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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안나 May 06. 2017

개업부터 하고 보자

2015년 6월 13일.

큰 우여곡절 없이 개업일이 되었다.    

  

엄마가 주방장을, 동생이 주방 보조를, 나와 제부가 홀 서빙을 맡았다. 일본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일하다 한국에 온 제부에게는 약간의 휴식기가 필요했다. 주방이 익숙하지 않은 엄마에게는 음식점 알바의 달인인 동생이 필요했다. 우리는 설레는 마음으로 아침 일찍 나와 재료를 준비하고, 잔돈을 준비했다.      


“팥빙수는 너희가 만들어봐.”     


맙!소!사! 내 귀를 의심했다. 하지만 엄마의 표정엔 변화가 없다. 오늘이 개업일인데, 오늘 첫 출근한 홀 직원들에게 팥빙수를 만들라고 하시다니요. 빙수기로 얼음 내리는 법도 모른다고요. 그 길로 동네 마트에 가 얼음과 우유를 사 왔다. 엄마에게도 일말의 준비성이라는 게 있는지, 삼십만 원짜리 빙수기가 음료 코너에 놓여 있었다. 냉장고에는 국내산 팥을 사다 삶아둔 것과 방앗간에서 빻아온 콩가루도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할까.   

  

퇴사 전, 팥빙수 전문점에서 먹어본 팥빙수 맛을 복기해본다. 우유를 살짝 얼린다. 얼음은 눈꽃 결정체가 보일 정도로 곱게 갈아 우유와 섞는다. 이때 우유의 양을 훨씬 더 많이 해야 고소하고 맛있다. 이 둘이 준비됐다면 그릇에 보기 좋게 담은 뒤, 콩가루를 뿌리고 삶은 팥을 잔뜩 얻는다. 어려울 것 같지 않다.     


하지만 막상 그렇게 만들어 먹어 보니, 우유의 양이 턱 없이 부족하다. 팥빙수 한 그릇에 우유 한 팩은 족히 들어가야 할 것 같다. 얼음도 눈꽃 결정체는커녕 조각칼로 큰 얼음덩이를 깨부순 것 같다. 우유와 닿으면 금방 녹아버리고 만다. 팥빙수의 모든 재료를 섞으니 죽이 돼버리고 말았다. 큰일이다. 오늘은 팔지 말고 연구를 더 해보자.     


그렇게 결정을 하고 밥집 문을 열었다. 첫 손님은 나의 초등학교 동창들이다. 서울 살며 가끔 만나던 동창들에게 시골에 가기 전날 밤 연락을 했더랬다. 엄마와 동네에서 밥집을 하게 됐다고. 시간 되면 놀러 오라고. 찾아와 준 동창들이 눈물 나게 고마웠지만, 첫 손님치고는 인원이 너무 많다. 이 녀석들 예고도 없이 가족까지 대동하고 나타났다. 다 합쳐 열 명은 족히 되는 것 같다. 없는 정신에 물과 개업 떡을 내주고는 주문을 받는다. 북어칼국수, 콩국수, 소고기김밥, 팥빙수……. 온갖 메뉴를 다 시켜댄다. 울고 싶지만 태연해야 한다. 당황한 건 나뿐이 아니었다.      


“북어칼국수 셋, 콩국수 하나, 소고기김밥 셋, 팥빙수 하나.”     


주문 메뉴를 전달받은 주방은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하다. 주방에서 우리 넷은 한참을 허둥댔다. 엄마는 면 대신 손을 삶을 것만 같았고, 돌돌 말은 김밥은 돌돌 말리지 않고 자꾸 풀어졌다. 그 와중에 제부와 나는 갈 곳을 잃고 쟁반을 든 채 엄마와 동생 뒤만 졸졸 따라다녔다. 실제로 조리 시간이 얼마나 걸렸는지는 모르겠으나, 홀 직원 입장에서는 수천 년이 흐른 것만 같이 긴 시간이었다.   

   

손님 상에 올라온 메뉴가 가관도 아니다. 북어칼국수 면은 상에 올라가지도 않았는데 북어 육수를 다 마셔버렸다. 시험 삼아 내놓은 팥빙수는 수저로 몇 번 휘저으니 팥우유가 되고 말았다. 여러 재료가 들어간 소고기김밥도 심심하니 간이 맞지 않는다. 최악은, 주문한 메뉴를 다 내주지도 못한 채 손님들의 식사가 끝난 것이다. 첫 손님이 떠난 자리에 깨끗이 비워진 그릇은 하나도 없었다. 상을 치우지도 못한 채, 친구들이 건네주고 간 돈봉투만 만지작거렸다. 엄청난 좌절감과 부끄러움에 정신이 번쩍 났다. 음식 꽤나 한다는 사람이 밥집을 열면 그런대로 장사가 될 것이라는 생각은 문을 열자마자 무너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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