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상 같은 금요일 아침 다섯시 이십분쯤 일어나 전날 머리맡에 두었던 물 한컵을 마시고 샤워를 한다. 순서도 늘 같다. 이를 닦고 머리를 감은 후 마지막으로 세수를 한다. 중학생 무렵부터 정착한 나의 샤워 루틴이다.
얼마 전 면허를 딴 영미가 차를 태워 아이들 등원을 하기에 주머니에 챙길 것은 무선 이어폰과 핸드폰뿐이다. 다만 어제밤 읽다 만 소설(오랜만의 소설이다. 영미가 사둔 덕에 간만에 신앙서적, 심리학, 철학책이 아닌 책을 읽어본다)을 옆구리에 끼고 집을 나선다. 뜨거운 물로 몸을 데운 후 열기가 가시기 전에 패딩으로 보온하여 나와 맞는 찬 공기는 익숙해질법 한데도 여전히 즐겁다. 몸은 뜨거운 증기로 움직이는 스팀펑크 만화속 기계이고 머리는 열기를 빼내는 굴뚝같다는 상상을 해본다. 한두번 해본 상상은 아닌데, 어쩌면 익숙하여 즐거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똑같은 인상으로 맞은 무수한 찬 공기들의 기억을 스쳐보내며 조금 빠른 발걸음으로 탁탁탁 걷는다. 며칠 전 살얼음에 골로 갈뻔한 경험이 있기에 가로등 빛에 비춘 길바닥을 예리하게 살피면서도 걸음의 템포를 유지하며 무사히 출근길을 마친다.
여느때와 같다. 한시간정도 손님을 맞으며 남은 책을 마저 읽었다. 일곱시보다 여덟시에 더 가까울때쯤 물류가 왔고 나는 이어폰을 귀에 꽂아 유튜브에서 여호수아를 튼다. 듣는 성경은 나에게 참 잘 맞는 방식이다. 민수기즈음부터 흥미가 떨어진 성경이지만 하고싶은것만 하며 살다가 얼마나 많은 매타작을 맞았는지를 떠올리며 반정도는 억지로 성경을 듣는다. 수동적으로 성경을 들으며 물류를 정리하는 아침을 수, 목, 금마다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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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는 더원 화이트를 사러 온 남자와 거의 동시에 매장으로 들어왔다. 두 사람은 곧바로 카운터로 직행했기에 나는 잠시 누구를 먼저 응대해야하는지 고민했다.
화장실이 어디냐고 묻는건지도 모르겠는, 뭉개진걸 마저 뭉개놓은듯한 발음으로 선수를 친 질문에 나는 약간 안심하며 건성으로 대답했고, 순서를 뺏긴 남자의 더원 화이트 주문을 뒤이어 받았는데, 그는 꽤 놀란 눈치였다. 동그란 안경 속의 동그란 눈을 더 동그랗게 뜬 그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여자가 나가는 것을 지켜보았고 곧 본인도 담배를 챙겨 나갔다. 언뜻 창밖으로 본 그는 여자를 따라가지 않고 자기 갈 길을 갔다.
다시 온 그 여자는 소주 한병과 바나나킥, 그리고 얼음컵을 카운터에 올려놨다. 이번에도 어눌하고 뭉개진 말로 뭐라뭐라 하는데 굳이 귀찮게 해석하고싶지 않았다. 카드 대신 현금을 내미는 취객의 존재는 성경을 들으며 물류 정리를 하다가 급하게 카운터로 뛰어온 내겐 이미 꽤나 짜증났기 때문이다. 계산을 마친 그녀는 애써 오물오물 컨트롤하는듯 보이는 입술로, 그러나 여전히 뭉개진 발음으로 묻는다. 밖에 깔린 테이블에서 먹고 가도 되냐고. 나는 잘 치우고 가시라고만 답했다. 원래는 안되는줄로 알고있긴 한데, 실랑이하기 귀찮기도 하고 그 여자가 덧붙인 한마디가 내 어딘가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제가 이상하게 보이죠. 속으로 생각했다. 더 이상한 새끼들 많아요... 정말로 그렇다. 서울에도 여전히 커닝시티같은 동네가 많고, 나는 그 던전같은 마을의 간이 상점 주인 NPC같은 모양으로 몇년을 근무했었다. 그곳엔 당신같은 잡몹보다 훨씬 버거운 몬스터들이 많답니다. 그러나 잠시 고민해보니 정말 이 여자같은 사람은 처음이었다. 어떤 번민인지는 몰라도, 최소한 제정신보단 나을듯 해 술로 몸과 머리를 절여 흐르는 시간의 고통을 느끼는 감각 기관을 잠시 절제하려는듯한 시도를 보인 여러 취객들도 그 여자와 같진 않았다. 보통은 성내거나, 상대를 얕잡아보려 한다든지, 강해지고싶다는 욕망을 술에 빌어 실현시키는 행동을 보이는데 반해 이 여자는 한없이 약해보였다. 일부러 약한 자신을 즐기는거같기도 하다. (여타 진상 광인들과 달리 정상적인 착장과 외모에 내가 굳이 의미부여를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살짝 주름이 잡혀 젊음의 끝물이 비치는 외모에 더 마음이 동했는지도 모른다.)
자기연민. 거대하고 잔인한 세상에 자신을 더 부풀림으로서 대항하기보단 차라리 납작 엎드려 선처를 구해보는, 목숨만이라도 살려달라고 빌어보는 모습이 짜증났다. 차라리 진상짓을 하지. 기분이 더러워졌다. 훈수를 두고싶었다. 처량한 척 하지 말라고. 실제로 처량하더라도 즐기지는 말라고. 그건 나약하고 비겁한 놈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못해도 서른 중반은 돼보이는 얼굴에 정상적인 옷차림으로 그러고 있으면 누가 불쌍히 여겨주기나 할거같냐고. 그래 맞다, 딱하고 안쓰럽게 보이는데 보호해주고싶은 마음은 안든다고. 목줄과 옷이 아직 헤지지 않은 주인 잃은 개를 길에서 본 느낌 이상은 없다고. 어디 가서 개장수한테 잡히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생각하며 제 갈길 가는 세상 사람 태반이니. 그러니 제발 알아서 잘 좀 해보시라고. 추운날 편의점 야외 테이블에서 얼음컵에 소주나 부어 마시면서 스스로를 불쌍히 여기지좀 말고...
오만가지 훈계거리가 내 머리에 떠돌아다녔고 곧 그것들이 내 것이었다는 사실에 한껏 오만하게 부풀었던 무언가를 다시 꺼트렸다. 요즘 늘 떠오르는 표현이 있다. 레 미제라블. 빅토르 위고는 왜 그런 표현을 썼을까? 그는 특정한 인간들을 동정하고 가엾게 여겼을까? 아랫것들 쳐다보듯이? 길가던 행인이 주인 잃은 개를 바라보듯이?
나는 기껏해야 어린이용으로 새로 엮어낸 명작집 소설 한편으로밖에 안읽어서 잘 모르겠지만 추측컨대 그는 전 인류를 향해 말했을거다. 전 인류에게 이렇게 말해주고싶었던거 아닐까? 우리는 참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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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살아보고싶다. 오랜만에 쓴 일기다. 잘 살아보자.
하나님 사랑 나를 사랑,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
하나님 사랑 나를 사랑
나를 사랑 이웃사랑
이웃사랑 하나님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