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를 걷다 남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얼마 전 나는 백수가 되었다.
성격에 맞지 않는 공공기관을 꾹 참고 다니다가 딱 일 년이 된 후, 남편에게도 말을 안 하고 사표를 쓰고 나왔다. 남편에게는 뭐 변호사는 어디든 갈 수 있으니 걱정 말라고 큰 소리를 쳤지만, 내심 ‘이제 뭐 해 먹나..’ 하는 걱정이 되긴 했다.
그날은 내가 공공기관에 사표를 던지고, 정확히 2주가 지난 때였다. 여기저기에 이력서를 넣고 있었고, 남편도 그날은 회사에 가기 싫다고 연차를 내고 나와 함께 영등포 쪽을 어슬렁거리며 산책을 하고 있었다.
“나 잠시 전화 좀..”
남편이 말했다.
나는 그 전화가 남편 회사 업무와 관련된 일인 것 같아 별로 듣지 않고 그냥 허공을 쳐다보고 있었다. 전화를 끊은 남편이 말했다.
“아.. 나 학술연수 된 것 같은데..”
“어? 그게 무슨 말이야?”
“나 저번에 지원한 그 학술연수 된 거 같아”
“어? 안될 거 같다며?”
“된 거 같아..”
믿기지 않았다. 남편은 늘 내게 말해왔었다.
자신은 회사에서 잘 나가는 편이 아니고, 그렇기 때문에 이런 학술 연수 같은 것은 될 리가 없다고..
내 남편이지만, 회사의 회식도 참석하지 않고, 야근은 절대 안 하려고 하는 남편을 보면서 학술연수가 될 리가 없다는 남편의 말에 신뢰가 갔다. 그래서 나도 남편의 학술연수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던 상황이었다. 특히 남편은 해외 학술연수를 가고 싶어 하지도 않았던 사람이었다. 매일 해외 나가서 살고 싶다는 말을 염불같이 외우던 나 때문에, 지원은 하긴 했지만 자신의 회사에서 자신을 해외로 보내줄 리가 없다고 남편은 늘 나에게 말했다.
해외 학술연수라니.. 해외학술 연수라니..
내가 그토록 바라왔던 남편의 해외 학술연수이지만, 기뻐하기도 전에 2주 전에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회사를 때려치운 사실에 대하여 아쉬움이 밀려왔다.
내가 조금만 더 신중했다면, 내가 조금만 더 참았다면, 내 이력이 이렇게 꼬이지는 않았을 텐데.. 미국 갈 준비를 그곳에서 안전하게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 때문에 정말 속이 쓰릴 정도로 아쉬웠다.