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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안나 Apr 28. 2017

결전의 순간은 불현듯 온다

회의가 끝나고 옥상에 올라가 숨을 돌렸다.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더 이상은 못해먹겠어. 나 내려갈래.”

“…….”

“밥집이나 할까?”

“그래. 둘이 하면 밥이야 굶겠냐?”

“어???”     


한동안 시골 동네에서 자그마한 밥집을 운영해보고 싶다던 엄마의 말이 기억났을 뿐 뭔가를 기대하고 전화한 건 아니다. 다만, 딸이 회사를 그만두고 시골에 내려가 엄마와 밥집을 차려 일하는 건 어떻게 생각하는지 교양 있는 효녀처럼 차근차근 상의하고 싶었다. 우리는 해외에 나가 일하던 아빠의 빈자리를 서로 메워주며 사이좋게 지내던, 비밀 없는 모녀 사이였다. 회사에 엄마 같은 상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있었다. 가족끼리 동업하다 싸움 났다는 이야기는 먼 나라 이야기였다. 그래도 이런 식으로 밥벌이를 결정하는 건 좀 성급한 것 같은데.     


화가 나 대충 내뱉은 말에 엄마가 오케이를 해버렸으니 이를 어쩌나 싶었지만, 어쩌긴 어째. 그 길로 사무실에 내려가 상사에게 퇴직 의사를 밝혔다. 상사는 며칠 생각해보고 다시 이야기하자며 타이른다. 고생 다 해서 이제 브랜드 이미지 잘 만들어놨는데 그만두면 서로 손해지 않느냐며. 그러나 그건 상사의 생각. 자주 만나던 동종업계 친구들에게 저녁에 보자는 연락을 한다. 오늘은 노래방에 갈 일도, 대로변을 달릴 일도, 술에 취해 엉엉 울어버릴 일도 없을 것이다. 내친김에 원룸 주인에게도 전화해 방을 빼고 싶다고 말한다. 그야말로 속전속결. 마치 내 삶은 이렇게 흘러가도록 내정돼 있다는 듯이.      


“나……. 회사 그만두고 내려갈 거야.”     


매월 같은 날 따박따박 통장에 꽂히는 월급이, 흥청망청 먹고 마시며 주변 사람 신경 쓰지 않는 도시 생활이 발목을 잡지만, 어쩐 일인지 입은 여기저기에 쉴 새 없이 나불거린다. 시골에 내려가 엄마와 밥집을 차려 한가로이 사람 구경이나 하며 살 계획이다. 지긋지긋한 출퇴근도 마감 압박도 없는 세상에서 따뜻한 엄마 밥 먹으며 혼자만의 시간을 많이 가질 것이다. 장사가 엄청 잘 되면 책이나 하나 써버릴까, 농담처럼 말한다.       


친구들과 한참을 떠들다 술에 취한 채 집에 돌아와 베란다로 나갔다. 서울의 야경을 본다. 딱히 목이 마르거나 술이 더 마시고 싶은 건 아니지만, 신파 드라마의 주인공이나 되는 듯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벌컥벌컥 마신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성공을 꿈꾸진 않았지만, 시골에 내려가겠다고 결정하고 나니 사막에 홀로 남은 패잔병이 된 것만 같아 씁쓸하다.      


이대로 서울을, 직장생활을 끝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저 밑바닥에서 둥둥 떠다닌다. 과연 나는 시골에서의 생활을 견뎌낼 수 있을까. 내가 원하던 삶이, 이 지구를 겉돌 듯 둥둥 떠다니던 내 두 발이 시골에 내려가면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쉬이 잠이 오지 않아 맥주 한 캔을 더 땄다. 그래서 나는, 오늘 불쑥 내지른 내 말을 어떻게 수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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