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안나 Jan 07. 2018

제비집은 부수는 거 아니야

제비들이 아침마다 짹짹거리며 바쁘게 나뭇가지를 나르더니, 이틀 후 현관 조명등 위에 엉성한 제비집이 생겼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니 제비집 밖으로 나온 아기 제비들의  부리가 보인다. 아기 제비 두 마리. 엄마 제비는 바쁘게 뭔가를 물어다 나른다. 배고픈 아기 제비들에게 밥을 날라다 주는 모양이다. 사람이나 제비나 엄마는 피곤하다.


아기 제비들의 목소리가 제법 커졌다 싶어지니 현관 바닥에 제비 똥이 자꾸 생긴다. 잠이 덜 깬 아침에, 술이 덜 깬 밤에 제비 똥을 밟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기분 별로다.


"제비집 부수면 안 돼?"

"어."

"왜? 현관에 맨날 똥 싸는데 식구들 밟고 넘어지면?"  

"제비들이 얼마나 영리한데. 집 부수면 너 혼날 수도 있어."


제비집을 부쉈다 제비 부리에 머리를 쪼인 동네 아줌마 이야기를 듣고 나니, 제비 똥 까짓 거 밟고 말지 싶다. 안 그래도 제비집 짓던 첫날 아빠가 조명등 위에 쌓인 나뭇가지들을 털어 치웠는데, 다음날 나뭇가지가 더 많이 쌓여 있더란다.


"제비도 새끼가 있는데 집 짓고 살아야지. 그냥 둬."


그렇지. 제비도 살아야지. 새끼도 있는데 어느 세월에 집을 또 짓겠어. 우리집에 들어와 살겠다는 것도 아니고, 내 손은 닿지도 않는 조명등 위에 지은 집인데 내 알 바 아니지. 똥은 아빠가 열심히 치워주니까.


그렇게 무심히 여름이 왔고, 아기 제비들이 제법 날기 시작했다. 제비들이 얼마나 건강한지 현관에 제비 똥은 아빠가 매일 치워도 또 있었다. 어떤 날은 제비들을 올려다보며 건강한지, 좁은 데서 살만 한지 묻기도 했다. 답은 듣지 못했지만 살 만하니 조용하겠지.


한여름이 지난 어느 날, 가게에서 돌아오는 길에 제비집을 올려다봤는데 제비가 없다. 가만 생각해보니 며칠 전부터 제비 소리가 안 들린 것도 같다.


"강남으로 갔나 봐."

"언제?"

"며칠 됐어. 잠깐 어디 간 줄 알았는데 안 오네."


제비 가족은 떠났지만, 혹시나 싶어 제비집은 부수지 못했다. 한겨울이 올 때까지.


또 봄이 왔다. 짹짹 소리가 난다. 제비 두 마리가 어디서 소문을 들었는지, 작년에 그 놈들인지, 현관 조명등 위에 또 제비집을 짓는다. 어허, 그런데 작년 그 집보다 훨씬 더 엉성하다. 이불도 없는데 집에 들어가면 바람이 숭숭 들어오겠다. 그렇다고 내가 대신 집을 지어줄 수도 없으니 열심히 구경만 한다.


"아빠 올해도 제비 똥 치워야겠네?"

"그러게."

"근데 어째 집 짓는 기술이 작년만 못하네."

"아직 짓는 중이니까 그렇겠지."


그렇게 엉성한 제비집이 완성됐다. 이번엔 하나, 둘, 셋. 아기 제비가 세 마리다. 집 짓는 기술로 보아하니 작년 그 녀석들은 아닌 것 같다. 그렇게 있는 듯 없는 듯 제비들은 우리집 현관에 둥지를 틀었다.


"엄마, 제비 못 봤어?"

"이사 갔어."

"갑자기 왜?"

"아기 제비가 집에서 떨어졌어."

"에? 그래서 다른 아기들 데리고 이사 갔어?"

"엊그제 두 마리. 그제 한 마리. 다 떨어졌어."


세상에. 귀여운 입 벌려 밥 달라고 울부짖던 녀석들이 셋 다 떨어졌다고? 부모가 튼튼하고 넓은 집을 짓지 못해 아기 제비들이 떨어진 모양이라고, 아기 제비들이 다 죽어나간 집에서 부모 제비라고 살 수 있었겠느냐고, 엄마는 말했다. 애초에 조명등 위에 아기 제비 세 마리는 무리였다고.


올해도 제비 똥을 열심히 치워보겠다고, 제비들이 건강하게 지내다 강남으로 갈 수 있도록 집을 부수지 않겠다고 결심했건만, 이제 제비는 없다. 어느 제비 가족의 슬픈 사연 하나만 텅 빈 제비집 안에 남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루프탑을 원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