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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안나 May 02. 2017

내 가게는 내 손으로 꾸미겠어요

평일에는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주말에는 시골 생활을 준비하는 나날이다. 막상 정리하려고 드니, 십여 년의 생활이 무색할 정도로 정리할 것이 없다. 회사에서 진행하던 일의 일부를 시골집에 내려가 마무리하기로 한 정도. 원룸은 예상보다 빨리 나가주지 않아 일단 두고 내려가기로 한다. 시골집에 원룸이 구해지면 짐만 빼도록 하자.      


주말에는 집에 내려가 집에서 걸어 다닐 수 있을 거리에 밥집을 알아본다. 엄마가 평일에 밥집을 봐 두면 주말에 내려가 확인한다. 정화조가 제대로 들어가 있지 않아서, 너무 낡아서, 너무 어두워서 등등의 이유로 마음에 드는 밥집을 찾기 어렵다. 그렇게 몇 주를 고심하다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40만 원인 밥집을 계약했다. 권리금은 1000만 원. 3년 된 건물이라 깨끗했고, 주차 공간도 넓었다. 버스가 정류하는 곳이라 자리도 나쁘지 않다. 홀 크기도 20석 정도로 적당하다. 빚은 너무나 싫지만, 모아둔 돈도 다 떨어진 터라 보증금과 권리금은 대출받기로 한다.      


멋스러운 밥집을 만들고 싶지만, 자본금이 없는 상태에서 인테리어 업체에 돈을 주며 일을 부탁할 순 없다. 페인트 칠만 엄마 아는 분에게 부탁드렸고, 나머지는 우리가 알아서 꾸미기로 한다. 고맙게도 같은 회사에서 일하던 디자이너가 발 벗고 나서 줬다. 디자이너는 몇 날 며칠 밤을 작업해 숲 속에서 아이들이 맛있는 음식을 먹는 그림으로 밥집 전체를 밝고 생기 넘치게 만들어주었다.   

   

“뭐 그리나 봐?”

“네.”

“거기 그린 거 파는 거야?”

“네, 식당이에요.”      



디자이너가 밥집 앞에 그림을 그리던 중이었다. 어느 집에서 밥을 먹고 나와 담배를 피우던 아저씨 둘이 우리에게 다가와 말을 건다. 봄이지만 꽤 덥다 싶어 짧은 바지에 속옷이 비치는 티셔츠를 아무 생각 없이 걸치고 나간 차였다. 그림을 지켜보며 아저씨들의 질문에 별생각 없이 대답하다 돌아보니 눈빛들이 아주 별로다. 이 동네에서 운영되는 밥집에서는 젊은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젊은 여자는 더더욱. 그런 동네에서 옷차림을 신경 쓰지 못한 나에게 조금 짜증이 난다. 아저씨들에게 바로 쏘아붙이고 싶다. 하지만 장사를 하려면, 개업 전부터 분란을 만들 필요는 없다. 책 좀 만들던 시절에는 성희롱이니 페미니즘이니 하는 것들을 들먹이며 술 취한 아저씨들을 쥐 잡듯 잡은 적도 있었지만, 이제 그런 건 다 남에 나라 얘기다.   

  

밥집을 꾸미는 일은 계속된다. 가게 분위기에 맞춰 사야 할 것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인터넷을 뒤지고 또 뒤져서 한 세트에 십여만 원 하는 식탁과 의자를 산다. 밝은 빛깔의 나무 재질로 골랐다. 그릇도 일반 식당에서 쓰는 멜라민 소재는 싫다. 읍내 대형마트에 가 집에서 쓰는 그릇들 중 제일 싸고 단순한 디자인의 그릇들을 고른다. 서울 도매시장에 가 고르는 게 좋겠지만, 주말에 시골에 와 이런저런 일을 처리해야 하는 나에게 서울 도매시장을 헤매고 다닐 여유는 없다. 밥 한 끼를 대접해도 조금은 집에서 먹는 느낌을 내고 싶다. 그릇도 없이 봉투째 뜯어 후루룩 먹어버리는 한 끼에는 질릴 만큼 질렸으니까.      


가게 입구 쪽에 기다란 선반이 하나 있으니 여기서는 커피를 내려주는 것도 좋겠다. 엄마에게는 바리스타 자격증이 있다. 가게에서 커피도 팔아보고 싶다고 엄마는 말했다. 작년에 커피 박람회에 가서 열심히 사재꼈던 커피 도구들도 집에 그대로 있다. 그렇다면 밖에서 보면 제일 잘 보이는 이곳을 커피 만드는 곳으로 세팅하자. 길 가던 사람들이 커피 내리는 향기에, 드립 커피를 만드는 모습에 잠시 머뭇거리게 될 것이다.     


페인트 냄새나는 밥집에 앉아 채워지지 않은 공간들을 본다. 밥집을 열겠다고 결심한 후, 시장조사도 없이 메뉴에 대한 고민도 없이 이렇게 개업 준비를 해도 되는 건가 하는 걱정이 불현듯 스친다. 음식은 엄마 담당이기에 메뉴 선정을 부탁했다. 여기저기 조언을 구하던 엄마는 북어칼국수, 비빔국수, 콩국수, 콩나물 북엇국, 소고기김밥, 드립커피, 팥빙수를 메뉴로 내걸겠다고 한다. “이유? 글쎄……. 이 동네에는 그런 것들이 없으니까.”, “다른 아줌마들이 이런 것들을 팔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으니까.” 뭐 그렇다면 나도 이의를 제기할 생각은 없다. 두서없고 아닌 것 같긴 하지만, 엄마 음식은 무조건 맛있으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분명 그럴듯한 요리로 온 동네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할 것이다.     


헬게이트가 열리는 줄도 모르고

얼씨구, 절씨구, 어절씨구.     

 

(이제와 말이지만 이때가 제일 설레고 즐거웠다는 건 엄마에게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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