 나는 이미 잊힌 지 오래였다. 함께 맛집을 찾아다니며 술도 마시고, 지독히도 싫어하던 등산도 했다. 여행을 간다고 했을 때는 나를 딸처럼 여겨주던 직원들이 용돈까지 모아주었다.


"여긴 아주 온 거야?"

"그런 것 같아요."

"하던 일은?"

"집에서 해요. 여긴 식사 때만 나와서 돕고."

"아이고, 다 컸네. 효도도 할 줄 알고."

"다 크긴... 이제 늙고 있고만."


옆자리 직원과 처음부터 사이가 좋았던 건 아니었다. 그 나름의 사정으로 예민한 구석이 있었고, 내가 계약직으로 대충 시간이나 때우다 가려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였는지 쉽게 곁을 내주지 않았다. 그런데 정이란 게 무섭더라니. 회사에서의 큰 일을 몇 번 함께하고 나니, 저절로 친한 사이가 되었다. 숙취에 쩔쩔매는 나를 몇 번이나 조퇴시키고 집까지 바래다주기도 했으니, 껄껄.


옆자리 직원이 조금 더 마음이 쓰이는 이유가 따로 있긴 하다. 와이프가 오랜 기간 암투병을 했고, 내가 퇴사한 이후 돌아가셨다고 건너 건너 들었다. 그러고 옆자리 직원은 다른 지사로 발령이 나 그곳에 근무하며 술로 나날을 보냈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러던 그가 조금은 수척해졌지만 건강한 얼굴로 나를 찾아와 밝게 웃어주니 눈물이 날 것도 같았다. 그의 조금 굽은 등을 다시 볼 수 있어 기쁘기까지 했다.


"또 올게. 잘 있어."

"따로 봐야죠?"

"흐흐. 그래, 또 보자."


차에 올라타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어쩌면 그도 나도 '돌아온 탕자'가 아닐까 생각했다. 많은 일을 겪으며 늙고 상처받고 힘도 조금 빠졌지만, 이렇게 다시 돌아와 십 년 전의 얼굴을 한 것처럼 함께 웃으며 인사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돌아온 탕자'는 그래서 행복하게 살았던가. 행복하지 않으면 어떠랴. 돌아올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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