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지라는 허상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by 배철수철수

자유 의지야말로 뭇 사람들을 끊임없이 괴롭혀온 가장 교묘하고 악랄한 방식의 착각일 것입니다. 신앙생활에 늘 과학적 접근법과 그에 따른 타당한 결론들을 기대하는 신도들은 늘 이 구간에서 모순과 의심에 부딪히고 맙니다. 심한 경우 해결되지 않는 불안감에 지쳐 배교를 선언하기도 하지요.

.

정말 착각은, 이것입니다. 우리에겐 선택의 자유가 없습니다. 더 정확히 말해서 우리 인생에 선택지라고 여겨지는(또는 불려지는) 모든 것들은 허상이요 착각일 뿐입니다. 단 하나의 예외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시인할 자유뿐이죠. 이 자비가 자칫 모순으로 보일 수 있는 여러 신앙적 찬미들을 이해시킵니다.(정해진 길 안에서 가장 자유하다는 류의 고백을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하지만 이조차도 제가 말하려는 정확한 의미의 '선택'은 아닙니다.)

인간은 태어나서부터 제약 속에 살아갑니다. 잘 살펴본다면, 모든 것이 강제적이죠. 선택하지 않은 생명, 선택하지 않은 유전자(種), 선택하지 않은 국가와 시대, 선택하지 않은 자연법칙. 열거를 통해 눈치 채셨겠지만 우리가 나고 자란 이 세계엔 애초부터 '자유'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자유 의지라는 허상만은 굳게 믿는가? 이것이 문제의 핵심입니다. 우리가 선택을 자유롭게 '결정'한다고 생각케끔 만드는 요인은 결정에 따른 결과의 성공 여부 ㅡ'성공'이라 함은 지극히 인간중심적 가치이며 주관적이니 예측과 결과가 일치하는지의 여부가 보다 정확한 의미이겠으나 '선택에 인간 가치를 개입하여 옳고 그름의 문제로 끌고 가는 것'에 대한 주목을 위해 굳이 이 단어를 택했습니다ㅡ 입니다. 즉, 인간은 예측, 시도, 확인을 통해 '선택의 자유 여부'를 확신합니다. 그리고 당연히 이 방식은 최소 두 번 이상의 시도를 전제로 합니다.(단 한 번만 가능한 시도엔 예외가 없으니까요. 표본이 하나뿐인 실험결과는 사전적 의미에서 말 그대로 진리가 되어버립니다.) 여러 번의 예측, 시도, 확인 끝에 명제는 절대성을 가진 것과 그렇지 않은 것(선택의 자유가 있는 것)으로 나뉩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우리는 중력이라는 자연법칙을 믿습니다. 여러 번의 예측, 시도, 확인(지구 세상엔 이를 확인할 무수한 사례가 있습니다.) 끝에 받쳐주는 것이 없는 한, 발 아래 방향으로는 모든 물체가 떨어진다는 것을 믿게 된 것이죠. 이제 중력은 절대성을 가진, 선택의 자유가 없는 섭리로 확인되었습니다.

거스를 수 없는 이 절대성 안에서도 우리는 '자유 의지'라는 교묘한 착각을 찾습니다. 비결은 논점을 비틀어버리는 것입니다.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면" 죽음을 면할 수 없겠지만 "낭떠러지에서 떨어질지 말지" 결정할 자유는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 예시입니다. 절대성을 거부할 수는 없지만 그 절대성을 따를지 선택할 자유는 있다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어째서 그런 사고가 가능합니까? 우리의 '선택' 자체는 시간을 되돌리지 않는 한, '예측, 시도, 확인'이라는 구조를 단 한 번만 적용할 수 있기 때문에 표본이 하나뿐인 실험이 되어버려 그 자체로 예외를 허용치 않는 절대적인 속성을 띄게 될 텐데요. 한 마디로 우리의 선택 또한 중력과 같이 예외 없는 절대적 자연법칙이란 말입니다. 선택에 자유가 있다고 믿는 것은 중력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다고 믿는 바와 다름없습니다.

여기서 또 하나의 교활한 비결이 발휘됩니다. 표본이 하나뿐인 실험에 가짜 표본들을 여럿 끼워 넣는 것이죠. 분명 선택의 기회는 단 한 번이며 따라서 인생은 단 하나여야 할 테지만 인간의 놀라운 상상력은 '만약'이라는 허상을 도입해 선택하지 못한 시도까지 현실화시켜 표본 안에 넣어버립니다. 절대적 섭리 영역이어야 할 인생을 손익을 기준 삼아 '옳고 그른 문제'라는 판단의 영역으로 격하시킨 것이죠. 그 자체로 진리인 인생에 옳고 그름이란 없습니다. 인생은 그저 인생입니다.

눈치채셨겠지만 사실 '인생'에서 '선택'이라는 단어는 이제 모순입니다. 말하자면 인생은, 갈래 없이 뻗어있는 단 하나의 길입니다.

.

자 이제 지루한 얘기의 막바지에 다다랐습니다. 제가 가장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주 예수를 구주로 시인하는 것만이 세상 유일한 자유이다". 우리 인생은 주가 선물하신 단 하나의 진리입니다. 만약이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에 '우리 인간의' 성취나 패배는 한 가지도 없습니다. 단 하나, 예수를 내 구주로 시인하는 것을 제외한다면요. 자비로운 하나님은 이 논리를 이해하고 신앙을 고백한 인간에게 '교만'이 아닌 '감사'를 주십니다. 하나님을 주로 고백한 인생마저도 내가 이룬 것이 아닌 절대적인 섭리 안에 속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죠.

나의 인생은 모두 당신의 것이라고 고백할 때 그분은 당신의 모든 섭리 또한 주십니다. 등가 교환 법칙으로는 타당치 못하지만 사랑의 법칙에선 가능합니다. 나는 이제 작은 하나님, 그분의 아들입니다. 나의 삶은 모두 아버지 것이며 아버지가 만든 세상과 계획은 모두 내 것이 됩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역설은 이제 현실이 됐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멜로가 체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